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지도 Nov 04. 2019

두바이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1)

한 번도 꿈꾼 적 없었고 한 번도 바란 적 없었지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지만, 결국 두바이에 입성하게 된 29세 K.


K가 처음부터 두바이에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K는 어떡하든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싶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경기도, 아니 한국이라면 어디라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아직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사학과 출신의 K가 지원할 수 있는 업무 범위는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 있는 자리에 지원하는 전국의 K는 수도 없이 많았던 것이다.  
대학 3학 때부터 남들과 비슷하게 토익 공부도 하고, 여기저기 단기 알바나 인턴을 하며 입사 기회를 찾았지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답답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영혼이 지치는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K는 우연히 네이버 취업카페에서 “KOTRA와 함께 중동취업”이라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료한 일상을 아무것도 안 한 채 흘러 보낼 수 없었던 K는, 출근도장을 찍듯 여러 취업 카페를 돌면서 “공지사항, 주요 행사, 구인 공고 등”을 차근차근 확인했고, 그러기를 6개월, 드디어  ‘KOTRA 두바이 현지 취업 행사’를 통해 “좝 (job)”을 구하게 되었다.


* * *

그런데, 
K는 회사의 요청에 따라 서둘러 두바이에 오느라, 미처 먼저 집을 구하지 못하고 호텔에서 임시로 지내며 살 곳을 알아보게 되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K가 두바이에서 집을 구하면서 겪었던 일 들이다.

 

1.  두바이에서 살 곳을 찾다


K는 미혼인 데다가 동거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렌트비’만 중요할 뿐 다른 것, 예를 들면, 학교나 병원, 슈퍼마켓 등 주변 편의시설은 있건 말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회사에서는 1년 치 주택 차임으로 ‘5만 디르함 (한국 돈, 약 1천5백만 원) 지원, 추가분은 자비로 지출’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었으므로 그 지원 금액 한도 내에서 쾌적한 집을 구하면 족했다. 

1년 렌트비가 ‘1천5백만 원’이면 ‘한 달에 약 125만 원’인 셈이므로 엄청 좋은 곳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두바이에서 스튜디오 (한국식 원룸; 방과 거실, 주방이 모두 한 공간에 있고 욕실은 따로 있는 구조)를 빌릴 수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시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파트 단지에 편의시설로 수영장과 헬스장이 포함된 경우가 많아서, 월 125만 원으로 아주 넓은 집을 구하기는 어렵다. 

K는 KOTRA 중동 취업 카페에서, ‘중개인을 통해 집을 구하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중개인한테 사기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중개소를 통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낯선 땅에서 혼자 집을 알아본다는 것은 더 막막한 일이라서, 인터넷 중개사이트, 중개 사무소 등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결국은 한인회 사이트에서 찾은 한국인 중개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2.   드디어 계약 체결

K가 고심 끝에 살아 보기로 결정한 곳은, 편의시설로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주상복합 단지 내 스튜디오였다. 주상복합이라서 건물 안에 슈퍼마켓이 있는 것도 맘에 들었고, 한국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수영장”이라니, 게다가 회사 지원금에 딱 맞는 곳이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이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영문으로 작성된 계약서 (tenancy contract)는 한국에서 몇 번 봤던 주택 임대차 계약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임대인은 ‘사이프 무함마드 사다함 하마드’, 이 지역에서 ‘갑 중의 갑’이라는 에미라티 (Emirati, U.A.E. 자국민)였다.


임대인을 수취인으로 하여, 계약금과 1년 치 차임을 한꺼번에 수표(cheque)로 지급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그리고 1년 치 임대료의 5%에 해당하는 보증금이 있었는데, 그 보증금은 계약 종료 후 퇴거할 때 돌려준다고 했다. 보증금의 용도는 대체로 임차인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임차 목적물의 하자 보수 및 계약 종료일까지 퇴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것으로 보였다.

3.   계약서에서 특이했던 것


계약서의 내용은, ‘임대 목적물을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하고, 계약 종료 시에는 원상 복구하여야 하고, 공과금 (에어컨 사용료, 전기 수도요금 등) 은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등 대체로 예상 가능한 내용이었으나, 몇 개 눈에 띄는 조항이 있었다.  

1) 계약 해지 조항: 계약기간 만료 전에 임의 해지하고자 할 경우에는, 2개월치의 차임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2) 서면 통지: 계약기간 “만료 일”에 적법하게 계약을 해지하고자 할 경우에도 미리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즉, 관련 법에서는 만료 일로부터 90일 전에 임대인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는 동시에,  ‘당사자의 협의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 K와 임대인 사이프가 작성한 계약서에는, ‘계약 종료일 60일 전에 서면으로 통지’ 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 갱신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3) 임대차 목적물 상태 확인계약 체결 당시의 임대차 목적물 상태를 확인하는 것 (inspection)이다. 한국에서는 대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임차인에게 집 소개를 할 때, 중개사가 같이 가서 대충 (?) 확인하는 정도였는데 이 곳에서는 임대인 (또는 대리인)과 직접 집 상태를 확인하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예를 들면, ‘부엌 싱크대 서랍 중 세 번째 서랍은 약간 파손된 상태이고, 안 방 천장에 못 자국은 6개 있고, 욕실 입구 문짝 오른쪽 아랫부분은 칠이 벗겨지고 약간 깨져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K는 이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만 해도 위와 같은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미숙함’으로 인해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4. 그 집에서 사는 동안 


K는 주말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 가서 비치타월을 둘러쓰고 누워있는 것이 좋았고, 깨끗하게 관리된 헬스장에 가서 ‘운동 마니아’ 흉내를 내는 것도 좋았다. 아파트 관리 업체에서 정기적으로 집 안 에어컨 청소를 해 주는 것도 좋았고, 깨끗하게 관리된 상가와 아파트를 돌아다니는 일은 그동안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던 K의 “자부심”을 살짝살짝 드러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주차장은 어찌나 넓고 편리한지..

그래서 K는 점점 두바이가 좋아졌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2)에서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