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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Oct 14. 2019

<15시 17분 파리행 열차> 리뷰

시스템은 영웅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블과 DC라는 양대 코믹스를 중심으로, 영웅 서사는 전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의 등장과 함께 단순히 공동체를 수호하는 영웅의 특성은 고뇌하고 침잠하는 영웅의 개인적 연대기를 따라가는 흐름으로 뒤바뀐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은 단순히 유희 거리에 불과한 영웅 서사에 자신을 투영하여 영웅이라는 한 개인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민들을 곱씹을 수 있게 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이 조류를 계승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영화이다(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조류의 선두자인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 조류를 자신이 다시금 따라가려는 역전성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영화는 알렉 스칼라토스와 스펜서 스톤과 앤서니 새들러를 내세워 이들의 일대기와 열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섞어가며 이들의 ‘행위’를 조망한다. 특히, 스펜서 스톤을 위시하여 어떻게 영웅적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살린다.’는 명제를 어떻게 표출했는지 느린 호흡으로 따라간다.


이들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이들은 철저히 시스템과 반목을 일삼는다. 기독교 학교라는 경직되고 견고화 된 시스템 내에서 그들은 겉돌고, 심지어 군대라는 강력한 시스템 속에서도 계속해서 뒤쳐진다. 영화 중반부, 심지어 스펜서 스톤은 허락되지 않고 예측되지 않는 돌발적 사건에 대해 책상 밑에 숨으라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한다. 시스템은 이를 비웃듯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일러주며 스펜서 스톤의 행동을 객기에 가득 찬 어리석은 행동이라 폄하한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상관은, ‘이 자식이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질문을 다른 학도들에게 던지며 그를 조롱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이러한 反시스템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사회 속으로 편입되는지 보여준다. 기독교 학교를 시작으로 군대까지, 시스템을 겉돌던 그들은 완전히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어 ‘평범한’ 구성원이 된다. 감독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 러닝타임의 약 20%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채운다. 또래들처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서 안락하고 쾌락적으로 노는 그들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문제는, 종국에 벌어지는 시스템 밖의 돌발적 사건에 대응하는 그들의 영웅적 행위가 ‘영웅’으로 비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의 근원을 살펴보았을 때, 그것은 신화 서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신화 서사는 영웅이라는 한 개인을 철저하게 시스템과 반목시킨다. 이러한 전통은 당연하게도 영웅 서사에서도 드러난다. 정체를 숨기는 영웅, 대중과 다른 호흡으로 삶을 살아가는 영웅, 개인적 특수성이 월등한 영웅 등, 그들은 시스템을 거부한다. 즉, 시스템 속에서는 그들의 영웅적 특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시스템과 대결하며 자신과 시스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조망하는 것이 영웅 서사에 걸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反시스템적인 그들을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면서 영웅이라는 개체를 보여주기보다 시스템 속의 부속품으로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들이 파리행 열차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위는, 시스템이 내세운 하나의 표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치고 만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어떻게 시스템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영화의 중반부 스펜서 스톤이, “인생이 날 뭔가를 향해 내던지고 있나 봐”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즉, “시스템이 날 뭔가를 향해 내던지고 있나 봐”에 그친 대사로 치환되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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