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늘 뜨기를 책으로 배웠어요
친정엄마는 손재주가 좋다. 요리, 바느질, 뜨개질, 재봉질, 미싱자수, 그림, 예쁜 글씨.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잘하신다. 중학교 가정 과목 시간에 대바늘 목도리 뜨기를 했는데 나의 손 땀은 엉성하고 들쑥날쑥하여 단이 길었다 짧았다 난리가 났다. 코를 빠트리거나 나도 모르게 늘어나는 경우도 많아 도저히 완성품이 될 수가 없었다. 결국엔 엄마에게 슬쩍 들이밀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엉성한 나의 과제물을 푸르시오 하더니 주말드라마를 보며 코 하나 빠트리지 않고 가지런한 목도리를, 어디에서 사 온 것 같은 작품을 한 시간 만에 완성해 주었다.
엄마의 손이 그리는 마법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입학 하였을 때 엄마는 미싱자수 기술을 십분 활용하여 가방, 실내화 주머니, 체육복에 내 이름을 수놓아주셨다.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나의 시그니쳐가 새겨진 물건들이었다.(물론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시절 사진마다 찍혀 있는 것을 보며 나의 기억이라고 얘기해 본다)
또 대학 졸업할 때는 대바늘로 니트 투피스를 만들어 주셨다. 내 신체 치수를 확인하고 중간에 입혀 보기도 하며 몇 날 며칠이 걸려 만들어 주신 니트 상의와 치마는 아직도 옷장에 있으며 추운 겨울에 종종 꺼내 입는 잇템이다.
그렇게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가 중학생 때는 퀼트, 십자수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보기 싫다고 하셨다. 사실 엄마는 생계를 위한 기술 습득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딸 어디 가겠어? 나는 취미이니까 괜찮아!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나도 내 딸에게 해 주고 싶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온 시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행복했고 복직을 앞두고 아이에게 사랑을 가득 담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코바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옷, 소품 만들기 책을 구입했다. 만들고 싶은 옷의 도안을 고르고 무작정 동네 시장의 뜨개방에 가서 책을 보여주며 얘기했다.
"여기 작품에서 사용된 실 있으면 주세요. 아이 옷 만들 거예요"
"이거 초보는 만들기 힘들 텐데."
"여기서 가르쳐 주기도 하세요?"
"아니 우리는 그런 건 안 해요. 실만 팔아요."
아니, 가르쳐 주지도 않을 걸 왜 훈수를 두시는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실을 사서 나왔다. 검색을 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기초 코바늘 책을 한 권 더 샀다. 그리고 코바늘 뜨기를 책으로 배웠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에 아주 자세히 설명한 기초 영상이 있고, 작품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공개하는 영상들도 많다. 그때는 그런 영상들이 없었나? 왜 검색을 안 해 봤는지 기억에 없다.
이렇게 나의 코바늘 사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복직 후에는 일과 육아에 치여 코바늘 뜨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한동안 놓았던 코바늘 뜨기에 다시 기웃거린 것은 둘째 낳고 휴직 중이었을 때였다. 첫째 어린이집 생일잔치 답례품을 고민하다가 미친 발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년생 아이 둘을 케어하다가 아이들이 잠든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행복했다.
코바늘을 잡고 있을 때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만 남는다. 일과 육아에 지쳐있음에도 손가락을 놀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나를 보면 너무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코바늘 뜨기를 하여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엄마 최고!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하니 되었다. 손과 눈 관리를 잘해서 늙어서 까지 뜨개와 책 읽기,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