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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Sep 10. 2023

벨기에: 하얗게 아름다운

늦깎이 독일 교환학생

1. 관리와 혁신


원래 가던 카페가 문을 닫아서 다른곳에 왔는데 여기 너무 덥다. 날씨가 31도에 강렬한 햇빛이 비치는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는다. 유럽에 와서 느낀거지만 여기는 변화와 개혁보다는 유지와 관리에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에 남아 있는 유산들을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고(주택, 상가, 광장), 그것이 충분한 미적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변화에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비록 유럽의 폭염이 최근 심해지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버스, 지하철, 트램, 카페, 식당 등에 에어컨을 설치된 곳이 드물다는 것은 건물들이 오래된 것이 많아 설치가 불편하고 굳이 애써서 편리함을 쫓지 않는 유럽의 보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보수성이 미국과 중국과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일수도 있겠다. 풍요로운 관광자원과 문화유산, 지적자산, 산업혁명의 발원과 같은 과거의 유산들이 지금의 유럽을 있게 했지만 미래의 발전을 막을 수도 있겠지.

벨기에에서 본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겐트의 도서관-책을 쌓은 모양이다)

이런 것에 비교해서 한국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충분히 메리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남아 있는 유산을 재활용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개혁과 변화를 실천하기 쉽다. 지금도 여전히 수도 서울에 도시개발계획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공기업의 지방이전, 혁신도시, 신도시 개발과 같이 여전히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잠재적인 위험 요소는 0.7에 달하는 초저출산이다. 정당에 대한 세대별 투표율에서 알 수 있듯,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보수화될 것이다. 이런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래없이 낮은 출산율이 Dynamic Korea의 모토와 어떤 불협화음을 낼지 무섭긴 하다.



2. 무색무취의 양면성


벨기에는 다른 국가보다 벨기에만의 국가적 특성이 뚜렷히 나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오랜기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유럽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네덜란드에 합쳐졌다.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아 두 나라 언어가 혼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벨기에를 처음 들었을때 와플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무색무취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모습도 느낄수 있었다.


벨기에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색깔을 덧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문화적 민족적 색체가 약한 것은 누구든 거부감 없이 해당 나라에 스며들 수 있게 해주었다. 브뤼셀의 그랑펠리스가 벨기에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였는데 여기에 들어갔을때에도 건축물의 화려함에 압도당한다던지 그러한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광장 어디서든 건축물에 둘러싸여 안정감을 느낄수 있었다. 이는 겐트나 브뤼허에 갔을 때 더 강하게 느껴졌다. 오래된 건축물이 많이 보였지만 그것들이 위압감을 주지 않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국토 면적이 넓지 않고 인구도 1000만명 수준의 벨기에는 자신의 문화를 발산하기 보다는 관광객들을 부드럽게 품어주는 느낌이였다.

벨기에의 이런 무색무취는 벨기에가 유럽연합의 수도가 될 수 있는 이유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특정 국가의 색이 강하다면 해당 지역에 유럽의회가 들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유럽의 근현대사를 주름잡았던 나라들에 둘러싸여있고 유럽 최고의 유력가문이였던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나폴레옹을 멈춰세운 워털루 전투가 일어났으며 영화 덩케르크에서의 덩케르크와 약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나라, 유럽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지역이면서도 그 색을 내뿜지 않았기에 유럽연합의 수도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그림은 아마 마그리트 그림 중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림인 것 같다. 총 모양의 긴코는 거짓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고 멍청해 보이는 눈동자와 상반되는 머리의 눈동자는 내 머릿속은 항상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속이려는 멍청한 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일 것이다. 마그리트는 전시 내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의미를 자꾸 묻지 말라고..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던 사람이 아 그림의 의미를 이해했어요! 라고 말하면 옆에서 당신은 참 운이 좋군요!라고 대답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 권한을 철저히 독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는 마그리트가 독자와의 괴리감을 일으켜 권위를 세우려 하지 않는 겸손한 화가이며 자신의 문화를 강요하지 않는 벨기에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벨기에와 야경:고전적 야경과 현대적 야경


유럽에는 야경이 예쁜곳이 많다고 들었다. 밤이라는 시간은 내가 뭔가를 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안정감을 준다. 여행 중에도 밤에는 여행 포인트를 찾아다니거나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짧은 식견이지만 지금까지 본 야경 중에서 이러한 야경의 역할 충실히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벨기에의 겐트였다. 겐트의 야경은 오래된 건축물 속에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벗어난 진정한 휴식을 가져다 준다고 해야할까.


남산타워에서 내려다 보는 현대적 야경은 눈이 즐겁고 멋지지만 오래 보기는 어렵다. 현대적 야경 속에서 멋지다고는 생각할 수 있지만 바삐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태원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야경 역시 과거 한국의 모습을 상상할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현대적 야경은 근본적으로 휴식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겐트와 같이 상대적으로 고전적인 야경 속에서는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여유와 풍요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고전적 야경은 멋지지만 시민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주 포석정의 야경이 아름답지만 관광지로서의 야경이지 생활 속 야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시민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경복궁 야간개장을 가더라도 그 주변은 빌딩에 둘러싸여있어 결국 완전한 편안함은 느끼지 못한다. 이런 야경이 계속해서 한국인이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쉬지 못하는 밤은 한국인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밤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서 TV나 컴퓨터를 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은 이러한 휴식으로서의 야경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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