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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윤 Feb 01. 2021

네이버가 스타트업과 공존하는 방법

양상환 네이버 D2SF 리더

양상환 네이버 D2SF 리더 인터뷰


네이버의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조직 D2SF를 이끄는 양상환 리더님 인터뷰입니다. 네이버가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기사를 작성할 때 별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해봤습니다.


네이버 D2SF 제공


- 네이버 D2SF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이버 D2SF는 2015년에 설립된 벤처 캐피탈 형태의 네이버 내부 조직입니다. 별도의 회사나 법인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초기 기술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는 기업주도형 벤처 캐피탈(CVC) 조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네이버는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나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전략적 투자자로서 전략적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자를 하면 장단기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기술 협력일 수도 있고, 네이버가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스타트업이 네이버의 고객이 되는 경우도 있겠죠. 이처럼 스타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끌어내는 것이 저희 조직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둘째,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 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기술 스타트업 풀이 작습니다. 풀이 더 커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과실의 크기도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술 스타트업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 D2SF는 어떤 기술을 선호하나요?


“단기적으로는 네이버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면 모두 투자 범위에 들어갑니다. 저희도 네이버와 네이버 독립 기업(CIC)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CIC가 어떤 기술력, 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죠.


문제는 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추구할 때인데요.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최근 4~5년 행적을 보면 네이버가 기술적으로 엄청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기술 기업으로 탈바꿈했는데요. 특히 CIC가 분사를 하면서 각자 사업을 전개하는 형태는 4~5년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움직임입니다. 5~10년 후에 필요한 기술은 현업에 있는 누구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어요. 상상력을 동원해야 어떤 기술에 투자할지 판단할 수 있죠. 이런 부분은 리스크 감수가 필요합니다.


단기적인 부분은 협력 관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찾기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나치다 싶은 곳에도 투자하는 것이 저희 미션입니다. 4~5년 전에는 인공지능(AI)에 상상력을 동원해 집중 투자했어요. 전체 포트폴리오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는데요. 이제 새로운 시장이 열리려 하고 있죠.”


- D2SF의 투자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


“보통 2차 미팅까지 진행하는데요. 1차 미팅은 저희가 살펴보면서 네이버와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판단해요. 이때 대략적인 분석이 가능하고요. 2차 미팅은 네이버 관련 사업부서 리더, 기술부서 리더와 함께 리뷰를 진행합니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네이버와 시너지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되면 아주 빠르게 투자 결정이 납니다.”


- 투자 심사를 하면서 특별히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는지요?


“저희는 좋은 기술력을 가진 초기 스타트업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만든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적정 기술이 좋은 타이밍을 만났을 때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기술력은 갖고 있지만 때로는 기술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창업자가 매력적이라고 느낍니다. 창업자가 시장과 고객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느냐가 그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에 투자한 이후에는 어떤 도움을 제공하고 있나요?


“저희는 기술 기업의 부족한 부분을 몇 가지로 정의하고 있어요. 팀 구성, 시장 정의, 사업개발 능력, 마케팅 등이죠. 대표님께서 모두 잘하시면 문제없지만, 경험이 거의 없으신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D2SF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는 기업을 외부에 노출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해요. B2C기업 같은 경우에는 앱을 만들면 트랜잭션이 빠르게 만들어집니다. 성과는 지표로 확인할 수 있죠. 성과가 직접적으로 존재하니까 홍보할 방법이 존재하고, 투자자와 커뮤니케이션하기도 쉬운데요. 기술력 기반의 B2B기업은 그런 게 없습니다. 장막 뒤에 가려져 있죠. 그래서 저희는 기업에 투자한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고요. 기술 자체가 일반인에게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미디어 관계자를 모시고 어떤 기술인지 소개하고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 기업은 대부분 B2B 비즈니스를 하게 되는데요. B2B 비즈니스를 할 때 레퍼런스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D2SF는 스타트업이 네이버와 협업하며 레퍼런스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 네이버와 스타트업은 어떤 협업을 하고 있나요?


“D2SF의 포트폴리오사가 곧 60개를 돌파할 예정입니다. 이중 절반 이상의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AI 데이터 라벨링 업체 크라우드웍스와의 협업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협업의 빈도와 강도가 아주 높은 곳이죠.


데이터는 AI 기술의 원유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를 AI 학습에 쓰려면 수집, 분류, 가공하는 정제 작업이 필요해요. 그래야 뛰어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AI 알고리즘을 만드는 연구원이나 모델러가 데이터 라벨링 업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강아지, 잔디밭, 행인 사진을 갖고 컴퓨터가 인식하도록 학습시키고 있던 거죠. 낭비가 굉장히 심했어요.


