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음의 습격', 디지털에는 복사본이 없다!
“타자의 추방”이라는 얄팍한 책 한 권을 골라 들었다.
몇 해 전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피로사회」와 「투명사회」의 저자이기도 한 한병철의 책이다. 그의 글은 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세상을 향한 예리한 시선이 그의 글에 잘 녹아 있으며,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아주 분명하고 쉽게 전달하지만, 동시에 그 말에는 상당한 깊이가 있다.
몇 해 전부터 "외장형 두뇌의 시대"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해 온 이 주제가 한병철의 글을 통해 명확하게 관통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글을 적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활동을 단순한 '저장'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어린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개방성'이라는 개념은 이제 일상 대화나 장면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손쉽게 저장하고 언제든지 다시 불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제 정보에 항상 접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우리의 두뇌 활동, 특히 기억이라는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고 느낀다.
기억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특정한 사건이나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정리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과정이 외부 장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개인적 정서나 경험이 아닌 기계적 데이터의 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렇게 외부 장치에 저장된 정보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고 유통되며,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정보마저도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기억이 아닌 정보들을 쉽게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이러한 착각은 기억이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재구성되는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활동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다.
기억이란 단순한 저장의 과정이 아니라, 기억의 과정 속에서 유형화되고 강화되며 개념화되어 개인의 정서와 결합하는 복합적인 두뇌 활동이다. 우리는 정보를 단순히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세상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외부 장치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한병철이 말한 것처럼,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타자를 본의 아니게 추방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너와 나,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사회적 한계가 사라지며, '다름'이라는 보호막이 소멸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노출'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다름은 사라지고, 동일성만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같은 것의 창궐"은 결국 사회체의 병리학적 변화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박탈이나 금지가 아니라, 과잉 소통과 과잉 소비, 배제와 부정이 아니라 허용과 긍정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한병철은 말한다. 기억이란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장면, 혹은 상황을 다시 끌어내는 행위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에 의존했던 기억이, 이제는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증강되고, 연장되며, 공유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가능성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부정확했던 나의 기억을 더 정확하게, 더 오래 보강하여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과연 이러한 기억을 진정한 인간의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보관된 기억과 그 호출을 과연 기억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나는 종종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이해한 것과 단순히 검색해서 얻은 정보를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학생들은 깊은 사고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검색을 통해 쉽게 해결하려 하며, 그저 검색 결과를 복사해 붙여넣는 방식으로 과제를 끝마친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외부에 저장된 기억과 전통적인 기억 사이의 차이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두뇌를 통해 기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한 공유되고 증강된 기억이란 무엇이며, 이러한 기억이 과연 우리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과거에도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글쓰기, 사진, 영상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을 기록하고 연장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기억이 아닌,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공유되고 증강되는 기억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나온 '다름'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고, 그 다름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확산이후 이러한 다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동일한 세계관으로 수렴되고 있다. 동시성, 광역성, 공유와 개방성은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경향으로 모으고 있으며, 개인들의 독특함을 제거한 통계로 읽히는 사회, 결국 타자가 없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같은 것의 지옥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변모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것이 넘쳐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한때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져왔다. 영화로도 개봉된 이 작품은 기술의 발전으로 전뇌(전자 두뇌)를 가진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정체성과 정신을 가진다. 이러한 존재들이 인간과의 경계에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와 유사한 주제를 다룬 「브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정체성과 정신을 가진 존재라면, 그들은 인간으로 인정받아야 할까? 아니면 기계로 간주해야 할까?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과 기계가 점점 더 융합되고 있다.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기계와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인터페이스가 더욱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에 기계를 이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이러한 문제는 단지 과학기술의 발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은 물론 윤리적, 철학적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두뇌를 전송받은 존재가 인간과 구분조차 어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보유한 두뇌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의 우울한 경험과 힘든 삶에서 얻어진 기억과 증강된 두뇌 속 기억을 저울질하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최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과 경쟁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 우월함을 입증하고 있다. 체스, 바둑, 퀴즈 대회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지능이 단순히 이런 게임에서의 성과만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AI의 탁월함을 선망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제는 손목에 차는 스마트 기기, 가상 현실(VR), 증강 현실(AR) 등 다양한 기술들이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은 단순히 게임이나 학습 도구로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현실 경험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 새로운 차원의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삶의 방식 자체를 재정의할 가능성을 열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기술 발전을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 글은 몇 해전 작성했던 '외장형 두뇌의 시대'라는 글을 다시 정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