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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5. 2019

53,700원으로 에어팟 2를 샀다

애플 기브백으로...

수많은 이어폰을

써보고 사고 다시 팔고 별짓을 다했다. 물론 에어팟도 그랬다. 완전 무선 이어폰 중에서 가장 편했지만 오픈형이라 외부 소음 들어오는 게 싫어서 점차 안 쓰다가 회사 부장님께 쿨거래로 팔았다. 며칠 후에 후회했다. 없으니까 아쉬운 게 에어팟이었다. 다른 이어폰들이 아무리 음질 좋고 편하다고 해도 에어팟만의 찰떡 같은 경험을 똑같이 전해주진 못했다.


오픈형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지만 막상 에어팟이 없으니 아쉬운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벼운 동네 산책이나 자전거를 탈 때나 사무실에서 일 할 때 작게 듣거나 조용한 방에서 차분히 듣거나... 뭐야 생각해보니 많잖아? 어쨌든 오픈형 이어폰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다가 Sabbat X12 Pro라는 4만원짜리 오픈형 완전 무선 이어폰을 알게 되어 질렀다. 음질은 매우 깨끗했는데 너무 미끄러워서 내 귀에 꽂을 수가 없었다. 에어팟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갔다. 있을 때 잘 할 걸. 후회해도 소용 없어. 넌 어디 있니. 아, 부장님한테 있지. 행복하니? 나 요즘 너무 힘들다...



애플 기브백 프로그램이

있단다. 사용하던 옛 기기를 갖다 주고 일정 금액 보상금을 받는 거다. 내겐 안 쓰는 아이폰 6s가 있다. 이거 갖다 주면 19만9천원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럼 뭐야 이거. 돈 안 들이고 유선 충전 버전 에어팟 2로 바꿔올 수 있는 거잖아? 당장 가야...하지만 아무리 쓰지 않는 아이폰이라고 해도 팔아버릴까 생각하니 영 찜찜했다. 추억이 많은 녀석인데.

.

.

.

그렇게 어언 한 달을 고민했다. 아,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보상 가격이 내려갔다. 이제 19만9천원이 아니라 14만5,300원을 준단다. 이런 젠장. 더 이상 묵혔다가는 썩어서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았다. 결심했다. 이 녀석을 떠나보내고 돈 좀 더 보태서 에어팟 2를 사는 걸로. 그렇게 나는 기온 30도가 넘는 5월의 어느 불금에 애플스토어로 향했다.


가기 전에 사무실에서 아이폰 6s를 괜히 한번 찍어보았다. 영정사진인가.


애지중지하며 써서 나름대로 깨끗한 편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하긴 3년 가까운 시간을 실사용했으니. 내가 제일 처음 출고가 그대로 샀던 스마트폰. 많은 추억이 깃든 폰. 이젠 볼 수 없는 거라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목은 메이지만 발걸음은 왜 이렇게 가벼운 거야?


사진이 엄청 흔들렸다. 신났었나보다. 가로수길의 분위기도 나를 축하해주듯이 활기차고 아름다웠다.


안녕

이라고 말 하지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그러어나

자꾸 눈물이 나서

널 볼 수가아아 없어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모을라


왜 자꾸 이러니 왜 자꾸 날 힘들게 하니

니가 자꾸 이러면

내가 널 떠나 보내기가 힘들잖니

내가 어디가 좋니 이렇게 매일 고생만 시켰잖니


정신차려

바보야 정신차려 제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제 니가 정말 싫어

그러니 제발 돌아가

제발 저리가

난 니가 시러

니가 정말 시러ㅓㅓ


여긴 올 때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래도 에어컨 시원해서 좋았다.

직원 아저씨한테 기브백 하러 왔다고 하니 접수를 해줬다.

앞에 8명이나 대기하고 있다며 좀 기다리란다.

오늘은 남는 게 시간이니까 괜찮다.


눈 앞에 아이폰 XR이 쭉 있었다.


