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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Oct 24. 2019

생각해 보면 얼마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2001년의 얘기이니 18년이나 지난 시간이다.   이곳에 이민을 오자마자 소위 말하는 식당을 오픈하고 나는 주방에서 손님을 기다렸다기보다 손님이 혹시 오려나 두려워했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난 그저 밀어 붙이기 정신 하나로 무장하고 있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필요하고 준비가 필수이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사업 아이템은 결국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 친척을 통틀어 음식사업을 해본 경험은 전무했고 캐나다라는 낯선 나라의 시골 조그마한 마을은 이정표를 그을 수 없는 사막이나 다름없었다.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잇달았고 그런 와중에 간혹 손님들의 웃음을 보거나 하루 매상이 예상외로 조금 오르는 미세한 성공(?) 들이 그나마 아침에 가게 문을 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가게를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집에서 가게로의 출근길이 익숙해졌다면 모를까 모든 것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때였다.  주방에서의 나는 머릿속으로 아침 준비 매뉴얼을 되네이며 정작 몸은 어설프기 그지없었고 며칠 전에 고용한 웨이트리스는 익숙지 않은 메뉴를 계속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조금은 이른 점심시간에 출입문을 열고 백인의 중년 남성 한분이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보다 출입문을 반쯤 열고 엉거주춤하게 가게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른 체구에 190에 가까운 신장, 청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있었지만 나는 한눈에 이 남자의 긴장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앉은 그는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처럼 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생맥주를 주문한 그는 긴 다리를 비스듬히 꼬우고 앉아 가게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매뉴얼대로 메뉴 와 함께 런치 스페셜을 설명하고는 있었지만 그 남자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희 가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결국 당황스러운 웨이트리스를 대신해서 나는 주방에서 나와 직접 손님을 맞았다.   자신은 가게 근처에 살고 있고 우리 가게가 오픈 준비 공사를 할 때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간판이 올라가고 가게 이름과 종류를 보고는 좀처럼 들어오기가 망설여졌다고 했다.   처음 가게에서 우리가 다루던 아이템은 초밥과 도시락이었고 그분에게는 그것이 생소하다 못해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이 도시에서 일본음식을 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고 그런 특이한(?) 가게들은 다운타운에서나 볼 수 있었다.   시내와는 거리가 먼 변두리 주택가에 위치했던 우리 가게는 아마도 이 도시에서는 일식을 다루는 곳으로는 처음 생긴 마을 식당이었다.   특히나 바다와는 거리가 먼 내륙지방 산골마을인 이곳의 토박이 주민들은 그 당시만 해도 소와 돼지, 닭 이외의 고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생선이라고 해봐야 생선 냄새가 완전히 배제된 흰살생선에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튀겨낸 피시엔 칩이나 그릴에 바싹 구운 연어 스테이크가 그들이 접하는 씨푸드의 전부였다.   

날 생선을, 그것도 셰프가 손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시큼 달큼한 밥 위에 얹어진 이 정체불명의 생선 부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로서도 난감했다.   초밥은커녕 지금껏 살아오면서 과연 생선 종류는 접해 보았는지 의심이 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떤 종류의 생선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연어와 헬리벗 (넙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이었다.   강과 바다를 넘나들며 곰들의 일등 사냥감으로 지칭되는 연어는 물고기 로서는 유일하게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서양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생선이다.   헬리벗은 무늬만 생선 일 뿐 생선 냄새가 거의 없는 흰 살코기로 영국을 대표하는 피시엔 칩의 간판스타이다.

어쨌든 나는 이 손님에게 연어초밥을 권해 드렸다.   비록 날 생선의 질감은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어딘가 분명 익숙한 맛과 향이 숨어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개의 스시와 캘리포니아 롤을 난생처음 경험한 그는 그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가게를 들러 초밥을 접했다.   물론 메뉴를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고 나는 그분께 조금씩 난위도를 높여 가며 여러 종류의 초밥 조합을 만들어 드렸다.   고등어나 성게알같이 맛이 독특한 재료로 만든 것들은 어려워했지만 어느새 웬만한 초밥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고 그분은 자연스레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자신을 죤이라고 소개한 그분은 저녁시간에는 아내인 신디와 함께 와서 여러 가지 메뉴를 즐기는 상태로 까지 발전했다.   


