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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Dec 13. 2022

부엉이가 날아간 숲 속

꾸준함이라는 재능

첫 오프 전시 계획 소식을 5월에 듣고 7월부터 멤버들과 줌 모임을 통해 준비해왔는데 12월 3일 드디어 전시가 열렸다.  남편과 딸, 출장 온 형부까지 넷이서 지난 주말 광명 하안 도서관의 내가 그린 기린 그림 첫 전시에 다녀왔다. 돌아보니 매일 그리는 삶을 사시는 분들을 알게 되고 함께 전시를 하게 되어 큰 행운이었다. 이미 그림책을 내신 작가분도 계시고 인문교양서의 삽화가로 참여하신 분도 있었다. 자기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그리는 분들을 곁에서 보니 큰 자극이 되었다. 매일 드로잉을 위해 꾸준함을 피할 수 없는 넛지를 만들거나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환경 세팅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매 순간 관찰자처럼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소소하게라도 기록의 욕구가 솟아나는 많은 것들이 이미 내 일상 속에 있는데 마음이 바쁘고 휑하면 그 어떤 보석이 와도 스르르 흘려보내고 만다. 새해엔 그래서 무엇이든 관찰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잘 유지하고 싶다.


전시를 보기 전에 산책을 좀 하고 싶어서 근처 도덕산 출렁다리에 갔다. 가벼이 걷기 좋은 200미터 높이의 낮은 산이었다. 메마른 겨울의 색, 지푸라기처럼 빛을 내어놓고 숨을 고르는 나무껍질들은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마른 잔디 위로 근처 숲 체험장에서 나온 하얀 토끼들이 산책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걷는 길이 좋다. 산책이 끝나니 몸의 온도가 알맞게 올라가고 겨울바람이 조금 익숙해졌다. 산책 후, 하안 도서관 1층 시민 열린 전시 코너에 도착하여 나는 도슨트가 된 것처럼 천천히 작품들을 설명해주었다. 몇 달간 작품 진행 상황과 고정순 작가님의 피드백을 공유했기에 다른 작가님들의 그림을 알고 있었고 줌 화면과 밴드를 통해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얘기하면서도 반갑고 찐한 감동이 있었다. 연필그림과 디지털 드로잉, 색연필과 아크릴, 유화 등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재료로 주제를 전달하는 ‘내가 바라본 오늘’! 나는 여름에 아이와 꾸룩새 연구소에 다녀오고 관심이 갔던 수리부엉이를 그렸다. 밤의 숲 속, 수리부엉이의 고요하고 집중하는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전시를 누구보다 격려해주고 반가워한 남편과 같이 작품들을 보니 더 든든했다. 매년 전시가 있을 것이고 이게 시작이라면 이제 매일 꾸준히 그리는 일만 남았다.


눈이 오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시작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떠오르는 그림책은 “작은 눈덩이의 꿈”이다.

하얀 눈밭 위, 작은 눈덩이의 꿈은 큰 눈덩이가 되는 것이었다.

작은 눈덩이가 처음 큰 눈덩이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큰지 비결을 묻자 큰 눈덩이가 말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기 때문이지.”

비탈길을 구르는 작은 눈덩이의 머리에 나뭇가지가 박히자 까마귀 한 마리가 도움을 주고 그 까마귀는 작은 눈덩이의 여정에서 가장 큰 조력자가 된다. 하지만 열심히 굴러가는 작은 눈덩이는 꿈이 짓밟히거나 왜곡된 여러 눈덩이들을 만난다.

첫 번째 부서진 눈덩이, 이 친구는 어차피 눈덩이는 부서지기 마련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도움을 거부한다.

작은 눈덩이는 온몸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꿈을 꾸었지만 부서진 눈덩이에게 자신을 빼앗기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난다.

두 번째 울퉁불퉁한 큰 눈덩이는 자기의 몸에 붙으면 구르지 않고도 큰 눈덩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큰 눈덩이의 온몸에 붙은 눈덩이들이 자기처럼 붙으라고 외치지만  그것은 작은 눈덩이가 원하는 삶이 될 수 없다.

세 번째 햇볕에 스르르 녹고 있는 큰 눈덩이들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작은 눈덩이는 잠자는 게 편하다며 잠이나 자라는 세 번째 눈덩이들 사이를 빠져나온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까마귀는 늘 곁에서 용기를 주었고 작은 눈덩이는 포기하지 않고 그저 꿈을 향해 나아갔다.

“맞아. 내 힘으로 굴러야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알 수 있어.”


살면서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더 쉬운 길처럼 보이는 곳에 마음을 빼앗겨 내 것이 아닌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일어나지만 중요한 건 작은 눈덩이가 계속 굴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작은 눈덩이 앞에 호기심 가득한 꼬마 눈덩이가 묻는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되는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꿈은 성실히 구르던 날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난… 난 계속 굴렀을 뿐이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작은 눈덩이의 팁은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계속 구르고 구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나, 혹은 나보다 더 나다운 내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혹시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보게 되면 어떨까? 뒤늦게 발견했으니 더 많이 사랑해주며 친해지고 싶겠지. 오늘도 굴러가고 있는 나를 힘껏 토닥인다. 수고했어, 오늘도 ♡



작은 눈덩이의 꿈 | 이재경 글, 그림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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