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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고2 아들의 진로, 챗지피티에게 물었더니

체대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내용들... 아이가 잘 맞는 진로를 찾았으면

by 실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들과 최근 모임을 가졌다. 추억 여행을 떠나며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왁자지껄 신나게 웃고, 떠들다 최근에 대학에 들어간 지인 중 한 명의 아들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좋고, 리더십도 뛰어나 학교 회장을 도맡았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의 체대에 들어갔다고 했다.


대학도 대학인데 '체대'란 말에 귀가 쫑긋했다. 그 이유는 아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들도 다가올 고2 여름방학부터 체대 입시 학원에 다닐 예정이다. 여태껏 자라오면서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 없는데, 그나마 운동을 좋아하고 보는 것 또한 즐겨하기에 아내가 체대를 권했다. 그 말에 아들은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다만 극내향인인 아들이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며 지낼지 걱정되었다. 더 나아가 체대에 들어간다 해도 나와서 관련 직업 분야에서 일하려면 아무래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할 듯싶은데 내향적인 성격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는 걱정도 따랐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들이 이과에 가지 않고, 문과를 택한 이유도 체대를 염두에 두어서였다.


이번이 기회다 싶어서 지인에게 체대에 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지인이 감사하게도 지인 아들과 우리 아들이 한 번 만나서 이야기 나눌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아들의 진로를 챗지피티에 묻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본 아들의 진로내향적인 아들이 체대에 가도 좋을 지를 챗지피티에게 물었봄 ⓒ 신재호

집에 돌아와서 슬쩍 아들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 보니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핸드폰 동영상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일찍 자라며 잔소리만 남기고 나왔다. 거실 테이블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누르려 웹서핑을 하던 중 문득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챗지피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내향적인 고등학생 아들이 체대 진학을 해도 될까?'


첫 문장부터 매료되었다.


체대에 진학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면 체대 진학이 약간 의외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체대에 내향적인 학생에게도 잘 맞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어요.


챗지피티가 내놓은 근거는 세 가지였다. 정리해보면 첫째, 체대에서의 훈련은 개인의 체력과 기술을 키우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는 과정에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체대라고 해서 운동선수로서의 경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 과학, 스포츠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음으로 사람들과 직접 대면 없이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체대의 학문적 부분에서는 운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이론을 배우는 과정이므로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학생에게 혼자 집중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려할 점으로는 체대에는 활동적인 성격의 사람들도 많아서, 그들과 조화롭게 잘 지낼 수 있는 나만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체대도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서 아들에 체대 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며 좀 더 구체적인 분야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을 물어보았다.


하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아들이 적성에 맞지 않다면 아무 소용없었다. 여름방학 때 학원에 다녀보고 아들에게 최종 선택하도록 해볼 예정이다. 내친김에 챗지피티에게 내향적인 사람들이 선택하면 좋을 직업을 물었더니 영상 편집자, 카피라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등 주로 혼자 컴퓨터로 활용하며 일하는 걸 추천해주었다.


삶은 성향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아내보다 머리 하나 차이 날 정도로 커버린 아들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훌쩍 자란 아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궁금하다 ⓒ 신재호

나 역시 내향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챗지피티가 추천하는 직업군에 있을까. 전혀 아니다. 비행청소년 교육 업무를 맡아 매일 같이 그들을 만나고, 역동적으로 관계하며 변화시키는 일을 해왔다. 때론 대형 강의실에서 100여 명이 넘는 인원 앞에서 강의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지극히 조직적인 회사 분위기 속에서 내향인임에도 외향적인 사람들과도 어우러져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다.


20여 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보니 개인적인 성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성실하게 맡은 업무를 잘 해내고, 주변 동료들과 내밀하고 깊은 관계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초반에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눈에 띄겠지만, 장기 레이스인 직장 생활에서는 그건 여러 장점 중 하나일 뿐이지 전부가 될 순 없었다. 주변에도 초반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처음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강한 존재감을 뽐내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내향적인 성향만 걱정하며 벌써부터 한계를 정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오히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삶의 덕목을 알려주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지지해주는 편이 부모로서 성숙한 모습이 아닐까.



앞으로 아들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갈지는 부모도 챗지피티도 그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은 분명 저신만의 강점으로 거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때론 부딪치고, 꺾이고,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그 또한 거쳐야 할 과정 중 하나겠지. 나는 그저 부모로서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로도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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