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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n 22. 2023

그녀의 생일은 언제일까

생일 축하는 생각보다 어렵다.  

 스스로 뜨개질 한 모자를 쓴 그녀는 입원할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며 트렁크를 끌고 들어온다.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50대인 그녀는 13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첫 진단 당시 이미 3C 기였으니 3기 중에서도 4기에 가까운 병기였다. 그전까지 열심히 직장 생활만 하다가 이제 좀 취미생활을 해볼까 하던 중에 유방암이 진단되었다고 했다. 이후 항암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10년 후에 폐와 뼈에 전이가 된 형태로 재발하였다.

 그녀는 이전에도 그리고 재발된 이후에도 항상 정해진 날짜에 병원에 방문했다. 미루거나 안 오는 법이 없었다. 항암치료도 권장하는 날짜에 맞춰서 꼬박꼬박 받았다. 반복되는 입원생활로 지치기도 했을 텐데 입원할 때마다 모난 말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면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였다.

 녀는 미혼이고 오빠는 결혼을 한 상태라 그녀가 어머니를 계속 모시고 살아왔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몇 년 간 거동을 잘 못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본인도 암환자인 상황에서 어머니를 진료 때마다 병원에 모셔가고 집에서도 매 끼니 식사를 차려드렸다고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몸은 좀 편해졌다고 하면서도 막상 혼자 지내니 밥을 잘 안 챙겨 먹게 된다고 했다.

 오랜 항암치료로 인한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염으로 손발이 저린 그녀였지만 병실에 앉아서 종종 뜨개질을 하고는 했다. 그녀의 손 끝에서는 토끼도 고래도 반나절만에 생겨났다. 그렇게 만 작품을 주위 환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고 했다. 11월에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수세미를 만들어서 내 책상 위에 올려주기도 했다.  

 긴 투병생활을 지내면서도 씩씩하고 밝게 버텨주는 그녀에게 고마웠고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때마침 12월 말이었는데 전자진료차트에 뜬 생년월일을 보니 1월 초였다. 회진을 돌 때 물어보았다.

 "생일이 1월이신가 봐요?"

 알고 보니 그녀는 실제 나이가 호적보다 2살이 더 많고 주민등록번호와 달리 실제 생일 4월 OO일이었다. 하마터면 엉뚱한 날짜에 생일축하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물어보기를 잘했다 싶었다. 그녀의 진짜 생일 축하해주고 싶어 탁상 달력에 크게 표시를 해놓았다.


 드디어 그녀의 생일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그녀에게 전화했다.

 "OOO님~ OO병원 내과의사 OOO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오늘 즐거운 날이라 축하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생 축하드려요!!!!  

 네...? 저 오늘 생일 아닌데요.
 네...?????

  순간 민망함과 함께 머릿속에 물음표가 여러 개 그려졌다.

 '분명히 4월 OO일이라고 했는데... 내가 기록도 해놓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잘못 들은 건가...'

 정신을 가다듬고 물어보았다.

 "4월 OO일이 생일 아니셨어요......?"

 "아~~~ 음력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제가 진짜 생일 때 다시 축하드릴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전화를 끊었다.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음력날짜를 계산해서 그녀의 생일을 달력에 다시 표시해 놓았다.


 그녀의 생일이 다시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침 그녀의 생일은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다음날이었다. 입원 중에 생일을 맞이할 그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문득 매일 혼자서 밥을 차려먹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서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문득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그릇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한 건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유치하면 유치한 대로 음식을 먹으면서 그녀가 한 번 웃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6월 OO일, 그녀의 진짜 생일이었다. 그녀의 침상에 닫혀있는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오늘 좋은 날이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그녀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도 또 아닌가......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생일이요? 아 그렇구나...... 어떻게 기억하시고...... 감사해요."

 항암치료에 신경 쓰느라 정작 그녀는 그날이 본인의 생일인 걸 잊은 상태였다. 어안이 벙벙한 그녀에게 선물과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원에 계셔서 아쉬우시겠지만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

 그녀는 그제야 오늘이 본인 생일이라는 것에 실감이 난 듯 활짝 웃었다.  


 그렇게 세 번의 시도 끝에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데 성공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렇게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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