죤과의 인연이 시작된 해에 그분의 나이가 60이었으니 우리 어머니와 동갑인 셈이었고 그는 그해 다니던 회사를 막 은퇴한 상태였다.   그분은 마치 모든 행동을 철저하게 규칙화시키는 사람처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언제나 같은 테일블에 앉아 맥주 한잔과 초밥 한 접시를 먹었다.   내 영어가 짧은 관계도 있고 더구나 주방에서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여유도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식당 주인과 단골손님의 관계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도 죤은 내 가족과 출신,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들을 틈틈이 확인해 단골 이상의 친근감을 표시해 나갔고 심지어 가게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들의 신상도 어느새 꽤 차고 있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위 캐나다인 들은 친척은 물론이고 친구나 지인들의 주변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그건 참견과는 다른 관심이고 그 세세한 소통으로 서로의 유대관계의 깊이를 더해간다.   내가 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안 그분의 신상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지질학을 공부했고 그 분야의 일을 줄곧 해온 관계로 젊은 시절 죤은 세계 방방곡곡을 쉴 틈 없이 돌아다녔고 은퇴한 지금은 일반인들이 꿈꾸는 것과는 반대로 여행보다는 한 곳에 정착해서 조용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첫 번째 결혼은 실패했고 지금의 아내인 신디를 만난 것은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라고 했다.   자녀는 없고 입양한 딸이 있기는 한데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재정적으로 여유로운지 어떤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은퇴 이후 얼마 안 되는 자금으로 시작한 투자가 시기적으로 좋은 운을 맞아 약간의 재미를 봤다고도 했다.   


몇 달 전 나는 용기를 내어 죤에게 인생 상담을 신청했다.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지금껏 그저 하루하루 가게를 운영하며 울고 웃는 시간을 보낸 것 이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터에 과연 이대로의 내가 앞으로의 노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다.   내가 그를 내 상담역으로 생각한 이유는 내 어머니와 같은 나이의 어른이라는 인생 선배 같은 느낌과 나의 어수룩함을 너그럽게 받아 줄 것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죤에게는 그저 잠시 시간을 내 달라고 했을 뿐 나의 구체적인 의도는 전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죤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식당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언제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상황 속에서의 만남 만을 지속해온 터에 막상 같은 눈높이에서 얼굴을 대하고 앉으니 왠지 서먹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내가 하려는 얘기의 주제가 불분명하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나의 영어는 자연스럽지 못하니 무슨 말로 이 소중한 시간을 시작해야 할지 막연했다.   결국 죤이 내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두서없는 말들을 이어가던 나는 어느새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정신없이 얘기하고 있었고 죤은 나의 평범한 옛날이야기에 하나하나 귀 기울여 주었다.   나는 어느새 고해성사를 하듯 내가 저지른 오판과 실패에 대한 일들,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했던 일들, 자식으로서 후회스러웠던 내 행동들에 대한 이런저런 미련을 더듬더듬 이어갔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꿈꾸었던 일들과 이민을 와서 마주친 커다란 현실의 벽에 대한 이야기와 결국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하게 된 나의 힘들었던 사업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듯  늘어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죤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나의 밑도 끝도 없는 넋두리에 귀 기울여 주었다.   사실 내가 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살아가게 될 이곳 캐나다에서 좀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죤은 내가 그를 처음 보게 된 순간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까지 변함없이 여유롭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 같은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장황스럽게 늘어놓게 된 나의 옛날이야기들이 끝나고 죤에게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멘토링’을 구하려 할 때 죤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부터 우리 가게에 오기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것들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책을 조금 읽고 우리 가게가 있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한 시간가량을 일부러 걸어서 왔다고 했다.   나와 만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집 근처의 수영장에 들러 30분 정도 수영을 할 것이고 그 이후는 신디와 함께 저녁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오늘 내가 내 의지로 한 일들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내가 집중하게 될 일들에 대해 물었다.   그건 아주 의외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대답이 내 입에서 나왔다.   뭐 글쎄, 그저 그렇게, 되는대로, 특별한 일 없이, 항상 하는 대로… 가 나의 대답이었다.   죤은 빙그레 웃으며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일주일 동안 내 자유의지로 지낸 시간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바른생활 교훈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난 어정쩡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죤이 돌아간 후 난 한동안 멍하게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죤에게 바란 인생 상담을 통해 무엇을 취하려 했는지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그건 아마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내가 마련해야 할 자금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뒤바꾸어 뭔가 현명한 선택과 과정을 통해 새롭고 안정적인 재정적 자유를 얻을 방법을 내게 제시해 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죤은 나의 의도와는 무관한 듯한 일주일 동안의 생활 일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죤으로부터 무엇을 물어보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죤은 이미 제시해 준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나의 시간, 오롯이 내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내 풍성한 하루가 앞으로 다가올 내일과 내년과 미래를 만드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죤 아저씨 자신도 여전히 매 순간 지키려고 하는 삶의 모토일 것이다.   


자유의지는 능동적인 사고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무심코 흘려보내는 수동적 시간에 반한다.   오랜 시간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미 무의식적으로 임하는 음식 준비, 손님맞이, 뒷정리, 청구서 지불 같은 시간을 제외하고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분명히 있다.   그 시간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시간임과 더불어 순전히 내 의지에 달려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만이 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2주일 후에 죤이 다시 가게를 찾아왔다.   난 그동안 한 시간 정도의 아침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글을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죤은 나의 조그마한 변화를 무척이나 기뻐해 주었다.   물론 그는 나의 자유의지가 나를 조금씩 바꿀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개선해 줄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죤과 나 사이에 화제가 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러한 지금을 얘기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로 인해서 새로운 음식습관을 얻은 죤이 나의 새로운 생활습관을 만들어 주고 있는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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