동그란 눈에 앙증맞게 혀를 내민 얼굴 모양의 쿠키, 숯검댕이 눈썹이 반쯤 덮은 눈과 콧수염이 그려진 주방 장갑, 어딘가 익숙한 작품들이다. 자유분방함과 위트 넘치는 스타일로 전 세계 수많은 셀럽들의 SNS와 수많은 브랜드 상품들에서 우리는 이미 장 줄리앙의 작품을 만나고 있다.
장 줄리앙(Jean Jullien, 1983~)은 프랑스 출신으로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이다. 프랑스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작가는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과 영국 왕립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졸업했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패션, 가구, 출판,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장 줄리앙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작업하며 보관해온 100권의 스케치북과 일러스트, 회화, 조각, 오브제 등 약 1천 점의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전시구성은 작가가 연필을 잡는 방법을 익힌 순간부터 일상의 순간들을 드로잉한 [100권의 스케치북] [드로잉] /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여러 실험적 작업을 소개한 [모형에서 영상으로] / 가족과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는 작가의 일상 속 행복한 순간을 추억한 공간인 [가족] / 작품 소개 매체로 활용하는 SNS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셜 미디어]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소개되는 테마 [100권의 스케치북]은 작가가 연필을 잡는 방법을 익힌 순간부터 틈나는 대로 드로잉한 100권의 스케치북으로 구성됐다. 스케치북을 채우는 습관은 작가가 평범한 일상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됐다. 그의 작품 활동은 친근하고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디지털에 중독된 세태를 풍자한 일러스트나 월요병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정크푸드(JUNK FOOD)에 중독된 신체 일러스트 등이 그의 예술적 접근 방식을 대변하는 작품들이다.
다음 테마인 [드로잉]은 장 줄리앙의 습작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공간은 "드로잉은 언어와 같다"는 작가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일러스트, 회화,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구현되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손으로 그리는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해 생명력을 얻는다.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화하는 장 줄리앙의 드로잉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과 소통하기에 드로잉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며, 드로잉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만나도 통역이 필요 없고, 그것이 자신이 단순하게 작업하는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가 글로, 댄서가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듯 드로잉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의 언어다.
장 줄리앙은 SNS를 자신의 직업에 대한 논평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 재료를 실험하는 탁월한 플랫폼으로 여긴다.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표현은 장난스럽지만 작품에 담긴 내용은 촌철살인적이다. 현대인의 일상과 사회적 이슈를 첨예한 시선으로 분석해내지만 단순하고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나는 비판적인 성격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불쾌한 것들을 유쾌하게 바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
작가는 즐거운 일상에 대한 관찰,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고 위트 있는 표현으로 포스팅한다. 실제로 전시장에 가면 동그란 눈동자가 떼구르르 굴러가는 작품의 역동적인 모습, 꼬꼬마 시절의 장난 같은 귀여운 작업들이 다수 보였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작품 속 숨겨진 사회적 이슈와 현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회화 세션에 마음이 가장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드로잉과 스케치처럼, 장 줄리앙의 많은 회화 작품들 역시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가생활과 휴가가 회화 작품의 소재로 다수 등장하며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회화에서는 일상 속 유머러스함이 돋보였던 그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는 달리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주로 느껴졌다.
신기한 점은 회화에서는 자연의 소리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와 사람들의 일상에 천착해 있던 시간들 때문일까. 그의 회화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은 자연 앞에서는 그저 자그마한 미물로 축소시키고 자연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 시도가 엿보였다. 드넓은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인물들은 흐릿한 형태로 표현됨으로써, 관객들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나 활동보다는 파도 소리,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과 같이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위트 있는 작품 너머 서늘하고 날카로운 시선과 잠시 마주하고, 웅성이는 사람들의 일상 속 소음을 바쁘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어딘가에서 파도 소리가 나는 듯한 회화로 마무리되는 전시의 전개방식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필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도 분야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작가는 이렇게 전시 소감을 전했다.
"창의적인 삶이란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작품으로 표현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이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다.“
장 줄리앙의 열정과 재기발랄한 시도들은 일상에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자칫 무감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던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회고해볼 수 있던 전시였다.
<그러면, 거기>는 10월 1일(토)부터 내년 1월 8일(일)까지 DDP 뮤지엄 전시 1관에서 진행된다.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 박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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