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의 씨앗은 잭의 콩나무처럼 하룻밤새 자라지 않지만

그럼에도 씨앗은 자고로 냅다 던져 놔야 제맛

식물을  길러내는 천부적 능력을 보유한 이들을 영어권에서는 ’green thumbs’라고들 부른다. 나는 정확히  반대 급부로 식물을 향한 지나친 관여와 성급한 판단으로 건강하던 식물의 생기도 끊어낸 무자비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는데(찾아보니 이런 사람들을 ‘numb thumbs’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렇듯 딱히 식물을 돌보는 일에는 아직(?)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지만 그럼에도 뻔뻔하게 ‘씨앗을 심는다 비유만은 즐겨 쓰는 편이다. 씨앗이 품고 있는 시간이라는 속성 탓이다.


처음에는 그냥 안 하던 일에 도전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그런데 신선함이 주는 설렘에 한껏 취해 있다 보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숙취는 늘 불안과 안달을 동반했다. 뭘 올릴 때마다 ‘악플’을 지나치게 입체적으로 상상하며 정체 모를 두려움에 떨면서도 내심 ‘선플’이라는 이름의 긍정적 보상을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잘 보면 확률적으로 내가 가장 자주 마주해야 했던 건 ‘무플’, 즉 ‘반응 없음’이었다.


이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니 다행히 악플을 상상하는 버릇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이후 악플을 받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럴 만큼 내 작업물이 널리 퍼졌다는 뜻이니 나름대로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다만 무플의 시간을 견디는 일에는 지혜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때 이 ‘씨앗’ 비유가 떠올랐다. 씨앗을 심듯이 여러 소소한 작업을 가늘지만 끈덕지게 이어가면서, 무심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미묘하게 적당한(?) 양의 관심만을 기울이면서, 시간이라는 이름의 비와 바람, 햇살이 내 씨앗을 보살피고 키워 주길 기다린다는 뜻이다.


내가 1년 전쯤 우연한 기회로 검토서를 쓰고, 1년 뒤 출간 계약을 맺어 작업한 첫 번역서도 이런 과정 속에서 우연과 주변의 도움을 통해 싹을 움터 세상빛을 보게 되었다.


《너의 궤도를 맴돌며》, 게리 D. 슈미트 지음 / 서미연 옮김 / 블랙홀 펴냄

http://aladin.kr/p/VfVcK


들뜨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초심자의 운을 맛보고 나니 벌써부터 앞날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과연 다음이 또 있을까, 하는.


하지만 나만의 가상 정원을 가꾸며 얻은 깨달음이랄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건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거다. 대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여러 씨앗을 부지런히 분별 없이 재미로 심어대며, 그중 더 키워갈 싹이 보이는 것들을 골라 관심과 노력을 쏟으며 키워 가는 일이다.


그렇게 조성된 생태가 어떤 모습일진 가히 상상도 되지 않지만, 뭐, 화려하든 조악하든 괜찮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날것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보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날의 독서를 좋아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