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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 앨리엇 (1)

피아노 독학자의 기쁨

왜 제목을 독학자의 '기쁨'이라고 지었을까? 요즘 딱히 기쁠 일이 없는데. 억지로라도 이런 단어를 쓰면 일상이 좀 기뻐지려나?


요즘 어쩌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레슨 받을 돈도 없는데, 그나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이게 이런 맥락에서 쓰는 말이 맞기는 한가?) 선생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서로 교환하듯이 나는 피아노를 배운다.


피아노를 배우고 익히는 상황이 영어로 말할 때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예전에 피아노랑 영어가 둘 다 잘 안 풀릴 때(요즘 영어는 그래도 좀 나아졌으니까)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앞으로 영어로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면, 피아노도 좀 더 편해지겠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전에는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면 선생님에게 그나마 편안하게 내가 연습한 부분을 들려 줄 수 있게 되기까지 한 1년쯤 걸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전반적으로 마음이 좀 편안해진 탓인 것 같다. 극내향인으로 살면서 말하고, 연주하고 뭐라도 아웃풋을 내는 게 참 녹록지 않은데, 그래도 이런 나를 잘 달래 가며 살아야지, 뭐.


앞으로는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말도 많이 하고, 남 앞에서 피아노도 연주해 보고, 뭐든 내가 오랫동안 뚝딱거린 것들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흔히 '어릴 때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유창성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지레짐작하고 마는 분야에서 뭐든 허접하나마 나만의 귀여운 성취를 만들어 보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선생님 H에게 책을 한 권 추천받았다.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 전 가디언지 편집국장 겸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쇼팽 연주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영화 〈줄리&줄리아〉의 패러디 같은 느낌으로 나도 제목을 지어 봤는데, 뭐, 여기에 소소하게 기록하는 데서 그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 보려고 한다. 내일은 이주일 만에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막상 런던 살 때는 내 플랫메이트(한국인)만 가끔씩 나를 엘리엇(=내 영어 이름)이라고 불러 주곤 했는데(같이 집에서 영어 공부 할 때), 요즘은 팟캐스트 녹음할 때도 이 이름을 쓰고, 영어로 대화할 때도 이 이름으로 불러 주는 친구가 조금 생겨서 기분이 좀 남다르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 바버라 러스브리저에게 보내는 저자의 헌사로 시작된다.


"To my late mother, Barbara Rusbridger, who forced me to practise and who told me that music would lead to friendship. She was right. (돌아가신 제 어머니 바버라 러스브리저 여사께 바칩니다. 음악을 매개로 한다면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라며 제게 연습을 강요하셨죠. 그 말씀이 옳았어요.)"


올해는 나도 피아노 연습하면서 같이 음악 얘기 나눌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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