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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ul 23. 2021

2년 차 직장인의 소회

복잡하게 엉킨 채 닫힌 마음 속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는데 익숙한 멜로디와 노래 가사가 흐른다. 이번 에피소드엔 인턴 의사와 펠로우의 이야기를 다루며 사회초년생, 또는 약간의 경험이 있더라도 새로운 처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겪는 부담과 실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서 맡은 첫자리를 떠나야 할 날을 앞두고 마음 복잡한 요즘, 잔뜩 엉킨 실 같은 업무들을 푸느라 정신없는 요즘, 이한철의 '슈퍼스타'는 너무한 선곡이다. 내가 어찌 눈물을 참을까.


잘 될 거라는 위로를 많이 받기도 하고, 또 많이 해주게 되는 2년 차이다. 이젠 진짜 신입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몸도 마음도 능력도 성과도 신입이기에 신입보다 더 신입 같은 2년 차이다. 어정쩡한 경험과 미숙한 능력은 오히려 첫 번째 해보다 큰 부담과 불안을 주는 요인이 된 것 같다. 뭘 모르면 용감하기라도 하지 않은가. 여하튼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인턴과 펠로우의 시행착오들을 보며 참지 못한 눈물을 계기로 두서는 없지만 뭐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부쩍 마음 복잡한 요즈음이다.




연수원과 수습근무 시절을 지나 지금 직장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작년 1월이다. 어설프다는 표현도 사용할 수 없는, 아무런 체계도 경험도 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나는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설마 맨땅에 헤딩을 하겠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첫날 자리에 가서 느낀 것은 명확한 '맨땅에 헤딩'이었다. 나름의 기대와 두려움, 설렘 따위 것들은 출근 하루 이틀 지나며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트랙 위 경주마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퇴근 시까지 내달렸다. 업무량이 압도적이었다기보다는 업무가 생기면 어찌해야 할 줄 몰랐고 자발적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여 이게 맞는 건가 늘 마음이 바빴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의 경위와 의미, 경중과 정오를 고민하거나 판단하지도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뉴얼을 보고 조립할 수 있는 레고 성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치와 입법 영역이 제기하는 각종 이슈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사고에서 비롯되는 민원과 언론 보도, 연례적으로 해오던 것들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성과를 위한 반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속에서 자의 혹은 타의로 일에 힘을 주기도 빼기도 해 가며 상황에 맞는 판단을 요구받았다. 조립 설명서가 무의미하다 보니 체득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답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는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게 잘 되어가는 것인지 별로인지 매번 지시를 받을 수도 없다. 한 파트의 담당자로서 최초의 판단은 내가 내려야 했고, 실제로 내 선에서 판단이 끝나야 하는 것들도 많다. 이런 판단의 순간들은 매번 쉽지 않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어려움과 시행착오는 정해진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한 번도 이런 잦고 무겁고 동시에 빨라야 하는 판단들 속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물냉면을 먹을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결정하는 일은 온전히 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만약 물냉면을 선택한 뒤, 사실 이 집이 비빔냉면 맛집임을 알게 닫고 후회한다면, 그 책임은 나의 불만족으로 내가 지면 된다. 학교 시험이나 입시, 취업도 마찬가지이다. 내 판단의 모든 결과는 나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업무에서 내 판단의 결과은 사회에 그 책임은 조직이 떠안는다. 그렇기에 상급자들은 담당자인 내 판단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의심을 품는다. 존중과 의심의 무게를 견뎌내는 동시에 빠른 판단이 요구되기도 하고, 의심의 무게가 너무 커 존중이 무너지기도 한다.


2년 차가 되어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져 판단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1년 차엔 적어도 '난 왜 이것밖에 못하고 있는가'라는 자책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요새는 매주, 매일, 점점 주기가 짧아진다. 그 와중에 곧 다른 자리로의 인사이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날 나의 안일한 판단이 만든 문제들이 눈에 밟히고, 한편으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조직에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기대와 포부를 먼저 가져보려고 애쓰지만, 이미 난 2년 차이고 부담이 더 커져있다. 싱숭생숭한 감정은 뒤로 미루고, 정리해야 할 것들을 추려보려 노력하지만 마음 같지가 않다. 내 앞 날도 모르는걸.




당연한 것이겠지만 직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거대한 포부와 넘치는 열정 외의 것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읽었던 위인들의 대서사시엔 젊은 날의 실수와 과오들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어리바리하게 멍 때리고 있던 책상 앞, 자신이 없어서 서성이기만 했던 상급자의 방 문 앞, 내일 해야 하는 보고 때문에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 못 들고 바라본 천장, 뻣뻣하게 굳어버린 목과 어깨. 이런 현실의 절절한 고충들은 나중에 언젠가 윗선에 올라가고 은퇴할 즈음이 되면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지'라는 나 때 스토리의 한 구절을 차지하게 될 테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무거운 한숨만 나오게 할 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갓 펠로우를 시작한 장겨울도 교수인 이익준의 따뜻한 격려를 듣고도 썩 위로가 되지 않아 실패담을 들려달라는 말을 한다. 격려가 큰 힘이 안 될 것임을 이익준도 잘 알았을 것이고, 사실 장겨울도 실패담을 듣는다고 내일의 자신이 바뀌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사회초년생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라도 작은 위로는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된다. 비록, 내일은 다시 가쁜 숨을 내쉬며 어떻게 가는지 모를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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