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재평가를 위해 다시 돌아온 나의 베를린 걷기 여행
Seit fünf Jahren habe ich Deutsch gelernt, aber jetz habe ich alles mein Deutsch vergessen.
2016년 1월 겨울 단기 교환학생으로 베를린에 갔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을 꼽으라면 바로 이 말일 것이다. "저는 5년 정도 독일어 공부를 했었지만 지금은 전부 다 까먹었어요." (정말 안타까울 뿐이죠, 이하 생략...) 7년 전 겨울, 무언가에 홀린 듯 학부 2학년 첫 학기를 마치고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유럽의 겨울이 얼마나 외로울지도 모르고 기회가 생겼다는 마음에 마냥 기뻤다. 무엇보다 상하이에서 사는 동안 국제학교에서 제3 외국어로 공부했던 독일어를 드디어 연습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독일의 문화와 사람들, 특히나 이 모든 것을 수도인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더 열의에 찬 모습으로 베를린 자유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출발 전부터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이었을까. 2016년 1월 2일 도착한 독일은 너무 춥고 어두웠다. 곧바로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없어서 먼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이틀 후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넘어가는 것이 나의 일정이었다. 당시 (분명 스마트폰이 출시되었을 시기지만 해외 USIM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LTE 사용이 어려운 노키아 핸드폰을 챙겨갔다. 왜 그랬을까...) 인터넷이 터지는 핸드폰이 없다 보니 구글맵으로 숙소를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설상가상으로 해도 너무 빨리 떨어졌다. 오후 3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시내로 이동하고 나니 이미 도시 곳곳은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큰 짐을 들고 있어서인지 동전을 나눠달라고(?) 나에게 다가오는 홈리스 (homeless)들이 많아 더 무서웠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고 트램에 올라타 예약해 둔 한인민박집에 도착했는데 여건은 더 어려웠다. 집도 어두웠고 화장실은 청결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식 제공"이라는 광고글이 무색하게도 매일 아침 신라면 한 봉지를 건네주시던 사장님을 잊을 수가 없다. 한창 성장기였는데 말이지... 독일 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워질 맛이라며 나름의 배려(?)를 담아 건네주신 라면이었으나 그 마음이 나에게 닿지는 못했다. 장시간 비행과 추위에 더 허기진 배를 대충 채우고 프랑크푸르트를 이틀 정도 구경한 뒤 다시 중앙역으로 향해서 베를린에 도착했다.
물론 베를린에 도착하고 나서는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베를린 자유대에서 "European Studies (유럽학)" 수업을 들으며 이공계 특화 대학에 입학하여 채워지지 않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달랠 수 있었다. 포스 넘치는 교수님의 지도 하에 열 명 정도 되는 학우들이 토론을 이어나갔고 베를린 곳곳에 있는 역사 깊은 박물관, 싱크 탱크 (think tank), 국제기구 등을 방문하며 우리들만의 현장 학습을 즐겼다. 생명화학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뒤 접할 수 없던 국제 관계 (international relation) 그리고 유럽의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우고 토론하며 견문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수업 커리큘럼 덕분에 여행으로 왔다면 쉽게 방문하기 어려웠을 공간들에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방문했는데 그 덕분에 베를린이 유럽을 이해하는데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 무엇보다 이 도시의 존재감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타오르는 나의 학구열도 이 도시의 겨울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너무 춥고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겨울 학기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을 사귀고 견학이나 토론 시간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지만 일주일에 2-3일을 제외하고는 결국 혼자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당시에는 혼자 외국에서 인터넷 없이 지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보다 혼자 놀기의 내공이(?) 한참 부족했던 때라 더 외롭고 추웠던 것 같다. 하루는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산물인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에 가보았는데 영하 10도의 칼바람을 이기지 못하여 1,316 미터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을 전부 다 구경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다 보니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실컷 이 도시를 구경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마음에 지혜롭게 아쉬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나에게 베를린은 "추위와 아쉬움의 도시"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공학 공부가 싫다는 이유로 추운 겨울 베를린까지 날아가서 외교정치학과 수업을 들었던 나는 결국 생명화학공학과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베를린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6월 초 싱가포르 학회를 마치고 개인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파견 간 언니를 보기 위한 가족여행이자 유럽여행이었는데 작년 가을에 함께 떠났던 파리 여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둘 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던 와중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언니와 함께라면 암스테르담에서의 일주일도 좋았겠으나 살짝 아쉬움이 생긴 우리는 3박 4일 정도 방문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기 시작했다. 