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튼 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쵬개 Nov 13. 2023

변비 걸린 맵찔이를 아는가

똥과 맵찔이의 상관관계



맵찔이 : 맵다와 찌질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로, 매운맛에 약한 사람을 칭하는 용어이다.



 나는 맵찔이다. 매운 것을 못 먹는다. 어릴 땐 오기로 매움을 이겨보겠단 심리로, 누구보다 매운걸 잘 참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얼굴이 빨개지도록 매운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그땐 맵부심이라는 걸 부릴 수 있었다. 그땐 그랬다...


 튼튼한 장만 믿고 뭐든 입속에 넣던 젊고 어린 시절을 지나, 아침에 김치볶음밥만 먹어도 화장실에 달려가는 장이 예민한 어른이 되었다. 진정한 매움은 똥꼬가 안다고 했던가. 난 나의 똥꼬를 지켜주기 위해 자연히 맵찔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나의 맵찔력은 심한 변비에 걸렸을 때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하루에 한 번 화장실에 가는 건 고사하고 나에게 평균은 2-3일에 한번 똥을 싸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도 심하다 싶을 만큼 배출을 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기간이 있다. 화장실 간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배도 무겁고 몸도 무겁고, 먹기만 하고 나오지를 못하니 불쾌하기만 하다. 이럴 때의 특효약이 있다. 바로 '매운 음식'.


 건강하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때때로 매운 음식을 감당하지 못하는 장을 이용하여 변비에서 잠시 탈출을 하고는 한다. 나는 이것을 '장클렌징'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불닭볶음면을 이용한다. 매운 걸 참고 먹을 정도로 맛있고, 자꾸 생각나고, 손쉽게 구하고 끓여 먹을 수 있는 마성의 라면. 불닭볶음면.






 평소에 먹을 때는 치즈를 두 번 넣어 먹어야 먹을 수 있다. 끓이면서 슬라이스 치즈를 한번, 다 끓이고 피자치즈를 한번 더 올려서 먹는다. 사실 이 정도면 매운맛은 많이 사라져 치즈볶이로도 보이는데 맵찔이인 나에게는 딱 적당한 정도의 매움이다. 하지만 '장클렌징'이 필요할 때는 넣지 않거나 한 장만 넣어 먹는다. 먹는 와중에도 매워서 끊임없이 음료를 들이켜야 하지만 엄청난 맵기에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기도 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빠르면 당일저녁부터 시작된다. 화장실과의 사투. 평소에도 화장실에 자주 가는 동생은 아무런 치즈추가 없이 오리지널로 하나를 끓여 먹고는 다음날 '화장실 한번 가면 돼~'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나에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음날 아무런 일정이 없어야 하며, 언제나 화장실에 쉽게 갈 수 있는 환경 이어야 한다. 최소 24시간이 되어야 나의 장클렌징은 끝이 나며, 실패한 적은 없다. 너무 과해서 가끔 힘겨운 경우도 있긴 하지만, 클렌징의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배는 확실히 홀가분해진다.










 식당에서 기본으로 주는 고추는 웬만해서는 손도 대지 않는다. 나의 맵찔력으론 그걸 먹고도 바로 화장실로 튀어 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 건강에 맞춰 발달한 나의 매움 판별력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이게.. 맵다고...?'라는 소리를 자주 듣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 분명 나보다 훨씬 튼튼한 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혀의 고통은 참을 수 있다. 똥꼬의 고통은 참을 수 없다. 그것이 나의 맵찔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 배 아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