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빗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수요일이다. 기나긴 시간제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생활을 청산하고 인생 최초의 정규직 전업 노동자가 된 그 여름에는 비가 참 지독하게 왔다. 심지어 입사 당일 본사 직원과 함께 첫 파견 사업장(대기업의 강남 사무실)으로 이동하던 때도 오늘처럼 비가 쏟아졌다.
출퇴근 3시간+, 지겹게 내리는 비, 사회 초년생 여자를 향한 어딘지 늘 묘한 시선 등. 지금 생각해 보면 날 거기 붙들어 놓을 만한 게 뭐 하나 없었는데, 그때는 제법 어엿하게 사회 구성원 1인으로 기능한다는 기분에 취해 그저 모든 게 좋았던 것 같다.
인생 최초의 사수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나중에는 업무 외적으로도 어울려 지낼 만큼 친한 친구가 되었다가 더 나중에는 아예 연락을 끊었지만, 사수와 나는 여러모로 관심사나 성향이 비슷한 편이었으니 나는 제법 운이 좋았던 셈이다. 뭐,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사수가 배정되는 환경이었던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신입에게 사수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거든.
사수와 나는 둘 다 책도 좋아했고, 음악도 좋아했다. 지금이야 내 주변에 온통 책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천지지만, 당시 내 주변에는 소프트스킬을 하드스킬로 찍어 누르고 무시하는 공대생 혹은 엔지니어뿐이었기 때문에(모든 IT 분야 종사자가 이렇다는 말은 아님), 이 경험이 제법 소중했다.
이동 시간을 포함해 최소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회사에 고스란히 바쳤기 때문에, 그때 내게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건 거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몇 달쯤 적응기가 끝나고부턴 팀 사람들을 이탈해 점심을 얼른 대충 먹고 내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기보단 그냥 책을 읽을 때 만들어지는 나만의 오롯한 공간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수는 내 옆자리였는데, 말했듯이 나와 취향도 성향도 비슷한 편이었지만 딱 하나 나와 다른 게 있었다. 사람을 의식하는 면에서 사수와 나는 거의 양극단에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매우 예민하게 관찰하고 지켜보지만 전혀 그러지 않는 척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상대 파악이 끝나면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심 스위치를 아예 끄는 성격이다.
그에 반해 사수는, 말하자면 모든 관심 레이더가 종일 풀가동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나를 어쩐지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척한다”느니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그냥 나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 모습을 투영하면서 매우 불편해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기도 남 신경 안 쓰고 그냥 자기 자리에서 편하게 책도 읽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못 하고 있던 걸 내가 뻔뻔하게 하고 있는 게 거슬렸던 걸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게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 버리고 마는 기질이 씨앗처럼 느리게 움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남이 시키는 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만 온통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들면 참 신기하게도 그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떻게든 살려고 치는 처절한 발버둥처럼.
휴, 드디어 지루한 사수 얘기가 끝났다. 아무튼 나는 이 첫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 해낸 결과 조금은 모순적이게도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했다. 계기나 과정이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딱히 다독가도 아니었고, 열심히 읽은 건 주로 만화책이었다가, 첫 직장 생활을 통해 얻은 작고 귀여운 경제력을 우연히 책 소비에 쓰면서(회사 근처에 대형 서점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본격적으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인이 된 후 뒤늦게 책을 좋아하게 돼서인지 우리가 책을 두고 펼치는 아주 게으르고 손쉬운 편견이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은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책은 영화, 게임, 유튜브 영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밌으려고 읽는 거지, 남들에게 “책 읽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 읽는 척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책을 딱히 많이 읽지도 않고, 책이란 건 물론 매우 멋지지만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한다는 말”이 내포하는 사회적 맥락이 망령처럼 2020년대까지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사실 자체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겠다.
이 지점에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드러내는 아주 강력한 방법을 공유해 볼까 한다. 내가 몇 년 전쯤 영국문화원 어학원 수업 때 써 본 이후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는 방법이다. 특히 영어 회화 수업 때 써먹기 좋다. 사회적 체면을 따지는 자리에서 한국어로 절대 묻지 않을 것을 영어로는 다들 시키는 대로 아기새처럼 잘 따라 묻곤 하니까.
“뭘 좋아하세요?” 혹은 “시간 날 때 뭐 하세요?”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전혀 내 답을 궁금해하지 않는 얼굴에 대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대답하려면, 특히 그 대답이 책이나 독서처럼 상대의 관심을 끌기는커녕 천 년의 피로를 끌어모은 하품으로 인도하게 될 상황이라면 한번 이렇게 해 보자.
1) 눈을 똑바로 마주친다.
2) “저는 책 좋아해요.”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그리고 어딘지 어색해질 분위기를 염려해 “딱히 읽지는 않고 그냥 사는 것만 좋아하긴 하지만요.” 같은 더 솔직한 답은 절대 덧붙이지 말자.
3) “어떻게 이런 데서 그런 지루한 답을 할 수 있지? 책 좋아한다는 말은 원래 똑똑한 척하고 싶은 재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눈빛을 빤히 마주본다.
4) 상대가 어색한 분위기를 혼자 고스란히 감당하도록 절대 내가 먼저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 주지 않는다(이건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
영어 회화 수업 때 겪은 실제 내 경험이니까, 믿고 시도해 봐도 좋다. 원래 기(?)가 약한 상대일수록 솔직한 답과 침묵에 취약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인 진리와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유일한 방법은 감추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오리온 초코파이 옛날 광고 카피).’라든지 모두를 꿰뚫어 보는 궁예의 ‘관심법’ 같은 걸 기대해 봤자 더 큰 오해만 낳을 뿐이다.
그냥 좋아하는 게 있다면 솔직히 말하자. 좋아하는 걸 더 자주 떠들수록 나와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와 인연도 더 많이 생긴다. 나 역시도 그런 삶의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열심히 좋아하는 걸 떠들고 사람 만날 기회를 찾아다녔더니, 지금은 주변이 책 좋아하고 영화나 드라마 좋아하고 영어 좋아하고 번역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허구의 체면을 따지며 좋아하는 걸 남에게 잘 드러내지도 못하던 이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걸 솔직하게 나누고 삶 속에서 긴 호흡으로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좋아하는 걸 시끄럽게 떠들면 자다가도 떡 , 친구와 기회가 생긴다(떡이 필요할 땐 기회를 활용해 돈을 벌어 사먹거나, 친구를 재밌게 해 주고 잠깐 빌붙어 보기로 하자). 그리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반드시 또 존재한다(You’re not alone).
그래도 친구들, 도플갱어는 마주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꼬옥 도망가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