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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Jul 06. 2024

영수의 시각2

폭력적인 첫사랑

지난 몇 개월간 우리에게 있어서 영수는 조언가이자 공감자의 역할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영역은 대부분 진로설계와 같은 현실적 부분에 국한돼있었다. 영수는 본인의 삶을 밖에서 봤을때 훌륭하게 살아왔기에 해당 역할에 자신이 있었고 한편으론 그 역할을 갈망하고 있었다. 영수는 해당 분야에서 우리가 바라는 역할을 나름 성실히 수행했다. 그치만 외국에서 떨어져 있을때 우리가 영수에게 기대한 역할은 현실적인 조언가와 공감자가 아니라 수용자이자 포용자였고 그 영역은 주로 정서적 영역이였다. 우리가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 할때에도 서툴고 보수적인 영수는 기존의 방식을 바꿔야할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영수는 지금까지 노력하던 삶 속에서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컸다. 재수, 삼수, 취준까지 남들이 쉴때, 남들이 놀때도 항상 공부했던 영수는 미국으로 간 난생 첫 장거리 여행을 그간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삼고 거기에 집중하고 싶어했다. 영수는 우리도 자신을 응원해주고 믿어주고 독립적으로 힘들지 않게 잘 지냈으면 했다. 그러나 그걸 기대하기에는 서로의 성격의 차이가 컸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때면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우리에게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 반년간 얼굴을 자주 보던, 우리에게 듬직한 조언가가 필요했던 시기가 아니였다. 우리는 따뜻한, 혼란스러운 시기에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는 나무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영수가 느끼기에 우리는 의존적으로 보였지만 우리는 영수의 고집스러운 비수용적 태도에 외로움을 느끼고 실망해갔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고 우리의 감정상태를 비대면으로 이해하기에 미숙했으며 마냥 즐겁고 싶었던 영수는 우리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때의 책임회피가 나중에 어떤 영향으로 이어질지 짐작하지 못한채. 우리는 외로움과 싸우면서 상대에 대한 죄책감까지 가지며 시간을 지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때는 이미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만남에 대한 기쁨이 너무 컸던 탓일까 둘의 재회는 이뤄졌고 우리와의 갈등과 막판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로 지쳤던 영수는 원래라면 차분히 풀어나갔어야 할 둘 사이의 앙금에서 눈을 돌려버린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갈등이 많아졌다. 영수는 당황스러웠지만, 단순했기에, 떨어져있었을 때의 과거의 앙금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미래만을 그렸다. 그리고 관계 개선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그가 항상 가장 중요한 것에 투자했던 노력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영수에게 영수가 꼭 원하던 일이나 좋아했던 일들은 노력이 부족해서 이룰수 없었던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집을 꺾고 우리가 말했던 수용적 태도를 지닌 새로운 역할을 맡으려고 노력한다. 다툼이 있고 일이 안풀릴때마다 노력했다. 포기하지 않고 더 맞춰주고 이해해주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정말 우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더욱 노력했다. 우리도 영수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때때로 고마움을 표시했고 이것이 관계의 개선이라고 착각한 영수는 노력에 취해 계속 시간을 쏟고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내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가 원하는 행동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영수는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레 조금씩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우리의 피드백을 받고, 스스로의 자질과 성격을 바꿔나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녀관계는 수학문제의 오답노트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에 우리의 피드백은 영수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갈등을 동반한 피드백은 영수의 수용력을 떨어뜨렸고 우리를 지치게 했다. 


영수는 계속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관계에서 당황했다. 지금까지 연애는 모두 영수가 상대방에 대해 노력할 수 없을 것 같을때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했기에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노력을 계속 투입할 수 있었는데 관계는 크게 볼때 나아지질 않았다. 하지만 영수는 단순했고 참을성이 강했으며 보수적이였기에 계속해서 이대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수가 노력해야할 부분은 점점 많아졌다. 우리에게 힘든일은 계속해서 일어났고 영수의 노력은 그 힒듬을 비껴나갔고 영수는 누적된 상처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영수는 우리가 힘든 것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 남녀 호르몬 차이에 관한 책 등을 읽고, 영상을 찾아봤다. 그렇지만 거기서의 아픔은 대부분 외부 상황이나 본질적 결핍에 기인한 것이였기에 오히려 스스로가 상대방에게 초래한 아픔에 대해서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노력들은 그 본질을 관통하진 못했고, 계속해서 겉돌고 어쩔때는 또다른 상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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