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 이후,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찾아왔다.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모들은 나와 내 동생에게는 전조를 미리 알리지 않았다. 본인들도 그러할 터이면서 우리 형제가 상실의 깊음 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내 또래 사촌들은 모두 제각각의 핑계로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해 나는 그저 말없이 상복을 입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냥,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같은 건물, 맞은 빈소에서 나는 이질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나의 할아버지 두 분 모두는 부모님의 죽음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때문에 당신들의 아버지가 감내했던 짧지만 강렬했던 인생의 마지막 슬픔과, 어머님들의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 뒤에 따라오는 죽음의 굴레일 것이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1년 하고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엄마가 더 이상 그립지 않다. 사무치게 보고 싶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날도,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며 분노했던 나날들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동안 엄마의 죽음을 써 내려간 기록들을 자주 열어보며, 이 기록을 하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 뒤에 남아있는 삶은 계속 존재하기에, 어떤 방식으로 건 홀연해졌을 때 불완전한 마침표를 대충이라도 찍고, 내가 물려받은 그들의 수많은 유산을 짊어지고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