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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은 포틀랜드 맘 Oct 07. 2022

포틀랜드적인 삶

힙하다고 알려진 포틀랜드, 실제로 그곳에서 산다는 것

-이 글은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게재되었습니다. 


언제까지 킨포크, 에이스 호텔을 떠올릴건가. 포틀랜드는 당신 생각처럼 힙하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더 멋지다. 


미국이민생활 9년차. 친구들에게 ‘놀러와, 보고 싶어, 외로워'라며 징징대면서도 막상 그들이 ‘나 포틀랜드 놀러가!’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갑자기 두려워진다. 나의 첫 반응은 언제나 이렇다. “있잖아. 포틀랜드는... 시골이야.” 그렇게 놀러와달라고 매달렸는데 친구가 비행기표를 덜컥 구입하고 나면, 놀러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주절주절 떠들게 된다. 이게 다 에이스 호텔, 스텀프 타운, 킨포크 때문이다. 미국은 관심없지만  포틀랜드는 관심있다는 친구들이 놀러오고 싶어하는 도시에 살고 있으니 덜 외롭긴 한데, 또 그 힙한 이름값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여러번이라 놀러오기전 미리 기대감을 낮춰줘야겠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가 내 애인도 자식도 아닌데, 만나고 나서 실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포틀랜드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는 고작 하와이 5일, 샌프란시스코 5일 출장만을 다녀온, 미국의 ‘미'자도 잘 모르는 ‘유럽여행파'였다. 긴 역사와 그만큼의 문화 유산을 갖춘 유럽과 아시아에 비하면 솔직히 미국은 어쩐지 부동산 재개발로 갑자기 돈 좀 만진 얄팍한 졸부 같은 이미지가 있었고, 굳이 돈을 모아 여행가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다. 경주나 안동은 여행지로 괜찮지만, 굳이 하남이나 판교에 여행하러 갈 생각이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 내가 미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회사를 때려치고 방문 한 번 한 적 없는 뉴욕에서 뉴요커로 살아보겠다고 짐을 몽땅 배에 실었다. 동경하는 문화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즐기는 문화는 분명 유럽이 아니라 미국에서 온 것이었고, 한참 전의 문화를 되새김질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유럽의 팝컬처에 비하면 미국에는 어떤 동시대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미술과 건축을 보러 여행하는 거라면 몰라도, 거주하는 거라면 유럽보다 미국이 낫다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5년, LA에서 2년, 그리고 이 곳 포틀랜드에서 2년. 나 역시 낯설었던 이 미국이라는 땅에서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더럽고, 시끄럽고, 불친절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고장난 지하철에 갇혀 있어야 하지만 서울만큼이나 사랑했던 뉴욕을 떠나 LA로 향했던 건 잠시 그 곳에서 직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햇빛찬란한 곳, 모두들 여유롭게 싱글거리며 ‘하이'를 남발하는 남캘리포니아와 결코 사랑에 빠지지 못한 건 불쾌함과 불평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아내는 나의 비뚤어진 성격 탓이었다. 비치보이스나 산토&조니가 어울리는 햇살 속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수피안 스티븐스가 어울리는 날씨나 그리워하는 나같은 애들은 캘리포니아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더 정이 들기 전에 라라랜드를 떠나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포틀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90년대부터 포틀랜드에서 살았다는 남편의 친형을 그때 나는 처음 만났다. <포틀랜디아>에 나오는 캐릭터의 전형이었다. 그는 ‘파타고니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펜들튼’의 울 체크 셔츠를 입고, 포틀랜드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수염을 길렀다. 방에는 우크렐레와 기타가 걸려있고, 매일 밤이면 수제 맥주를 사와서 LP레코드를 꺼내 틀었고, 아침에는 메이슨 자(jar)에 물을 따라주고 원두를 갈아 포어오버(핸드드립이 아니라)로 내려주고는 자전거를 타고 광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여행객이었던 나도, 그에게 에이스 호텔이 어딨냐고, 스텀프 타운 커피숍은 어딨냐고 물었다. 대답하는 대신 그는 <포틀랜디아>가 포틀랜드를 다 버려놨다고 불평했는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포틀랜디아 캐릭터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다운타운 대신 포틀랜드 도심을 벗어나 바닷가로, 산으로, 계곡으로 데려가곤 했다. 여행객으로 보았을 때 포틀랜드는 생각보다 작았고, 음식이든 쇼핑이든 나이키 아울렛을 제외하고는 캘리포니아가 나았고, 다른 도시에 비해 딱히 더 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곳곳에 폭스바겐 버스나 오래된 빈티지 차가 많아 신기했던 것, 작은 공연장에서 프랑스 밴드의 공연을 보는데 내 바로 뒤에 스티븐 말커머스가 있었던 것, 그리고 작은 공원에서는 가끔 모디스트 마우스가 와서 합주도 한다는 말 등에 깜빡 속아 포틀랜드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좀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터를 잡고 나서는 팬데믹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속은 건지, 유명한 음악인들은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곳에 놀러왔던 친구들로부터 우연히 여행지에서 강다니엘을 봤다는 것만이 내가 들은 유일한 셀럽 이야기다). 이제서야 시아주버니가 문화적인 공간 대신 우리를 산으로 바다로 끌고 다녔는지 알 것 같다. 오레건은 10월부터 4월까지 지나치게 비가 많이 와서 장화와 우비가 일상이기는 해도 곳곳에 키가 큰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다. 우리집 뒷뜰만해도 10미터는 족히 넘는 소나무와 호랑가시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만년설로 덮인 세인트 헬레나 산과 활화산인 후드 산이 있고, 윌라멧 강이 도심을 흐르고, 두 시간 운전이면 태평양을 확인할 수 있는 포틀랜드의 자연여건은 드넓은 미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포틀랜드 사람들은 ‘환경문제’에 대단히 예민하다. 많은 환경단체에서 제안하는 행동들이 이미 실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이웃을 통해 확인하곤 한다. 나는 동네 친구들이 권해 페이스북의 ‘buy nothing’이라는 그룹에 가입했다.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끼리 쓰던 물건을 버리지 말고 나누어쓰자는 의도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동네별로 구획이 나뉘어 한 그룹에 가입하면 다른 동네 그룹에는 들어갈 수 없도록 잘 조직화 되어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중고 거래 사이트들 대부분에 소위 ‘업자’가 끼어들어 이래저래 물이 흐려지고 있는 와중에도, 이 그룹은 이웃들끼리 투명하게 운영되며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눔을 지속한다. 유통기한이 내일인 우유가 있는데 너무 많으니 오늘 나눠마시자고 올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나이든 친정 엄마는 미국에서 사는 내가 어디 가서 주눅들까봐 툭하면 ‘네가 동양인이라 어떻게 보일지 모르니 옷도 좋은 걸로 잘 챙겨입고 화장도 좀 하고 다녀!’ 하고 잔소리를 하는데, 이건 정말 포틀랜드를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포틀랜드로 이사 온 후, 내가 아끼는 예쁜 옷들은 단 한 번도 이 좋은 포틀랜드의 공기를 마신 적이 없다. ‘블레이저' ‘울/ 캐시미어 코트' 같은 건 빛도 못 봤는데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데님 진 같은 요즘 아이템을 살 필요가 있겠는가. 알고보니 우리 시아주버님의 스타일이 좋았던 게 아니었다. 그 분 역시도 그 옷만 일년내내 줄구장창 유니폼으로 입는다. 파타고니아 점퍼 하나에 장화 한 켤레면 이 오레건의 온화한 겨울을 스타일리시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입을 기회도, 날씨도 없다는 걸, 그래서 그 돈 모아 뒷뜰 꾸미는데 쓴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포틀랜드의 80-90년대 복고 스타일이라는 것도 ‘트렌디'나 ‘힙’함이 아니라는 걸 금세 눈치채게 된다. 한국에서 온 친구와 그 유명한 ‘everyday music’ 레코드 스토어에 들어갔는데, 일하고 있는 분들이 모두 ‘그린데이'나 ‘건즈앤로지즈' 팬들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80-90년대 레트로 스타일이 유행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에 10대나 20대를 보낸 저이들은 아마 지난 30년간 그 시대의 스타일에서 한 번도 벗어날 생각을 품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레코드 숍에만 있지 않다. ‘우버'를 타면 기사님들의 모습을 통해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30년을 스쳐지나갈 수 있다. 이 곳은 힙스터의 도시가 아니라 너드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도시라는 편이 맞다. 그러니 포틀랜드에 놀러왔던 패션 포토그래퍼가 ‘도대체 포틀랜드가 왜 이렇게 좋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대략 이해가 됐다. 한 친구는 포틀랜드를 벗어나 시애틀로 들어가면서 ‘이야, 도시다!’하고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고 했다. 

