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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Jan 22. 2020

시간 밖의 기록자들 - 부산 현대미술관

역사란 무엇인가.

사뭇 진지한 질문에서 시작해보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과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역사의 축적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축적이 곧 시간이고, 시간이 곧 역사의 축적이다. 사회적인 시간이란 그런 것이고, 물리적인 시간 역시 이런 것을 방증해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의 기원을 서구에 둔다면, 전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출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세의 고통과 불행이 신의 예정된 섭리providentia이며, 이것이 신의 부재가 아닌 신의 현존과 영광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세속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신의 계획에 의해 설정된 것이며, 끝끝내 도달해야만 하는 ‘구원’의 과정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은 자의적,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신의 계획에 포섭되어 있는 일종의 선형적 모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작(창조)과 끝(종말)을 제시하고, 그 속에 포함된 우리는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해, 태초부터 설정된 ‘구원’이라는 목적을 향해 현세의 우리들의 모든 삶은 정당하고 인내할 수 있게 된다.


세계의 시원과 목적을 설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는 단선적 시간관이다. 신의 창조로 세계가 창조되었고, 동시에 모든 운동과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은 종말을 맞이하고 동시에 ‘구원’이라는 영원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신은 역사 외부에 존재하며, 세속의 악에 대해서는 책임을 가지지 않는다. 신을 보는 관점에 따라 악행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악행이라고 하는 것이 신과의 합일을 위한 ‘구원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은 이미 역사적 시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특히 악행)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궁극적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천사들과의 결속으로 이룩될 하나의 공동체를 위한, 필연적 단계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지상도성은 비판의 대상이다. 지상도성에 존재하는 세속적 국가에서는 결코 ‘선’에 도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완전한 정의가 결여되어있는데, 물론 일종의 정의가 존재하긴 해도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정의는 오로지 천상도성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세속적 권력 역시 인간의 욕망에 기인하여 그것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이 때문에 공동선은 전유되고, 평화 역시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천상도성에서는 공동선의 원리가 완전한 형태로 실현되고, 이 공동선은 재화와 유용성 등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천상도성에서는 물질적인 부로 인간의 욕망을 자행하는 세속적 국가와 달리,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무한한 증식 가능한 선이 분배된다(여기서 마르크스의 얼굴이 비춰지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선’이라는 단어를 ‘부’로 바꾸면 그의 얼굴이 비추고, 그의 공동 소유 개념 역시 근원적으로 여기서 착안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끝내 도달되는 최후의 날(종말)은 심판이 될 것이고, 그것은 미완의 정의가 실현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최후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은 현재의 불의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희망이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적 사고방식은 묵시록을 통해 활력을 얻는데, 묵시록의 많은 증언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즉,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정치적 해석은 교회의 번성이며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번성과 군림과 함께 종말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종말로 인해 도래할 천상도성은 물질적인 것이 갖추지 못한 영원한 풍요가 있기에, 고된 노동은 필요하지 않다. 노동의 종말, 최후의 안식, 영원한 사랑과 평화.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구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 전개 과정은 동시에 고통이 세속적인 방식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인 ‘구원’을 강조하지만, 어떻게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이뤄질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적 사건에서 전개되는 불의, 억압, 폭력,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위로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먼 미래’에 벌어질 사건으로 미룬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부당한 것들에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초월적 구원과 세속적 해방의 분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일종의 공백이었으며, 이 공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아우구스티누스 사후의 필연적 과제였다.


20세기 등장한 해방신학(해방역사학)은 이러한 공백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었다. 이들에게 ‘세계의 변형’이야 말로 신의 섭리인 동시에 인간의 소명인데, 이것은 해방의 역사적 과정과 구원의 섭리 사이의 관계 탐구다. 이들은 기독교의 역사적 종말론이란 영성적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과 연관된 역사적 구원 과정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정치적 해방, 역사를 통해 달성되는 인간의 해방, 죄로부터의 해방과 하느님과의 친교의 개시를 통한 과정은, 해방과 구원의 아교 역할로써 제시되며, 억압받는 사람들(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해방의 역사적 주체로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시대상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이는 계몽주의 역사관과 독일 고전철학, 그리고 기독교 종말론적 역사관에 거대한 부채를 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과거의 역사철학과 달리, 아나빔 스스로의 해방을 중요시하며 종국에 달성되는 과거의 단순한 유토피아를 뛰어넘음에 그 성과가 있다.


