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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나?’는 의심: 인생

하고 싶은 건 뭐든지라는 주제로 매거진을 발행해 보자는 생각을 한 건 내가 요즘 그야말로 웬만하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부 주제는, 민트리 님이 언젠가 《이것도 출판이라고》를 내신 후 내게 뭐라도 책을 써 볼 주제를 정해서 이리저리 글을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지나가듯이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머릿속에 내내 고여 있던 키워드로 골라 정했다. 그래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잡다한 경험을 약 (무려) 열 가지 토픽으로 추릴 작정이었다. 쓰고 나면 누구든 심심풀이로라도 열어 본다는 걸 이젠 경험으로 아는데도 왠지 아까 커피를 마신 탓인지 괜한 자의식 과잉으로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하겠어?” 하면서 내용을 한껏 숱치기했다. 그 덕분에 그래도 “하고 싶은 일”에 관한 내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관해서는 실컷 떠들어서 나 혼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로 그득하게 된 내 삶에는 거대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애초에 “우리가 왜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그동안 나는 꽤 오래 이게 정말 궁금했다. '왜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음악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보다도 이게 더 궁금했다. 삶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죽음은 우리가 선택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내 삶을 크고 거대해서 오래 기다려야 할 거창한 행복 대신 당장의 짧고 소소한 행복으로 채우려고 마음먹은 이유도 바로 이 물음 안에 있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엔드 오브 타임》에 보면, 인간은 아직도 지구에 어떤 절묘한 우연으로 우리 같은 지성체가 출현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그 대목에서 왠지 큰 위안을 얻었다. 존재 의의를 막연히 모르는 것보다 차라리 답지에 ‘일단 모른다는 것은 확실함’ 같은 것이라도 받아들면 오히려 기분이 후련해질 때가 있으니까.


내게 삶은 여전히 “왜 사냐?”는 물음을 이따금 물수제비처럼 수면 위로 툭툭 띄워놓는 시간이긴 하지만, 어느 새 그 못지 않게 수면이 잔잔할 때는 잔잔한 대로, 이리저리 몰아칠 때는 또 몰아치는 대로 흐름에 몸을 내맡기며 이따금 나부끼는 바람 냄새를 맡는 기분 좋은 여정이 되었다.


요즘 나는 그냥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낭비하는 인간 개체 1의 삶을 살고 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소진할 때까지 내 삶은 대체로 이럴 게 분명하다. 뭐, 그러니 사실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우리 엄마의 ‘허송세월’이라든지 ‘후회막심’ 같은 표현이 어찌 보면 영 그리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 틈에서 어떻게 해서든 부단히 폴폴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행복을 지어 나와 주변 사람들을 배 불리 먹일 작정이다. 자연계의 사건과 현상에는 그 어떤 의도도 목적도 없고, 우리에게는 그 어떤 운명도 예고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의도와 목적을 실현할 지성체로서의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을 세상의 행복 총량에 아주 미미하게나마 기여하는 방식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려고 나부터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 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점점 더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된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일도 무진장 많이 하면서 몸소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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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에너지를 널리 전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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