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게 행동하는 건 지능이 부족한 거 아닐까
고학력 어른들을 만나며 느낀 점
올해 신간 두 권을 내고 작가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과 동시에, 회사 일도 바빠졌다. 그간 한국에서 제조된 물건을 해외로 판매하는 해외영업을 했었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인수업무 사업실사 담당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M&A업무를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회사 하나를 인수검토 하는 데는 실사툴이 동원된다. 가령 A회사를 산다고 했을 때, A의 사업성과 미래가치, 재무적 성과, 법률검토 등등 여러 가지 평가지표를 통해 해당회사의 가치를 매기고 그 가치가 인수자금이 된다.
다만 A회사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내부역량만으로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횡령/배임이슈도 생겨 외부 업체를 통해 가치평가를 진행한다. 보통 회계사, 변호사, 컨설턴트로 구성된 업체들과 일을 하는데, 문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들과 일을 하며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멍청한 사람들이 있다.
멍청? 보단 지능이 낮다는 말이 더 맞겠지만.
고학력들만 들어가는 것으로 정평난 업체와 미팅을 했다. 대부분 SKY 또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해외대학에서 MBA를 마친 분들이다. 나는 담당 PM이라 손님용 음료를 테이블에 깔아놓고 미팅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딱 되자 멀끔한 슈트를 입은 남성 두 명이 나타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스쳤다. 사실 이런 일은 익숙하다. 큰 회사에서 업무제안을 받아 부푼 마음으로 회의장에 도착했는데 다소 어려 보이는 쪼끄만 여자 혼자 앉아있으니 기운이 빠질 수 있겠지. 일본 영업을 하면서 50-60대 아재들에게 하도 핀잔을 먹어서 저런 표정은 익숙하다. (시드니의 말을 믿어도 되나요? 어리잖아요. 저 팀장인데요. 아니 그래도 어리잖아요! -_-; )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오해는 금방 풀린다. 일단 내가 목소리가 굵고 대화를 시작하면 14년 차의 짬(?)으로 전문가 코스프레를 잘하기 때문에 금세 오해를 풀고 어리고 쪼끄만 여자의 말에 집중한다.
그런데 이번 업체는 좀 이상하다. 동굴목소리로 열심히 제안서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오른쪽에 앉은 남자는 제안서를 대충 몇 페이지 넘기더니 갑자기 내 상사가 누구냐고 묻는다. 상사가 누구라고 답해주니, 그분을 언제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을 쏟아낸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미팅을 하는데 의사결정권자들의 행방만 묻고 있다.
회의를 마치고 그들을 돌려보낸 후, 링크드인에 접속해서 그들의 이력을 찾아봤다. 역시나 유명대학 유명학부를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내 느낌은 하나였다. 공부는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지능이 낮구나.
한 회사를 대표해서 앉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김연경처럼 크든 박나래처럼 작든 1년 차든 5년 차든 10년 차든 간에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키맨이다. 업체들이 생각하는 의사결정권자(임원)들은 쏟아지는 보고과 현업 때문에 하나하나 들여보고 의사결정 할 수가 없다.
결국 임원들도 담당자(나)의 평가를 듣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시드니, 네가 보기엔 어디가 제일 괜찮아? 그럼 참고할게. 제 생각에는 00 업체가 제안서도 잘 써왔고 견적도 괜찮고 담당자들의 태도와 의욕도 괜찮습니다. 그래? 참고할게. 이런 흐름이다. 이 경쟁입찰에서 위에 언급한 업체의 결론은 굳이 쓰지 않아도 짐작 가능 할 거다.
업체평가표를 쓰고 내부결재를 태우면서 지난 7월에 출간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땐 신입/경력사원 면접이었지만 이번에는 업체대상 면접관이었다. 그 책에 썼던 에피소드 중에 이런 제목이 있었다. <제발 채용공고를 정독해라.> 그 말은 문해력에 대해 말한 게 아니고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것에 참여할 생각을 했다면 신의성실해야 한다. 꼼꼼하게 문항을 보고 출제자들의 의도를 잘 파악할 것.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취할 것.
겸손을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실제 겸손의 의미는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가 어떤 대단한 위치에 있었든 간에 현재 처한 상황과 배경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도 겸손의 영역이다. 즉, 겸손하려면 매우 집요하게 나에 대해 알아야 하고 처한 환경과 대비해서 행동해야 한다. 겸손도 똑똑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대학 나오면 뭐 하겠는가. 저런 태도로는 어떤 성과도 낼 수 없다. 지난번 <면접관> 책에는 면접을 망친 한 신입사원을 보고 엄마에게 전화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저 거만한 업체 담당자들을 보고는 그 회사 대표님에게 전화해주고 싶었다.
예의만 조금 지켰어도 광명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 훌륭한 배경과 지식이 빛바래는 건 정말 한 순간 때문이었다. 그들을 타산지석 삼아 나도 조심하고 살아야겠다.
ps. 다만 이런 분들은 극소수고 좋은 분들도 많다. 다음에는 그분들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