중세 이후 프랑스에서는 해방된 인간 이성은 낙관적인 진보 사관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사관은 역설적이게도 중세의 종말론적 역사관과 같은 도식을 띠고 있었다. 독일 역시 그 결은 사뭇 달랐지만, 도식만큼은 같은 양상을 보인다. 결국 두 국가에서 보이는 진보 사관은 기독교적 사관을 세속화한 것에 불과했으며, 귀결되는 것 역시 동일했다. 세속화된 근대 세계를 추동해 온 계몽주의적 진보사관은 특히 독일 고전 역사철학에 이르러 이렇듯 역설적인 방식으로 신학적 사유로 수렴된다.


청년 맑스는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사유가 현상계에 실현될 수 없다고 보았다. 세계를 변혁하려는 자세는 그러한 변혁 원리를 세계 그 자체에서 추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맑스에게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가 아닌, 순간을 포착하는 공시성이었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아나빔의 해방이 이루어진다고 바라보았다. 그가 정의한 아나빔은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였으며, 이는 과거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해온 피지배계층의 귀결점이었다. 이들은 근대적 사적 소유로부터 소외되는데, 맑스는 이 점을 지적하고 소외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 역시 기독교적 역사철학의 도식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고, 종국에는 메시아주의적 사고방식의 잔재가 발견된다.


성숙기 맑스는 초기 사유를 넘어 모든 종교적 잔재들을 철저히 세속화하는 작업을 시행한다. 즉, 사변철학이 의존하고 있는 자의적 전제들이나 도그마가 아니라 더 이상 추상이 불가능한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전제들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이는 순수 경험적 과정 위에서 확인이 가능한 전제들이며, 단순히 영국 경험주의자들과는 그 궤가 다르다. ‘의식된 존재’로서 인간 존재를 규명하며 실천적 유물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인간 역사는 기본적인 욕구가 출발이며, 이는 노동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이것은 생산력 발전으로 이어지며 종국에 세계적인 코뮨주의 실현의 역사적 조건 기반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예속되어 있으며 억압되어있다.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이것이 족쇄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는 중층결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혁명으로 이어진다.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이 도식을 구체화하며 코뮨주의의 역사적 도래를 예정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준비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 도식은 과거 역사철학의 도식처럼 필연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주체적 조건이 변수로 등장한다. 이는 결국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의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역사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독교 신학의 섭리 개념의 잔재들이 조금씩은 드러나며, 기독교 신학 구조가 차용되고 있다.



하지만 1848년 2월 혁명 이후, 맑스는 역사가 진보와 반복의 굴레라는 족쇄아래 놓여있다고 말한다. 즉, 역사가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진보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행위는 한 개인의 행위지만, 그의 그러한 행위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개인의 배후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 의한 것으로, 이 사이에 존재하는 비환원적 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결국 이 ‘반복’을 차용하는 맑스의 역사철학 테제는, 과거의 유령에 의한 현재 행위의 의미를 선전하는 것으로써, 의미 있는 혁명과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이 유령과의 약연은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수행할 수 있다 말한다. 여기서 맑스는 코뮨주의로 이행될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버려둔 채 오로지 그 시점에 대한 아주 냉소적인 비판적 성찰만 보여주는데, 이는 당대 정치현실의 자신의 소박한 믿음을 저버리고 이를 소박한 낙관으로 바라본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맑스의 역사철학은 더 이상 미래의 도식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철저히 프롤레타리아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발터 벤야민의 사상적 특이점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유대 메시아주의, 즉 신학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역사철학을 정초함에 있었다. 물론, 그 역시도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사상적 단절, 다시 말해 과거 니힐리즘적 아나키스트의 성격과 이후 신학과 유물론의 차이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나뉜다. 그럼에도 후기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와 유물론이 어떻게 결합되는 지를 보는 것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과제이고, 이를 어떻게 융화시켜 이해해야 하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런 입장에서 ‘세속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아나빔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로서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받아들여보자.


