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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째붕이 Dec 24. 2023

더러운 육신 앞에 짜장 한 그릇

육신이란 냄새나고 더럽고 피를 담은 것이므로 탐낼 것이 못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 중 하나는, 이 육신이란 냄새나고 더럽고 피를 담은 것이므로 탐낼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해 나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생에 여지없이 또 태어날 것이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자연스러웠던 시대에 태어나 자라오면서 누군가에게 외모를 평가받는 일은 늘 불편하면서도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잊어보려 무던히 애썼으나 타인에게 비칠 내 모습을 떨치지 못하고 여전히 애틋하게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앞에서 나는 기쁘고 화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허망했다. 거울 앞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며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대부분을 느껴본 것 같다고 생각하니 뒷덜미가 소슬해진다. 하지만 노력은 마냥 헛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칭찬이나 지적에도 큰 마음 쓰지 않고, 못생긴 나일 때도 귀여워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육신과의 거리가 생겼다.


이 육신은 냄새나고 더럽고 피를 담은 것이므로 탐낼게 못된다고 생각하며, 이번 주말은 춘장을 볶아 짜장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탐스럽게 볶인 짜장 앞에 놓인 인간은 한낱 비루한 육신에 지나지 않는다.


예상과 달리 비루한 육신처럼 볶인 짜장면..

육신의 허기를 서둘러 달래려 했던 흔적이 그릇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맛은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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