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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나 Sep 20. 2021

독립출판인의 엄벙덤벙 교보문고 입성기

가지가지다 하는 에디터의 하루


내가 만든 책, 교보문고에 한번 넣어 봐?

3권의 독립잡지 <나이이즘> 발행에 이어 이번에는 단행본이다. 연초부터 동료와 함께 우리의 직업인 에디터 업무에 관해 다룬 실용서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를 공동 집필했다. 역시나 예정보다 두어 달이 더 지나서야 원고가 마감되었고, 고단했던 디자인과 교정교열 과정을 지나 드디어 완성!


하지만 책이 발행되어도 할 일은 남았다. 기획도, 원고 집필도, 행정 업무도 셀프로 해내야 하는 독립출판 제작자는 피땀... 까지는 아니지만 내 정성과 고민과 시간과 기타 등등이 가득 들어 간 결과물을 판매하기 위해 직접 입고할 서점을 정해 컨텍하고, 계약을 맺고, 보도자료와 이미지 자료를 보내고, 책을 보내는 등의 입고 업무도 직접 해야 한다. 자, 이제 저자에서 마케터, 행정사무 관리자로 변신할 시간. 독립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만 판매했던 독립잡지와 달리, 이번에는 야심 차게 판매 영역을 확장해 서점계의 메이저리그 교보문고의 문도 두드려보기로 했다.



이게 이렇게 험난할 일인가

교보문고 입고를 위한 STEP 1.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규거래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홈페이지 하단의 '협력사여러분'을 클릭하면 종이책 신규거래 신청란이 나오는데, 그곳의 양식을 채워 넣어 신규거래를 신청하면 담당자가 내용을 확인한 후 연락을 주는 시스템. 그런데 이런. 결제 은행을 쓰고 통장 사본을 첨부하는 곳이 있는데 상호명이 기재된 사업자 통장이어야 한다는 안내가 쓰여 있다.


개인 통장 하나를 사업자용으로 등록해 사용하고 있던 터라, 이참에 사업자 통장을 만들어야 하나 싶어졌다. 그런데 또 이런. 하필이면 얼마 전 카카오뱅크 모임 통장을 개설했던 게 기억났다. 통장을 개설을 한 이력이 있으면 20일이 지나야 새로운 통장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통장을 만들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저 날짜가 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는 사이 책은 나오고, 독립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하나둘씩 책을 착실하게 입고를 시작했다. 드디어 20일이 지나고, 나는 사업자 통장 개설에 필요하다는 서류들을 챙겨 은행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관공서에서 말하는 '20일'은 그냥 20일이 아니라 '20 영업일'이었던 것... 그러니까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20일이 지나야 신규 통장 개설이 가능했다(그 와중에 사업자증명서와 함께 소득을 증빙할 세금계산서, 사무실 임대계약서 등을 바리바리 챙겨 갔는데, 다 필요 없고 부가세지급명세서가 필요하단다. 서류마저 잘못 챙긴 얼렁뚱땅 인간...). 결국 나중에 다시 오라는 담당 직원의 친절한 '빠꾸'를 먹은 뒤, 며칠 후 부가세지급명세서 챙겨 다시 시도, 드디어 사업자통장 만들기에 성공했다.


통장 사본을 교보문고 신규 거래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냈고, 드디어 입고를 위한 전자거래 계약서가 도착했다. 교보문고 전자거래 서명을 하려면 '범용 인증서'가 있어야 한다. 개인 범용이든 사업자 범용이든, 법인 사업자 범용이든 종류는 상관없다. '범용'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개인인증서도, 사업자 전자계산서용 인증서도, 사업자 은행거래용 인증서도 있지만 '범용' 인증서만 없던 나는 4400원을 내고 다시 범용 공동 인증서를 발급받았다(대체 인증서만 몇 개야). 그 와중에 OTP 인증에 오류가 나서 또 은행 방문. 결론적으로 총 3번의 은행 방문 끝에 겨우 전자 거래 계약 완료!



