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나 Sep 13. 2020

40대라고 다 안정적으로 사나요?

나이 탐구생활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식이 있다.

9월 13일,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날짜 기준으로 2020년이 겨우 30% 남았다고 한다. 30%!


2020년이 되면서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유의미하게 살아보리라 야심 찬 다짐을 했다.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늘상하는 다짐이긴 하겠으나 내게는 조금 더 유난했던 것이, 2021년이면 마지막 30대를 지나 한국 나이로 4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40대로 들어선다는 건 지금까지 먹은 나이와는 어쩐지 많이 다른 느낌일 것 같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현재의 나를 자꾸 채점하게 됐다. 여전히 불안정한 일상과 관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밥벌이를 떠올리면 깜깜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마지막 30대인 올해를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보내고 싶었다. 기껍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담담하고 씩씩하게 40대의 첫 나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얄궂은 인생은 역시 한낱 인간의 이러한 속내와 다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세계적인 감염병이 연초부터 불어닥쳐 수많은 계획이 무산되게 만들었다. 설상가상 몸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며 툭하면 병원 신세다. 어쩐지 일 하나도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고 지뢰를 밟는 횟수도 잦았다. 한마디로 요사스러운 '마'가 낀 거 같은 해이다.


그래서 전 세계인이 한 마음으로 '내 2020년 돌리도'를 외치는 2020년의 9월, 나는 조금 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한다. 아, 나의 마지막 30대가 이렇게 끝나가다니. 40대는 어쩌지?


이미지 출처_unsplash.com


덩달아 부쩍 40대의 삶에 도움이나 영감이 될만한 콘텐츠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참 없다. 40대 여성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직무 역량을 확장하거나 새롭게 만들고 싶을 때는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2030을 지난 중년의 비혼 여성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고용 불안을 겪기 십상인 중년 프리랜서는 어떻게 일을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너무나 부족하다.


최근 지인에게 온라인으로 직무 역량 관련 강의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강연자로 선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반짝였더니 안타까움을 머금은 답변이 돌아왔다. "아.... 근데 만 34세 이하 청년만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아, 역시나.  


요즘은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원 사업이 다양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러한 지원 및 교육 사업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보통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지원 및 교육 사업은 목적과 내용, 지원 범위 등 여러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준이 바로 '나이'다. 만 19세 이하 청소년 대상, 만 34세(혹은 만 39세) 이하 청년 대상, 만 55세 이상 장・노년층 대상 등.


공통분모를 지닌 집단의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일은 매우 반갑고 필요하다. 그런데 세대를 기준으로 나뉜 지원사업에서 유독 40대나 50대를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은 본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 아닌가. 수많은 지원 및 교육에서 기준 삼은 '청년'의 기준에서 이탈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불쑥 반발심이 든다.


40대를 위한 지원이나 교육은 필요 없나요?

40대라고 모두 안정적으로 사나요?


이미지 출처_unsplash.com


우리 사회에서 40대는 응당 열정적으로 살아온 2030대에 구축한 자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삶과 주거 환경, 커리어, 관계 등을 구축해놓은 상태일 것이라 여겨진다. 여성의 경우에는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한창 양육하고 있는 삶이 40대 여성의 기본값으로 놓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나이 하나로 그렇게 납작하게 싸잡아질 수 있을까. 특히나 점점 삶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면서 요즘은 결혼하지 않은 비혼 상태로 중년을 맞이하는 이가 많고, 더욱 많아질 것이다. 결혼을 했다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늘어나고 있으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40대에 새로운 일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납작하게 일반화한 기준에서 보더라도 40대는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조기퇴직의 압박을 겪거나 전업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위로는 부모를 케어하고 아래로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이중 돌봄에 시달리기도 한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의 노화를 실감하면서 훅 꺾이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령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한다고 해도 20대 청년이 아닌 이상 신입으로 취업하기란 불가능하다. 퇴직한 중년들이 기승전 '치킨집' 아니면 '편의점'이라는 포화상태 시장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30대 중반부터 프리랜서로 일한 나 역시 이미 나이가 제약이 됨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나이 서열' 외에도 사회 내 '갑을 서열'도 작동하다 보니, 소위 '갑'인 클라이언트는 외주로 일을 의뢰하는 '을'이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으면 부담스러워하곤 한다. 한 마디로 쉽게 부려 먹을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이 사회가 40대라는 나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위기의 중년 가장, 혹은 일과 육아의 이중고를 겪는 워킹맘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미지 출처_unsplash.com


'40대'라는 나이 안에는 한 줄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수많은 삶이,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청년의 삶이, 노년의 삶이 마찬가지이듯이. 천편일률적으로 세대를 나누고 그에 따른 삶을 정답처럼 제시하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삶을 상상하고 그러한 삶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세대를 갈라 무언가를 할 거라면 '표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40대의 삶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에 맞는 정책과 지원 역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곧 마흔을 앞둔 이 연사 힘차게 외쳐보고 싶다.


write 박의나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글 노동자. 세대 문화와 나이듦을 화두로 한 독립잡지 <나이이즘>도 만듭니다.



https://brunch.co.kr/@forgetage/37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어쩌다 '프로 모임러'가 되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