늦가을의 파리를 경험했으니 초여름의 파리에 가볼까? 했으나 아직 극도로 미화되어 있는 파리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었고, 그렇다면 영국 런던에 가볼까? 했으나 굳이 기껏 환전한 유로를 파운드로 한 번 더 바꾸고 입국 심사를 한 번 더 거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브렉시트의 폐해인가?) 마지막에 언니가 아일랜드 더블린을 제안했지만 당장은 "감자" 외에는 달리 생각나지 않는 지역의 특성 때문에 더블린 여행은 미뤄두기로 결심했다. 결국 둘 다 가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가본 적은 없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춥기만 했던 2016년 1월 베를린의 모습을 쨍하고 따뜻한 2023년 6월 베를린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긴 서론이자 자세한 TMI (Too Much Information)이지만 결론은 "여름 베를린은 정말 너무 좋다"는 것이다. 역시 유럽 여행은 일조량이 가장 긴 시기인 여름에 떠나야 한다. 태양 광선이 아침 6시 반부터 저녁 9시 반까지 지면에 비침에 따라 그곳을 걷고 있는 인간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에너지의 따뜻함은 배가 된다. 그 덕분에 밤 10시까지 베를린을 마냥 걸으며 7년 전 겨울 추위 때문에 아쉽게 빠르게 지나쳤던 도심 속 곳곳을 파헤칠 수 있었다. 첫날엔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카레부어스트 (Currywurst)로 배를 채우고 가장 전통적인 관광객 동네인 중심부를 산책했다. 숙소 근처인 알렉산더 광장 (Alexander Platz)를 지나 베를린 TV 타워 (Berliner Fernsehturm)를 지났고 웅장함과 섬세함이 인상 깊었던 베를린 돔 (Berliner Dom)을 방문했다. 처음 왔을 때도 가톨릭 신자이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던 곳이었는데 외부 공사 중이라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엔 날씨가 따뜻해서 원하는 만큼 실컷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Unter den Linden을 따라 걷다가 브라덴브루크 문 (Bradenburger Tor) 앞을 지나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을 찍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 도중에 먹을 요구르트와 사과, 각종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등 간식거리를 사 왔는데 이렇게까지 긴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도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은 밤 10시라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둘째 날은 아침 7시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우리 자매는 (어렸을 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특히 우리 언니는 말이다.) 유독 아침잠이 없어서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쯤 눈이 떠지곤 하는데 대신 덕분에 새소리 가득한 아침의 미테 (Mitte) 지구를 산책하며 중정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에 여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오후쯤 재방문을 시도해 봤을 때 알게 된 점인데 워낙 인기가 많고 실내 공간이 협소한 카페라 자리 잡고 여유를 부리기엔 굉장히 어려운 곳이었다. 역시 일찍 일어난 자매가 뺑 오 쇼콜라 하나 더 먹는 꼴이 되었다. 영양소의 균형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라 '탄단지'도 중요하고 달달한 빵보다는 풍미 있는 (savory) 식사 빵을 더 좋아하는데 작년 파리 여행 이후로는 아침에 커피와 함께 즐기는 패스츄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도 뺑 오 쇼콜라와 함께 뜨거운 드립 커피를 주문했고 여유를 즐기며 챙겨 온 엽서에, 어제 산 공책에, 그리고 카페 용 냅킨에 끄적이고 낙서하다 보니 금방 배가 꺼졌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카페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커피 로스터리가 많은 베를린 답게 바로 옆 The Barn Coffee Roastery 가 있었다. 이전에 추천받은 대로 당근 케이크와 함께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다. 각설탕이 씹히는 듯한 크림 텍스쳐와 흑설탕 맛이 강한 시나몬이 아주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커피와의 조화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쇼핑도 하고 공원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도 즐기고 점심에는 베트남 쌀국숫집에 가서 시원한 국물 요리를 먹었다. (역시 한국인은 국물을 먹어야 힘이 나는 것일까.) 오후에는 너무 뜨거운 햇빛을 피해 박물관 섬 (Museum Insel)로 향했는데 아쉽게도 제일 보고 싶던 작품관은 공사 기간이거나 영문 캡션이 없어서 관람이 어려운 작품들도 많았다. 독일에서는 반드시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하거나 다시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직접 작품 설명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셋째 날은 역시나 패스츄리로 시작했다. 둘째 날 보다는 다소 느지막한 시작이었다. 일조량이 길다는 생각에 욕심내서 하루 종일 걸었더니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지치다 보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영하 -10도라 고통받던 곳에서의 영상 30도 날씨는 또 다른 의미로 고통스럽긴 했다.) "Time for Bread (Zeit für Bröt)"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빵가게에서 정말 맛있는 애플 시나몬 롤을 먹고 점심을 먹으러(?) 출발하기로 했다. 원래는 애플 시나몬 어쩌고 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의 시나몬 롤은 워낙 폭신하고 "빵 먹을 시간"이라는 빵집 이름도 너무 귀여워서 아주 맛있게 나눠 먹었다. 추가로 귀여운 에코백 굿즈도 데려왔는데 큼직하고 튼튼해서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다.
