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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May 24. 2023

피카소의 작품이 아름다운가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거짓말처럼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마스크는 지갑이나 휴대전화처럼 자연스러운 소지품이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일상의 행복들을 나는 종종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그 가치를 모른 채로 맞이했던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흘러버린 그 모든 순간들이 나의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였던 것일까.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떠나버린 뒤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느끼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렇듯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나는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대답을 주절주절 읊어대곤 한다. 스물셋, 스페인, 유독 더웠던 그해 여름.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았던 <시녀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게르니카>, 가우디의 숨결이 녹아든 바르셀로나의 거리. 'Hola(안녕)', 낯선 이들이 건네오는 친절한 미소와 인사. 혹은 마음을 잡아끄는 멜로디, 맛있는 음식. 단잠을 자는 길고양이, 입맞춤, 유난히 맑았던 날씨, 오래된 영화들. 나의 대답은 아름다움의 정의가 아니라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대상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들을 종합하고 분석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을까. 다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스페인의 위대한 거장 '피카소'와 '벨라스케스'가 남긴 두 <시녀들>을 간단히 비평한 뒤,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두 개의 <시녀들>, 벨라스케스와 피카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위 작품은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우선 한껏 치장한 소녀(마르가리타 공주)와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보인다. 작품 우측 하단에는 큼직한 개와 난쟁이가, 좌측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벨라스케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그림 뒤편에는 자그마한 거울과 그 거울에 비친 한 쌍의 남녀(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 그리고 문을 열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사실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구도가 인상적이다. 화가는 간단한 소품을 통해 그림의 깊이감과 공간감을 확장시켰는데, 그것은 바로 ‘거울’ ‘이젤’이다. 거울 속에 비친 두 남녀는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이다. 감상자는 그 거울을 통해 시야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과 방의 부분을 상상할 수 있다. 거울의 각도나 그림 속 화가의 시선을 고려했을 때, 그려지지 않은 방의 나머지 부분은 감상자의 ‘뒤’에 위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품은 감상자를 자신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림의 앞이 아닌 안에서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 벨라스케스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그림의 내용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화가가 보고 있는 것이 ‘거울’인가? 혹은 맞은편에 위치한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감상자)’를 그리고 있는것일까. 구도, 주인공, 화가가 그리고 있는 대상.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모호함은 <시녀들>을 미술사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그림 중 하나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매혹된다. 벨라스케스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이 그려진 것은 17세기 중반의 스페인으로 Fine art, 즉 아름다운 예술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였다. 당대의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왕실의 후원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벨라스케스 역시 국왕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았던 작가였다. 일반적인 회화 작품들이 보잘 것 없는 취급을 받던 당대의 스페인에서 그는 궁정화가로서 자유와 명예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왕실은 그에게 많은 의무 역시 부여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실을 위해 일하며 자신만의 작품들을 많이 남길 수 없었고, 왕족들의 초상화를 작업해야만 했다. 그런 그가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시녀들>의 주인공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도 스페인 왕실의 ‘신하’였으니 말이다. 작품 속 그의 의상에는 기사단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작위를 받아 기사단의 일원이 된 것은 <시녀들>을 그리고 수년 뒤의 일이다. 즉 기사단의 일원이 된 뒤에 문양을 새로이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모호한 구도 속에서 벨라스케스는 ‘그림을 그리는’ 자기 자신을 담아낸 것이다. 명예와 성공을 위해서 ‘행위’하는 그 자신을 그림으로써 스스로를 인식하고 기록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도 벨라스케스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피카소의 <시녀들>


 위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카소가 새로이 그려낸 또 다른 <시녀들>이다. 이 작품이 그가 남긴 유일한 <시녀들>은 아니다. 피카소는 <시녀들>을 수십 번도 더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의 기본적인 구도는 흡사하지만, 피카소의 <시녀들>에는 확실한 변화가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 ‘화가’ 즉 자기 자신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화가’의 모습은 그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확대되었고, 더욱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림의 나머지 부분은 ‘화가’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더 생략되고 간소해져서, 결국 가장 멀리 위치한 난쟁이는 간단한 선으로만 구성되기에 이른다.      


 피카소는 6살 무렵 처음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따라 그렸다. 그는 벨라스케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거장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계속해서 ‘훔쳤다’. 그에게 예술은 논리적인 연구와 발전의 ‘과정’이었다. 마침내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한 뒤에는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그려나갔다. 그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에 의한 끊임없는 발전과 파괴의 과정이다.


 벨라스케스와 피카소의 <시녀들>은 300년이라는 시대적 격차를 두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걸작들이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른 작품들이다. 벨라스케스는 기술에 가까운 섬세하고도 사실적인 묘사와 모호한 구도를 통해 신비스러운 공간을 생생하게 창조해냈다. 한편, 피카소는 기존의 것들을(작품, 양식, 역사) 모조리 파괴하고 재구성한다. 피카소에게 회화란 곧 상상이자, 주관적 현실이다. 


 벨라스케스가 2차원에 3차원의 공간을 구성했다면, 피카소는 3차원의 현실을 조각내어 2차원 속으로 집어 넣었다.     



