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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Nov 06. 2023

개성도 없이 주인공이된 아파트

늦깎이 독일 교환학생

유럽에는 높은 건물이 많이 없다. 특히 주거 목적으로서의 건물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유럽의 주택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건물이 오래돼서 보수유지에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대중교통 같은 것을 설치할 때 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만큼 효율적으로 설치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건물들 간의 통일성도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부동산 재테크가 국민 필수교양으로 인식되고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부동산이 '투자자산'이 아닌 '주거시설'로서의 목적을 다하기에는 유럽의 주택이 더 나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쉽다. 우선 아파트 자체의 외관이 획일적이다. 일단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오면 내가 101동에 살던지 112동에 살던지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냥 동 입구에서 멀다 가깝다 뿐이지 아파트 자체에서 나만의 집이라는 정서적 애착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는 점점 내부 인테리어를 통해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이걸로는 한계가 있다. 나만의 주거공간으로 어찌 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재화 중 하나인데 그 재화에 대해 정서적 애착이 약한 현실은 부동산이 단순히 투자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내가 교환학생 동안 거주했던 기숙사에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그 기숙사의 형태는 대단하지는 않지만 건물자체의 차별성으로 짧은 시간 거주하더라도 정서적 애착이 형성될 수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알록달록한 개성을 살린 집은 내가 사는 파란 집 자체에 대한 정서적 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저 집이 얼마짜리 집이고, 몇 평이고, 이런 것을 떠나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몇 년 이상 살았던 주변에 수십 채의 아파트가 모두 우유갑에 상표하나 찍은 듯한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에 애착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았던 동네, 다녔던 학교에 대한 애착은 있지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대한 애착.. 그걸 얻지 못하는 건 아쉽다.


둘째로는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약하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공간은 너무 거대하여 무대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거대한 아파트가 모든 시선을 빼앗아간다. 하늘에 눈을 돌릴 공간도, 녹지를 찾을 공간도, 아이들의 놀이터를 찾을 공간도 아파트 숲으로 덮여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대부분의 숙박을 실제 거주민이 생활하는 에어비앤비에서 해결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에어비앤비에 갔을 때는 지금까지 갔던 다른 유럽의 주거공간과 달리 이상하리만큼 주거 시설이 획일적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았다. 주거시설은 주거시설로 역할을 다하고 여행자로서 나는 그 주변 환경에 눈길을 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였던 자동차도 여기서는 큰 장식품이 되었고 높은 곳에 가지 않아도 보이는 탁 트인 하늘과 많은 녹지는 주거시설을 주인공이 아닌 하나의 등장인물로 만들어 주었다. 이는 다시 말해, 계절과 날씨의 변화, 거주민의 변화 등으로 매번 다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더블린의 주택단지(나름 도심에 있는 주택단지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그 좁은 땅 안에 수많은 사람을 모아 두고 보통의 아파트 단지는 외부와 단지를 구분하는 경계로 외부인, 다른 가게나 주변과의 조화를 차단한다. 낮은 층수의 유럽 주택들은 소위 말해 나는 주유소 옆에 살아! 나는 성당 옆에 살아! 가 가능하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 변하기 쉽고 그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사는 거주 공간이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가진다. 즉, 누군가가 어디 사냐고 물어볼 때 신나서 이것저것 자세하게 얘기할게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옆 동의 아파트 옆에 산다. 크게 봐도 초등학교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그 초등학교 옆 아파트 단지에는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산다. 이런 집이 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까? 가끔씩 보이는 변화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까지 나가거나, 아랫집 이삿짐 옮기는 소리로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기본 표현으로 'I live next to the ~~'를 초반에 배우는데 이런 표현이 와닿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우리의 아파트는 건물의 개성도 없으면서도 주거지역의 주인공을 자처한다. 지나치게 '주거'라는 목적에 초점을 두고 있는 아파트. 사실 한국의 많은 부분은 목적에 충실하다. 좀 더 편한 거 좀 더 빠른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에 집중했기에 다른 가치는 경시되었고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한국은 좀 더 비효율적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운전 중 횡단보도 앞에 사람이 서있으면 먼저 건너가라고 멈춰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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