포틀랜드에는 나이키 본사가 있고, 크고 작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미국지사가 모여있고, 많은 광고회사와 마케팅 에이전시가 있는, 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다. 미국의 젊은 크래프트 장인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로컬 비즈니스와 아티스트들이 협업을 통해 꾸준히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도시의 에너지를 여행을 통해 발견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도시의 속도나 유럽이 규격화해놓은 ‘스타일리시' ‘멋스러움'과는 다른 종류의 문화가 그 저변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는 분명 사람들이 기대하는 트렌디하고 힙한, 신나는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도시가 어느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를 보여주는 롤 모델인 것은 확실하다. “Keep Portland Weird”라는 슬로건은 ‘우리는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눈앞의 이익과 돈만을 좇는 ‘부자도시' ‘성장형도시'를 외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옷수선 프로젝트'나 여자들끼리 모여 만든 위스키 주조장, 작은 캐러밴 호텔 프로젝트 같은 걸 찾아내고 나면, 포틀랜드가 조금 더 재밌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우리동네로 놀러와서 옆집에서 키우는 닭들의 계란을 기다리는 것이다. 요즘 우리 동네 주민들은 ‘텃밭 기르기'를 넘어서 ‘닭키우기' ‘염소 키우기'로 범위를 넓히는 중이니까 말이다. 


Photo by 포틀랜드관광청 제공 +포틀랜드맘 개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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