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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May 02. 2019

무진기행, 그리고 시인과 촌장

전성기의 마력


김승옥

1964년 가을… 우리 어머니가 온 힘을 다해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셨을 때… 김승옥 작가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60년대 사회인들의 일상과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무진기행을 집필하여 밀어내셨다.   흔히 감수성의 혁명으로 불리는 문장과 탄탄한 서술… 그리고 관념적 표현의 고급스러움은 하루키의 그것과 닮아있다.   아니 하루키가 영향을 받았겠지.   너무나도 유명한 무진에 드리우는 안개에 대한 작가의 표현을 빼더라도 소설의 곳곳에는 우리말이 주는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
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진기행 중에서)

하덕규


1986년 가을… 어디에 가건 민주화를 향한 절규와 최류 가스의 분자가 엉겨 붙어 분노의 고통이 만들어질 무렵… 하덕규는 시인과 촌장 2집인 ‘푸른 돛’을 내고 이어서 1988년 3집인 ‘숲’을 발표한다.   음악적 감동이란 것이 클라이맥스나 샤우팅에서 올 필요가 없고, 그 시대의 표현이 직설적인 외침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한방에 보여준 걸작들이 이 앨범들에 가득하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꺼예요   
그 고운 무지개 속 물방울들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있다면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동산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시인과 촌장 3집 '좋은 나라')

이제 두 어른의 공통점

김승옥은 63년 경부터 66년 약 3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단편들을 쏟아내어 온갖 문학상을 휩쓴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대한민국의 일상이 이렇게 쿨하게 그려진 소설이 있다는 것 하나로 가슴 뭉클해지는 작품들… 서울에 살 당시 나는 무진기행에서 그려진 안개를 보기 위해 주말 새벽 춘천 가도를 드라이브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안개’를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으며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약하며 소설 집필을 사실상 중단하게 된다.   그 당시 제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 하더라도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라도 영화계에 발을 드리운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 이후 문학평론가 이어령 님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서울의 달빛 0장’을 집필하며 초대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종교적 체험 후 절필… 그리고는 이렇다 할 작품은 50년 전 이후로는 끝이 났다.


하덕규는 80년 대 중반 약 3년 사이에 시인과 촌장 2집과 3집을 내고 한국 20대 명반의 서열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심취해 있던 나를 통기타의 세계에 끌어들인 나만의 우상이 만들어진 때이다.   그 당시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시인과 촌장의 노래들을 들으면서도 도대체 이 그룹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TV에는 물론이고 기타 출간물에서도 그들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하덕규라는 싱어송라이터가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만든 프로젝트 듀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들국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서 초대가수로 나오게 된 하덕규를 처음 볼 수 있었다.   수줍음에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노래를 시작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종교관을 3집 앨범에 끌어들이시더니 그 이후 실질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멈추고 결국 목사님이 되신다.





3년… 그 시간은 비틀스가 She loves you로 시작해 빌보드를 점령하고 그들의 원숙미의 극치를 표현한 White 앨범을 낼 때까지의 기간이다.   그 이후로 팀은 해산되고 존 레넌은 그의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다.   비틀스 이후에도 윙스를 통해 놀라운 곡들을 발표해 왔고 지금 현재에도 50년이 넘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폴 매카트니는 물론 예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타오르는 에너지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시간은 대략 3년 정도인 것 같다.   Led Zeppelin 이 그랬고 산울림이 그랬고 다자이 오사무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김승옥과 하덕규… 그들은 3년이라는 전성기를 확실히 증명하듯 보여 주었다.


그럼 내게도 그런 전성기의 3년이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슈퍼파워가 내게 주워져 그것이 나의 사업이던 예술적 영감이던 간에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나는 그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일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어마 무지한 힌트가 내게 계속 주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다른 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제발 아직 안 왔기를 기도하며 혹시 모를 전성기를 나는 아마도 초 대기만성형이라 자위하며 은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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