크라우드웍스는 이런 낭비를 줄여주는 기업입니다. 저희는 피드백을 드리는 식으로 도왔고요. 네이버는 지금도 크라우드웍스의 넘버원 고객입니다. 네이버와 크라우드웍스는 3년 동안 3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같이 했습니다. 데이터 처리 숫자로 치면 3000만 건이 넘죠. 그 결과물은 파파고 번역, 클로바 음성, 동영상 등 각양각색의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어요.”


- 그런데 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투자한 기업이라면 상당 기간 네이버와 협력하기 어려울 수 있어 보입니다. 스타트업 스스로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을 거고요. 이럴 때 D2SF는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나요?


“데드라인을 놓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기술 자체가 성과를 내는데 필요한 시간도 있으니까요. 대신 네이버와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스타트업의 사업 타임라인이 서로 맞아야 합니다. 네이버가 빠르게 사업 진도를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스타트업이 훨씬 빠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 데드라인이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재무적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스타트업의 불확실성은 펀드가 만기 되기 전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이 시장이 열릴 것인지에 대한 문제죠. 저희는 좀 다르게 접근합니다. 네이버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이 스타트업과 무언가를 같이 해볼 수 있을까? 서로 시너지를 내고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저희는 ‘믿고 기다리는 투자자’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네이버 자본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만기가 있는 형태의 펀드와는 다릅니다. 거기서 출발하는 차이점이 굉장히 커요. 조급하지 않아도 되죠. D2SF는 기본적으로 액셀러레이터입니다. 저희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자기만의 길을 찾도록 도와드리지만, 그분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스타트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항상 열어놓고 있어요.”


- 인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실력은 좋은 팀이지만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진 경우에는 인수를 검토하기도 해요. 현재까지는 재능 인수가 많았어요.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나 기술이 있는데 네이버 내부에는 해당 분야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거나 비어 있을 경우, 유대감이 높고 팀워크가 좋은 팀을 통째로 인수해서 전적으로 맡기는 형태였죠. 앞으로는 다른 형태의 인수 사례도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만든 비즈니스 자산, 고객, 사업 등이 포함된 형태의 인수 형태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D2SF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평판입니다. 우리 팀원들에게 좋은 딜(deal)은 놓쳐도 평판은 놓치지 말자고 말합니다. 딜은 수확과 같은 것이어서 많이 몰릴 때도 있지만, 거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조직에 대한 평판은 꾸준해야 합니다. 평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 태도에서 나옵니다. 커뮤니케이션할 때 스며드는 거죠. 지금까지 저희가 수많은 투자 미팅을 진행하면서 실수한 적도 있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손가락질받는 일을 한 적은 없기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D2SF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지요?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저희는 네이버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깊게 관여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네이버와 스타트업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성공적으로 모델링한 조직, 프로젝트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저희가 걸어온 과정을 갖고 아카데믹하게 접근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고요.


이를 위해서는 네이버와 스타트업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양쪽 모두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과 서로 주고받아야 상생 · 공존하는 거죠. 저희는 모두 이런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직 이런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나 VC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기 때문인데요. 저희도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었고, 해외 사례를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벽돌 하나씩 쌓아가는 느낌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올라가야 했죠. 이렇게 걷다 보니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관점에서 좋게 보고 인정해주시는 분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유니콘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니콘은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고, 자본의 집적도가 높은 나라에서 주장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단어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유니콘에 집착하기 보다 100억, 1000억 가치의 회사가 많아지는 것이 기술 창업 생태계에는 더 긍정적입니다. 기술 스타트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달의 민족이나 야놀자 같은 기업보다 더 적은 금액에서도 빠르게 엑싯(exit) 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고 다양하게 있어요. 국내와 해외 모두 그렇습니다. 오히려 스타트업은 인수합병(M&A)이 잘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엑싯 자체를 많은 빈도로 할 수 있으니까요. 100억, 1000억 가치의 기업을 많이 만들자. 빨리 창업하고 성장해서 엑싯하자. 이런 메커니즘이 돼야 합니다.


창업은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유니콘 기업이 돼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면 다른 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 기술 창업 생태계입니다. 기술 창업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면 도와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습니다. 6년 동안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기술력은 있지만 다른 부분이 부족한 팀이 도전하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습니다. 기술 창업을 고려하는 분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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