벤야민은 맑스의 역사 유물론적 사유가 메시아적 시간의 세속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교조화 되며 과거와 같은 신화적 성격을 가지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맑스를 계승한 제2인터내셔널과 사회민주주의자는 기술 결정론과 실증주의를 토대로 낙관적인 진보 사관을 맑스와 연결시킨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가지고 있던 계몽적 이성의 문제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으며, 맑스가 얘기한 억압받는 자들에게 시선을 던지지 못했다. 심지어 레닌 역시 이들과의 단절을 선언했지만, 역사적 필연성으로서의 시간성, 즉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적 시간관을 세속화 한 채 권력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써 맑스를 수단화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진보의 중단을 선언함과 동시에 역사적 ‘중단’을 요구한다. 그 중단이란, 진보의 낙관을 비판하고 현재의 메시아적 힘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계급 없는 사회의 관념 속에서 메시아적 시간의 관념을 세속화’하는 맑스의 과제를 이어받아 정지상태로서 혁명으로 아나빔에게 주목하는, 본래의 맑스의 목적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벤야민에게 신학이란 역사적 목적론에 대항하는 무기였다. 다시 말해, 목적론적 역사관을 버리고 단절로서의 시간관이 아닌 ‘현재’에 주목하면서 아나빔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결코 종교가 아니었으며 하나의 담론이었다. 이론적 매체로서의 신학과 메시아주의는 진보에 대한 믿음, 하지만 끊임없는 영원회귀에 비판을 가하고자 하는 무기로서 작동한다. 이것은 신화적 반복의 사슬을 깨는 각성, 그리고 그 각성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시간을 이론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신학은 신 존재 증명이 아닌, 아나빔의 해방으로서의 메시아적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에 주목하여 그것을 중단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남으로써 물질적 관계들의 변화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유물론과 맞물려 있다. 벤야민은 체스 인형 자동기계를 통해 역사적 유물론을, 그 안에 쪼그려 앉아 실제로 체스를 두는 곱추난장이를 통해 신학을 형상화하여, 유물론 그 자체는 자동기계에 불과함으로 신학을 고용함으로써 승리할 것을 알레고리로 설명한 것이다.


벤야민에게 역사가의 과제란 유물론과 결합한 신학의 개념들을 통해 종교적인 세계인 현대 자본주의의 신화적 운명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신학적 개념의 구원을 세속적인 것을 향한 의미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 세속화란 크게 기호학적 반복과 물신숭배적 기원으로써 앞서 나온 세속화를 메타 비판하는 세속화이다. 벤야민을 이 세속화를 더욱 논의하여 수직적 축과 수평적 축으로서 이를 파악한다. 수직적 축은 과거 서양의 시간관을 세속화한 것, 그 개념이 세속화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반면 수평적인 축은 의미가 이동한 것인데, 메시아주의의 세속화라는 벤야민의 과제 속에서 신학의 범주들은 그 초월성을 상실하고 세속적 세계의 정치적 사건과 해방이라는 범주들로 의미가 이동한다. 즉, 메타 비판으로서의 세속화이다. 그렇기에 시간관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변화하고 그 의미 구조의 반복을 거부하는 세속화로서 유물론적 해방서사에 활력을 자극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 활용된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구조를 세속화하는 방식으로도 드러나는데, 과거 자기규정이 없던 신화적 틀을 법적 테두리 속에서의 자기규정의 몰락으로서 세속화한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적 짜임 관계, 곧 섬광처럼 번쩍이는 정지된 순간 속에서 드러나는 변증법적 이미지들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혼재된 ‘지금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벤야민에게 진보란 일종의 환등상이었다. 진보적 단선 시간관은 뉴턴의 절대 시간 개념으로서 과학적 입증이 되어 서양의 시간관을 더욱 확고히 하였는데, 이것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끊임없이 세속화되어 나타났다. 이 시간관에서 과정은 필연적 법칙에 따른 운동이며, 그것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를 거부하며 파시즘의 등장 이후 붕괴해 버린 근대적 진보사관의 믿음에 대해 얘기한다. 그 근본적인 전제는 모더니티와 현재를 진보가 아닌 파국의 산물로서 파악한 것이다. 사실 진보는 시민(부르주아) 계급이 봉건적인 지배에 맞서기 위한 역사적 무기였는데, 앙시앙레짐을 무너트린 것 역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반복에 불과했으며, 그들이 권력을 얻으며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 환등상을 생산해낸다. 즉, 낙관적인 기술 발전에 대한 환등상을 낳은 것이다. 벤야민은 진보의 이념으로부터 해방된 역사적 유물론을 도출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으며 ‘현재화’에 주목한다. 즉, 현재에 드러난 과거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벤야민이 보기에 진보라는 시간은 결국 하나의 반복에 불과하며, 오히려 단절된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며 축적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시간의 신화적 지배에 놓여 권태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말한다. 벤야민은 파국으로서의 현재, 즉 영원회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 신학적 성찰을 끌어들임으로써 메시아적 ‘현재 사건’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진보와 영원회귀, 즉 이것의 붕괴를 목표로 ‘권태의 변증법적 대립’으로서 메시아적 사건으로 도약하는 것을 요청한다.