내가 샀던 아이폰 XR 프로덕트 레드도 예쁜데

지금 생각해보면 화이트가 더 예쁘다.

화이트로 살 걸 그랬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찍어서 그런가 내 아이폰 XR 레드가 질투했는지 사진이 영 꽝이다.


솔직히 너는 진짜 너무 비싸다. 인정?


높아서 오래 앉아있기 힘든 의자에 기대어 멍 때리다가 한컷.


20분 넘게 기다리니 직원이 드디어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는 아이폰을 찬찬히 보더니

"케이스 씌워서 쓰셨나봐요. 상태가 너어무 좋은데요? 이 정도면 (보상금을)많이 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라며 극찬을 한다.

'3년 가까이 썼는데 케이스도 많이 샀고 제가 워낙 애지중지해서요. 뭐... 별 거 아닙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 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아 네- 라고 대답해줬다.

그렇게 아이폰 6s는 보이지 않는 비닐 옷을 입고 봉인되었다.

그는 에어팟 2를 꺼내며 14만5,300원을 까줄 테니 서명을 하라고 했다.

나는 파양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기억나.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리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


바람에 흩어지는 회색 먼지처럼 그렇게 난 잊혀져 가겠지

기억해줘 네게 머물다간 어떤 사람이 있다는 걸

마지막 부탁이야 힘들지 않도록 슬픈 얼굴 보이지 말아줘

어둠이 날 덮어 깊은 잠에 들면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rap)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

너 혼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내 마음은 더 아파

하지만 어쩌겠니 정해진 시간은 이미 끝났는 걸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떠나간 내 시간들 좋은 기억들

은 슬픈 추억으로 묻고 이제는 떠나가 미련 없이 너는 너의 갈 길을 가

이제는 너는 내 모든 것을 흙으로 재로 날려보내 줘내

싸진도 내 향기도

쿵 칫 쿠쿵쿵 칫


둠 칫 두둠둠 칫


에어팟 2다!!


간 사람은 간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나는 53,700원에 에어팟 2를 샀다. 저 노래를 틀고 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옛 기억을 떠올렸다. 영화 <중독>에서 이미연은 이런 말을 한다.


에스키모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다 같이 모여서 닷새동안 그 사람 얘기만 한대요. 얘길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거야. 그리고나선 다시는 얘기하지 않는대요. 자꾸 얘기하면 그 영혼이 가야할 데를 못 가니까...



나는 앱등이가 아니다.


(참고로 손목에 애플워치 차고 있었는데 같이 찍는 걸 깜박함)


5만원대에 산 에어팟 2라서 그런지 패키지가 더 위대하다.


앱등이는 아닌데 비닐을 제거할 때는 이렇게 3개의 모서리에만 조심스레 칼집을 내서 뚜껑 비닐은 벗기지 않는 게 예의라고 들었다.


이쯤 되었을 때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조년월은 MAY 2019. 유선 충전 버전 에어팟 2는 1세대와 너무도 똑같아서 그냥 눈으로만 봐서는 잘 모른다. 무선 충전 버전은 앞에 LED도 있고 등쪽 버튼 위치도 약간 다른데.


별 거 없네.


흡 하

하악


귀에 아무런 부담 없이 착 걸쳐지는 이 착용감. 오픈형 구조에서 들리는 베이스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음역 부스트. 매트한 듯 매끈한 듯 군더더기 없이 너끈한 고음역. 그 균형감. 풍성한 울림. 그래 이걸 기다렸다. 역시 나의 에어팟은 이래야지.

아이폰에 듣다가 패드에 연결할 때와 다시 폰에 붙일 때 속도도 겁나 빠르다. 1~2초면 된다. 블루투스 5.0과 새로운 칩의 조화가 경이롭고 아름다운 성능을 유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 물론 나는 패드로 음악을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음악은 폰으로만 들으니까. 이렇게 유용할 수가.


수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험한 세상 끝에서

숨이 끊어질 때

그제야 나는

알게 될지 몰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 곳은 너였음을

나라

머린나아이레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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