진정한 삽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대망의 책 입고 차례. 유명한 저자나 출판사의 책이 아니기에 서점에서 얼마나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아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커다란 서점의 신간 평대에 내가 쓴 책이 놓여 있을 상상만으로도 조금 설렜다. 신규 거래 안내서를 살펴보니 신간 배본은 10부 이하를 보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안내대로 배본사를 통해 우선 몇 권만 교보문고 물류창고로 보냈다. 전국 서점에 책이 들어가고 좀 눈에 잘 띄게 비치되려면 좀 더 넉넉하게 물량을 입고 해야겠지? 10권 이상 배본을 원할 경우 부수를 협의하라고 되어 있는 책 분야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초도 배본이 끝난 후의 입고는 각 서점의 주문에 의해 이뤄지므로, 더 많은 물량 입고를 원한다면 각 서점 담당자에게 따로 영업해서 입고해야 한다는 날벼락같은 답메일이 왔다.


그러니까 애초에 100권이면 100권, 500권이면 500권 이런 식으로 서점에 보낼 초도 물량을 협의해 한번에 보내는 시스템인데 안내서를 휘뚜루마뚜루 읽은 탓에(라고 쓰고 안내서가 부실했다고 남 탓을 해본다..) 소량 배본으로 책 인증(?)을 한 후에 제대로 된 입고 물량을 협의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거다. 급하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읍소를 시작했다. "교보문고 입고가 처음이다 보니..." "1인 출판사라서 매장마다 일일이 영업하기는 어려워서요, 슨생님" 어리바리한 초짜 출판사가 딱했는지(이런 경우가 더러 있다고도 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담당자 슨생님은 이미 보낸 책을 회송 처리, 100권을 초도 물량으로 다시 받아주기로 했다.



드디어 교보문고에 입성하기는 했는데

그리하여 협의한 부수의 책을 다시 보내고 며칠 지난 추석 연휴 직전. 매장에 드디어 책이 입고되었다. 가장 많은 부수가 입고된 광화문점을 비롯한 몇 곳은 재고 위치를 확인해보니 신간 평대! 눈에 잘 띄는 평대에서 밀려나 보물찾기 쪽지보다도 찾기 어려운 책꽂이로 밀려나기 전에 직접 보러 가야 하는데. 아쉽게도 연휴를 맞아 조금 일찍 부모님이 거주하는 본가에 온 이후였다. 다행히 함께 책을 만든 동료가 다음 날 인증샷을 찍는 임무를 안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동료가 보내온 인증샷 속의 책은 정치 분야 신간 평대에 딱. 제목부터 각 잡힌 무게감 빵빵한 책들 사이에 홀로 앙증맞은 사이즈와 알록달록한 색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우리의 책은... 마치 드레스코드가 블랙 정장인 파티에 홀로 캐릭터 코스튬을 하고 나타난 등장인물처럼 보였다. 출판 분야로 카테고리 등록을 했는데, 해당 분야의 상위 카테고리가 정치/사회이다 보니 정치 신간에 비치가 된 모양이다. 카테고리 수정을 하고 싶지만 이미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 버렸고, 인증샷 임무를 맡은 동료는 정직하게 임무만 수행하고 교보문고를 떠나 버렸으며, 나는 지방에 있어 당장 매장 담당자에게 '읍소 어게인'을 해볼 수도 없는 상황. 어쩌겠나.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여 있어 오히려 튄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수밖에. 하하하핫.


이렇게 끝까지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통해 어쨌든 교보문고에 입성했다. 과연 엄벙덤벙 우당탕탕 입고 과정을 거친 첫 단행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앞으로의 책 판매량에 달렸다. 두두둥.  그러니까 콘텐츠 제작과 에디터의 세계를 넓고 알차게 다룬 책!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 많이 찾아주세요.

(그렇다. 이 글의 진짜 목적은 책 홍보였다고 한다...)



교보문고 입고를 꿈꾸는 독립출판인을 위한 4 문장 요약!

1. 교보문고 거래를 위해서는 사업자통장이 필요함(알라딘/예스24는 개인통장도 무방)

2. 통장 개설은 '20 영업일' 전에 신규 개설 내역이 있으면 불가능

3. 매장에 책이 넉넉하게 깔리기를 원한다면(물론 판매가 안되면 반품된다는 리스크가 있음), 초도 배본 시 미리 해당 책 분야 담당자와 협의해서 입고 부수를 정할 것.

4. 카테고리가 애매하거나 여러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특성을 지닌 책이라면, 서점에서 놓일 위치와 주변 책과의 조화를 고려해 메인 카테고리를 잘 선정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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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나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라이터. 독립잡지 '나이이즘'을 발행하며, 에디터 세계 안내서 '근데 에디터는 무슨 일 해요?'를 펴냈다. 콘텐츠 기획, 집필, 인터뷰 등 콘텐츠를 만드고 편집하는 다양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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