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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n 12. 2023

웃어줘서 고마워요.

 종양내과 입원전담의로 근무를 하다 보니 한 명의 암환자가 수개월에 거쳐 어떠한 경과를 겪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입, 퇴원을 반복하며 가까워진 환자가 서서히 나빠지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병동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괴로웠다.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음의 작은 조각 하나가 같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올해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세상을 떠난 환자가 아직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50대 중반 폐암 환자였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입원을 반복했는데 상냥하고 귀여운 분이었다. 입원을 하면 입맛이 없어서 밥을 잘 못 먹지만 퇴원하면 남편이 사주는 투뿔 등심은 맛있게 먹는다며 괜찮다고 웃고는 했었다. 사교성도 좋은 편이어서 종양내과 환자 중 친구도 몇 명 있었다. 가까운 곳에 가끔 여행도 같이 간다고 했었다.

 그녀는 2019년 12월에 폐암을 처음 진단받았는데 진단 당시에 뼈 전이가 있어서 이미 폐암 4기였다. 작년 12월은 폐암을 진단받은 지 만 3년이 되는 시기였다. 폐암 4기 환자가 3년을 넘긴다는 것은 경과가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네 번의 항암제 변경과 수차례의 방사선 치료 등 그녀가 견디어냈을 3년간의 치료 시간들을 상상해 보니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암성 통증이 심해지고 뇌전이의 악화로 삼키는 행위까지 어려워져서 올해 초에 입원을 했다. 삼킴 장애 때문에 콧줄(L-tube)을 꽂았는데 그녀는 콧줄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괴로워했다. 비디오 투시 연하검사(VFSS)를 시행한 결과 죽이나 소량의 액체는 시도할 수 있겠다고 하여 콧줄을 제거하였다. 콧줄을 빼자마자 그녀는 차가운 식혜 한 컵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식혜를 한 캔을 샀다.

 식혜에 점도증진제 가루를 섞어주었지만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시고는 더 이상 삼키기 어려워했다. 그녀는 고맙다면서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이번 입원 기간 중에는 처음으로 본 미소였다. 입원기간 내내 기력도 의욕도 점점 줄어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좌측 흉벽과 겨드랑이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10일 만에 흉부 CT를 다시 촬영하니 병은 그 사이에도 더 진행한 상태였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병실에 있으니 더 힘들어요. 아까 검사하러 아래층에 잠깐만 내려가도 훨씬 살 것 같았어요.”

 그녀의 말이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음날, 마침 날씨가 비교적 덜 추웠다. 따뜻한 시간인 오후 3시쯤 그녀의 병실로 가서 산책을 가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다가 곧 좋다고 답하였다.

 병실 침대 옆 옷장에 정갈하게 걸려있는 그녀의 옷을 꺼냈다. 니트와 바지를 입히고 양말과 신발을 신긴 다음 그녀의 자주색 목도리를 목에 둘둘 감아주었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패딩을 입힌 후 그녀를 천천히 휠체어에 앉혔다. 새 침대 시트 하나를 꺼내서 그녀의 다리 위에 덮어주었다.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침대 시트 양끝을 그녀의 허벅지와 휠체어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 정도면 잠시 바람을 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휠체어를 밀고 병실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5층 하늘공원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차가운 공기가 코끝으로 쏴하게 밀려 들어왔다.


 “숨 한 번 크게 쉬어 보세요.”
 
 “너무 좋아요 교수님. 정말 너무 좋아요.”  

 그녀는 신이 난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햇살이 내리쬐었다. 휠체어를 밀고 하늘공원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잔디 위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눈을 한 움큼 집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올 겨울에 눈 만져보신 적 없죠. 살짝 손만 대보세요.”

 

 가운만 입은 채로 밖에 서 있으니 몸이 덜덜 떨렸지만 상관없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병원 안으로 들어와 하늘공원 맞은편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따뜻한 햇살에 5분간 몸을 녹인 후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다음날부터 날씨가 다시 추워지고 그녀의 상태도 나빠지면서 더 이상 그녀와 산책할 기회는 없었다. 폐암 때문에 한쪽 폐가 전혀 기능을 못 하는 상태에서 심장을 싸고 있는 막과 심장 사이에 물(심낭삼출액)까지 늘어나면서 심장을 압박해 가자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했다. 괴로워하는 그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잔인한 며칠이 지나고 우리가 산책한 지 정확히 일주일 후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마지막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했다고. 그리고 당신을 떠올릴 때 환하게 웃던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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