벤야민은 시간을 ‘정지’시킴으로써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시키는 사건 혹은 혁명을 역사의 진보에 대한 대항 이미지로 내세운다. 이 폭파는 기존의 역사적 진행이 강요하는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각성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 여기서 꿈이란 반복과 권태로서 존재하는 진보의 꿈에서 벗어나 꿈이 가리키는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 말한다. 예컨대 만국박람회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 상품의 축제로서의 환등상이지만, 벤야민은 이것을 가상 혹은 비진리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안에 반영된 인류의 상상력은 과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으며 그것의 실현은 현재의 지배에 저항하여 시간적인 동질적 흐름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종의 각성으로서 ‘인식 가능성의 지금’을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과거의 이미지를 제대로 독해하지 않은 채 파편화되어 이루어져있다. 벤야민에게 이 이미지들이 특정한 시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비로소 이해 가능성을 획득하며, ‘지금’의 시간에서 폭발적으로 시간을 정지하며 진리의 계시, 즉 메시아적 사건이 드러난다 말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성된 의식이 꿈을 관통하여 꿈속에서 본 과거의 이미지들을 해석할 수 있게됨에 있다.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이 아나빔의 자기해방에 관한 이론이라는 관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것은 맑스에게서 쓰러져 간 세대들의 이름으로 해방의 과업을 완수할 최후의 노예화된 계급, 복수하는 계급으로 등장한다. 벤야민은 맑스를 계승한 사회민주주의를 기호학적 반복이라 비판하며 성숙기 맑스는 물질적 법칙의 필연성과 구분되는 의미에서의 ‘자유’의 실현을 코뮨주의의 궁극적 실현 과제로 생각했음을 말한다. 벤야민에게 역사적 유물론이란 쓰러져 간 앞선 세대들의 이미지로부터 힘을 얻어 진보라는 환등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가 이를 신학적 이론을 차용하여 해내는 것은, 세계 내에서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룩할 자기해방의 서사를 그려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과거를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 실증주의적 역사주의자들에게 내리는 사형선고였으며, 역사란 승리자의 시선과 그에 저항하는 억업받는 자의 시선으로 분열되어 있다. 벤야민은 이러한 역사를 유물론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아나빔의 전통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것을 ‘구성’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 즉 회상을 통해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상은 신학을 통해 미래를 향한 진보라는 믿음의 신화적 환등상을 탈주술화/세속화한다. 그렇기에 벤야민에게 아나빔이 일으킬 역사적 흐름의 정지상태 속에서, 과거에 희생된 앞선 세대들의 형상이 소환된다는 것은 섬광과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섬광, 즉 비상브레이크를 당기는 행위는 매우 간헐적으로 일어나며 그마저도 실패로 이루어지는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벤야민 역시 자신의 이론이 현실적 구속력을 가질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 이것을 사유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말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 이 전시의 타이틀인 '시간 밖의 기록자들'이란 그 역사의 시점이 철저하게 아나빔에게 맞춰져 있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아나빔'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바 처럼, 서구 역사철학은 두 개의 양상으로 드러났다.유대-기독교 메시아주의 전통의 구원론적-종말론적 역사관(여기서 구원과 종말은 동시적임)과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해방서사로서의 역사관. 즉, 종교서사와 유물론 서사(탈종교 서사)로서 드러남. 종교서사가 세속화 되어 유물론 서사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전시의 핵심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전통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세속화라는 주제 속에서 고찰하고자 함에 있다.


이 두 서사에서 드러나는 이중적 전제가 있음.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구원이라는 과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이 과제가 오로지 역사의 종말 또는 최종 목적의 실현이라는 미래 시점으로 이월된다는 것. 또한, 이들은 직선적 시간관을 상정하여 목적론적인 성격을 드러냄(근대 진보사관 역시 같은 양상으로 드러남). 진정한 세속화는 유대-기독교 메시아주의에서 강조된 억압받는 사람들의 ‘구원’을 다른 방식으로, 즉 역사적 고통의 ‘기억’을 통해 반복되는 파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져야 함. -> 발터 벤야민적 이해.

 

결국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억압받는 자'다.

이 전시가 의미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초점, 즉 시간성의 개념을 전복함에 있다. 단순히 과거 - 현재 - 미래의 연속성과 분절성의 특징을 살리는 전시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나'라는 아나빔의 일환으로서의 억압받는 자를 주목하는 것. 그것이 이 전시의 핵심이다.






참고문헌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한성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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