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께 아이가낮에도 자꾸 잠이 쏟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더니,반년만에 약 용량을 (상담 후에) 올렸다.
콘서타 27에서 36으로.
숫자가 커질수록 고용량인데, 내 생각에 9 단위씩 올라가는 것 같다. 18, 27, 36 다음은 45, 54, 63... 이런 식인 거 보면. 저 숫자가 본인 몸무게만 넘지 않으면 된다고 하니, 아직 고용량은 아닌 셈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의 뒤로 미루고뭐든 닥쳐야 하는 습관만큼은 별로 좋아지질 않고 있다. 대부분 그럴 테지만, 시험도 닥쳐야 눈에 불을 켜는 편이고 약속도 학원도 5분이 남으면 그제야 후다닥 뛰쳐나간다. 1학년때 방송부 지원도 5분 남기고 클릭했다가 먹통이 됐다더니, 결국 탈락했다. 지난 학기에는 생각할게 좀 있다고 수학 선생님께 수행 평가 좀 늦게 제출해도 되냐고 톡을 보내는 걸 봤다. 어찌 됐나 결과는 물어보지 않았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B형 간염 결과지와 여러 동의서들을 제출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결과나오려면 며칠 걸리니 미리미리 서두르라고 기껏 일렀건만알겠다 알겠다 말만 하고 내도록 있더니만, 결국 개학 전날 겨우겨우 준비해서 가져갔다.
뭐든 서두르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안심되는 나는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밑이 살벌하게 떨릴 만큼 스트레스를 받아야만했다.
'그래... 마지막이니 참자 참자...
스무살 넘으면 이제 더는 나의 몫이 아니다...'
아이가 어느덧 고3이 되었다.
그래도 요즘의 아이는 뒤로 미루는 습관만 빼면 사뭇 꽤 어른스러워졌다. 내보기에 그렇다.
뭐든 결정도 막무가내로 하기보다 조금 더 신중해지고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 새벽까지 놀던 일도 요번 방학에는 없었고, 늦어도 열두시 전에는 꼬박꼬박 들어왔다.
고1 이맘때의 아이를 떠올리면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없을 만큼 어리고 미숙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정말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인 것 같다.
사실 지난가을에도고비는 있었다.
2학기 상담 갔을때의 일이다. 이제 아이가 많이 좋아졌으니 더는 선생님께 일방적으로 지적당하는 일은 없겠지, 이제야말로 상담다운 상담을 할 수 있겠지 하고 몹시 기대하고 갔었더랬다.근데앉자마자 선생님이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마 전 아이가 콘서타를 복용하는 사실을 기숙사 사감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며 운을 떼셨다.
읭? 갑자기 콘서타? 나 진로 상담 온 거 아니었어??
그것 때문에 사감님이 아이가 조금씩 늦고 반항해도 기질적인 문제라 생각해, 그동안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교칙을 좀 느슨하게 적용해 주셨다고 하셨다,했다.
근데 얼마 전 아이가 기숙사에서 일과후 쉬는 시간에 낮잠에 빠져 자습실 이동시간이 되어도 나갈 생각을 안 해 깨웠더니 한사코 샤워를 하고 나가겠다 버티길래, 그럼 십분 안에 정리하고 나가라 일렀는데, 두시간이나 지나 기숙사를 나가는 모습이 씨씨티비를 통해 포착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감님이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 자습실에 올라가 잔소리를 좀 하신 모양인데... 갑자기 아이가 듣기 싫다는 듯 옆에 있던 마카 통을 마구 흔들며 반항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혹시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조심스럽게 운을 떼셨다는데...
읭? 마카통을 흔들어서 분노조절...(설마) 장애?
"아, 그래요? 근데 어느 부분이 분노 조절...이라는 거죠?" 내가 당황해 묻자, "글쎄요...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서요..." 하고 얼버무리신다.
글쎄... 당연히 아이가 혼날 짓을 한건 알겠는데, 그런 일로 '분노조절'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가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좋아 잠을 더 자려고 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무슨 일이 있어서 예민했을 수도 있는 건데, 벌점까지 줬으면 거기서 경고하고 그만해도 될 일을 굳이 자습실까지 쫓아올라가 잔소리를 해놓고, 아이에게만 모든 원인을 전가하고 분노조절로 몰고 간다는 게... 왠지선을 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결국 나도 고슴도치 엄마라서 그런걸까.)
그러다 혹여,아이가 콘서타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때문에 지레짐작으로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아이를 생각해 많은 배려를 해왔다는 것도 그저 생색내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래서 그동안 교칙을 어길 때마다 벌점처리 안된 적이 없고 그에 맞는 징계를 줄곧 받아왔건만, 결국은 배려라는 미명하에 또 다른 선입견으로 아이를 낙인찍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거나 아이가 예의 없게 굴었고 잘못한 부분이분명 있으니, 잘 타이르겠다 답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한동안 그찜찜한 기분을지울 수가 없었다.
몇 주 동안뭐라 말을 꺼낼까 망설이다... 한참 뒤 아이에게 슬쩍, 아무리 정식 선생님이 아니라도 사감님께 그런 식으로 대한건 잘못한 것 같다 말했더니, 자신도 말하기가 껄끄러웠는지그 일이기억에없다는 듯대화를 피하려고만 해서결국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지는못했다. 어쨌거나 어른들께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일러두고,방을 나왔다.그만하면 알아들었겠지... 하면서.
고3, 1학기가 되고서는 다행히 벌점 문자가 한번도 날라오지 않았다. 웬일이냐 물어보니, 일찌감치 일곱시면 일어나 준비하고 교실로 향한다고 했다. 2학년때만 해도그닥쳐야 움직이는 버릇 때문에 일곱시 오십분에 겨우 일어나 달려가곤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곤 했었는데...
콜 포비아도 모자라, 텍스트 포비아라 해야 하나 알람 포비아라 해야 하나 아무튼 핸드폰만 울리면 온갖 공포란 공포를 다 느껴야 했는데, 이제 내신은 한 학기, 수능까지 길어도 반년이면 아이의 학창 시절이 모두 마무리된다.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렀나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지금의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듯 내년이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있길 기대하면서, 이번 상담은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