예술가는 시대를 초월하는 동시에, 온몸으로 살아낸다


 두 작품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화가가 살았던 시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대는 후원을 통해서가 아니면 작품 활동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그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성공의 길은 왕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17세기 작가들이 ‘그려야 할 대상’은 분명했고, ‘그릴 수 있는 방식’ 역시 한정적이었다. 그림의 주인은 왕과 귀족들이었고, 엄격한 위계질서에 따라 자유로운 상상은 죄악시되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를 극복한다. 은밀한 장치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표현했던 것이다. <시녀들>에 묘사된 그림을 그리는(행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처럼. 이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자유로운 자아를 확립하려 했던, 독일 관념론의 테제를 연상케 한다(헤겔은 예술 역시 진리에 이르는 길 중 하나라고 보았다. 비록 그것이 최선의 길은 아닐지라도). 그는 자신만의 작품과 왕실의 초상화, 양립할 수 없는 두 갈래 길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런 모순적 상황을 '거울'과 '문'을 통해 그림의 바깥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찬란했던 스페인 왕실의 영광은 수백 년 전만 못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이름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경받고 있으니. 그에게 예술은 성공의 수단이자 생업인 동시에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해보자. 그림 속에서 화가 앞에 놓인 이젤 속의 내용은 오직 화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는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 왕과 왕비의 얼굴, 자기 자신의 작품, 그 그림을 감상하고 있을 300년 뒤의 감상자. 그 무엇이든 이젤 위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섬세한 붓은 '무엇이든' 그곳에 완벽히 담아낼 수 있을 테니. 그러니 우린 <시녀들>을 단지 왕실의 명령에 따라 현실을 똑같이 베껴 그린 작품이라고 폄하할 수 없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재현 미술'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벨라스케스가 정석적인 성공가도를 따른 예술가였다면, 피카소는 체계에 순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기존의 교육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벨라스케스가 스페인의 왕실화가였다면, 그는 스페인의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난 화가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를 프랑스 화가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그는 독재자였던 프랑코에 반발하여 조국인 스페인을 떠나기도 했다. 피카소는 평생동안 많은 것들에 저항했고, 파괴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그렸던 과거의 작품들 조차도 말이다. 다시 말해 피카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예술적 성취새로운 작품뿐이었다. 그렇다면 체제에 순응했던 벨라스케스보다 체제의 한계를 극복해낸 피카소가 더욱 위대하다는 의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피카소가 누렸던 '자유'는 그의 천재성으로 이뤄낸 것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이룩한 인류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당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어느 시대의 예술이, 어느 시대의 예술가가 더욱 위대한가? 라는 질문은 그러므로 조금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다.


 피카소가 살았던 시대는 제법 자유로웠을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수요 역시 상당했다. 즉 예술이 돈이 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 나이에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어 부와 명예를 손에 넣는다. 피카소는 천재적 재능세상의 인정을 모두 거머쥔 행운아였다. 그러한 시대였기에 그의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예술세계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거장들의 그림을 새로 그리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피카소가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시녀들> 앞에서, “벨라스케스, 내가 당신을 이겼어!”, 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그의 자신만만한 예술관을 보여준다. 그는 놀라운 열정으로 끝없이 상상하고 발전해나가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에게 예술은 하나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며 완성이 아닌 파괴이다.


 벨라스케스의 ‘자아실현’이 은밀하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피카소의 ‘자아실현’은 과감하고 폭력적이다. 피카소의 <시녀들>로 돌아가보자.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알고 있는 이라면, 피카소의 작품은 ‘독단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화면 절반을 차지한 화가(자기 자신)의 모습, 의도적으로 형성한 극명한 흑백의 대비. 얌전히 앉아있던 고상한 강아지는 자신이 기르던 닥스훈트 룸프가 마음껏 뛰노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위대한 스페인 왕실조차 피카소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에 불과하다. 피카소에게 '미술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이다. 그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현실'라고 말한다.



인간이 세상에 맞서 싸우고 화해하는 방식, 예술


 피카소와 벨라스케스가 추구했던 예술과 삶의 방식, 살아온 시대는 극명하게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도 거장으로 불리고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시대 속에 녹아들어 최고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었고, 피카소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낸 인물이다. 벨라스케스는 재현 예술의 대가였고, 피카소는 입체파의 선구자였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인물들이 그려낸 두 <시녀들>에도 공통점은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 인식’을 위한 예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은밀한 방식이든, 과감한 방식이든 말이다. 쉽게 말해 벨라스케스와 피카소는 '자신 만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누구였든 말이다.


 인간이란 세상과 대결하며 자기 자신을 확립해나가는 존재이다. 현실에 순응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니게 갈팡질팡 하거나. 어느 쪽이든 우린 그다지 친절하고 따스하지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아름다움'은 우리가 이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갈 중요한 동기가 되어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낄 권리는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앞에서, 누군가는 어린 아이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까? 오늘날 사람들은 '예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측정하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 만큼이나 타인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존중해야만 한다.


 예술이란 가장 개인적인 행위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활동이다. 그리고 아름다움보편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것이다. 마치 당신을 바라보는 연인의 따스한 눈빛처럼, 사랑한다는 속삭임처럼. 누구나 그 감정을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당신이 느끼는 것만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다면, 나의 부족한 설명을 참고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 것을 추천하겠다. 이제 내가 묻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피카소의 그림이 아름다운가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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