점심은 베를린 동물원 끝자락에 있는 Bikini Berlin에서 먹기로 했다. Neni Berlin이라는 지중해 음식 레스토랑인데 여름에 태어난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구글맵으로 미리 예약까지 한 곳이었다. 하지만 유럽에 왔으니 테라스에서 분위기 내고 싶다는 우리의 포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태양은 너무 뜨거웠다. 30도가 넘는 여름날 정오에 야외 자리에서 식사하다가는 지중해 음식이 아닌 더위를 먹겠다 싶어서 실내 자리로 변경을 요청했으나 대차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레스토랑 규정을 논하며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매니저가 얄밉게 느껴졌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테라스 석을 예약한 건 우리였고 근처 다른 곳을 찾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겪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뻔했지만 여행 도중엔 그런 생각 대신 내 눈앞에 있는 음식을 즐기기로 했고 자존심 상하게도 음식은 매우 맛있었다. 하지만 이 날 분명 두 메뉴를 시켰는데 세 메뉴가 서빙되었다. 세 번째 메뉴는 바로 더위였다.
몸을 좀 식히고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시품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에 신경을 정말 많이 쓴 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까마득히 높은 벽으로 이루어진 방 안에서 오른쪽 천장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보며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당시 느꼈을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히나 절규하는 얼굴들이 만 개 이상 깔려있던 공간에서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음이 많이 힘들어질 때쯤 박물관을 떠나 크로이츠베르크로 향했다. 베를린의 유명한 편집샵인 Voo store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자매는 예쁜 것을 판매하는 곳을 "위험한 곳"이라고 형용하곤 한다. 특히나 여행 중엔 무장 해제로 열리는 지갑과 이에 대한 잔고의 위험성을 가리키는 말인데 Voo store 역시 그런 곳이었다. 예쁨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와 큐레이팅이 돋보이는 제품 전시, 일하는 직원들 모두 패션 블로거/인플루언서와 같은 모습에 무한한 친절함을 겸비하고 있었고 DJ가 틀어주는 음악 역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비트였다. 우리는 마침 금요일 오후에 방문했는데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내추럴 와인을 한 잔씩 무료로 서빙해주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실컷 구경하던 스튜시의 카디건과 여름 니트를 시원하게 결제했다. 예쁜 공간에서 예쁜 옷을 만나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사 입고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에 반할 수 있는(?) 부 스토어의 마케팅 실력은 정말 월드클래스 그 자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에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지역도 좋지만 크로이츠베르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 구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동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동베를린역에서부터 오버바움 다리 (Oberbaumbrücke)를 이어주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 다시 한번 더 방문했다. 7년 전 겨울 추워서 끝까지 구경도 하지 못했던 베를린 장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산책했고 밤 아홉 시가 넘는 시간이었지만 아직까지 해 질 녘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아름다운 자태의 오버바움 다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브랑겔 (Wrangelkiez)에서는 언니가 구글맵에 저장해 둔 케밥집과 젤라테리아에 방문했는데 태어나서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과장 없이)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제대로 이름 값 하는 녹진한 맛이지만 절대 텁텁하지 않은 질감이었는데 특히 피스타치오가 정말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매는 너무 맛있는 음식을 접하게 되면 화를 내는데 이곳에선 둘 다 화가 많이 나있었다. 옆에서 보면 둘이 싸운다고 생각했을 수도.)
아이스크림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 다음날 우리는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준비하고 근처 마우어 공원 (Mauerpark) 동네를 산책했다. 우연히 발견한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이 날은 살짝 흐려서 그런지 야외 자리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돌아가는 길에 미테 지구의 카페와 서점을 구경하며 에코백과 굿즈들을 살펴보았고 조만간 6개월 간 미국 파견 생활을 앞두고 있는 나를 위해 언니가 파타고니아에서 패커블 가방을 선물해 줬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숙소 근처 "빵 먹을 시간" 카페에서 우리 취향에 더 잘 맞는 당근 케이크를 먹었다. 아주 훌륭한 여행 마무리가 되었다.
워낙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한 우리 자매는 매번 힘든 여행을 자초한다. 작년 가을 파리에 갔을 때도 첫날엔 20 킬로미터, 그리고 평균 15 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며 지칠 때로 지친 나머지 예민해진 상황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이번엔 날씨도 더우니 좀 더 체력을 아끼고 여유를 갖고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우리는 매일 평균 25,000보를 걸으며 베를린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휴양 여행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앞으로는 도시 여행 대신 쉬는 여행에 "도전"해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여행 후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그냥 우리의 방식대로 여행지를 경험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여행은 "걷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냥 걷고, 걷다가 힘들어지고, 힘들어지면 잠깐 멈추고 (먹고) 다시 걷고, 지치면 숙소에 잠시 들리고, 다시 나오고, 더 구경하고, 더 보고, 더 경험하는 것. 여유는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우리 스타일 대로 여행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랬기 때문에 7년 전 춥디 춥던 베를린의 기억들을 뜨겁디 뜨거운 베를린의 추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체력이 받쳐줄 때까지, 아니 받쳐줄 체력이 길러질 때까지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를 해서 더 많은 곳을 구경하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삼 대 제약 조건을 체력, 시간 그리고 돈으로 정해본다면 아직 돈은 부족해도 부지런히 시간을 마련하고 성실하게 체력을 키워낼 시간들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진 난 꾸준히 "걷는" 스타일로 여행지를 탐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