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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Jul 23. 2020

내 마음의 비설거지

<Love The Way You Lie>를 들으며 아무생각 대잔치

비설거지 : 비가 오려고 할 때 비에 맞지 않도록 물건을 치우거나 덮어서 단속하는 일  
(네이버 국어사전)

장마라 비가 계속 내리는 요즘이에요. 저희 부모님은 시골에 계시고 자연이 주는 대로 받는 일(죽방멸치)을 하셔서 그런지 비가 오기 전 '비설거지'를 꼭 하십니다. 예상되는 강수량이나 풍속에 따라 죽방에 피해가 가지 않게 미리 정비하십니다. 배는 안전하게 정박하고 말리던 멸치와 그물은 거두어들이시죠. 도시 아파트에 사는 저 같은 사람은 비설거지라고 해봐야 창문 단속 정도 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 창문 단속 후 오랜만에 노래를 감상했어요. 미취학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하지 않는 많은 것 중 하나가 '음악 감상'이었는데 어제는 아드님이 일찍 주무셨거든요.


얼마 전부터 브런치라는 글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좋은 글과 함께 음악을 추천해 주시는 작가님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가끔 제가 구독 중인 작가님들 브런치에 놀러 가 플레이해놓고 멍 때리기도 합니다.


어젯밤은 아드님도 일찍 주무셔 주시고, 남편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서 저도 이어폰이라는 작은 자유 안에서 제 취향대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비도 오고 온전히 음악만 듣고 있으니 '얼마 만에 내 마음대로 감정에 취해보는지' 하며 그 기분을 놓치기 아까워 글도 끄적였어요.


'비, 밤, 음악, 온전한 혼자의 시간'을 만끽하며 '멍 때릴 시간이다~' 했지요. 그럴 땐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그런 순간이 있음에 먼저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이나마 생활하고 있음에 대해 안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엔 걱정 부자의 면모를 버리지 못하고 마음의 비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비설거지.


지금 제가 걱정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예요. 최악을 먼저 생각하면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봐 힘이 빠질 수도 있지만 무리를 하거나 즉흥적으로 일을 몰아붙여 큰 실패를 할 일은 잘 생기지 않으니까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도 사실 이점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크게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긍정적인 나머지 쉽게 흥분하고 대담해져서 지나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크게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크게 망할 수도 있다.(중략)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꿈보다는 현실의 혹독함을 먼저 생각한다. 기대되는 이익보다 위험을 의식한다. 큰 도박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큰 실패도 없다. (중략)
실제로 긍정과 부정에는 최적의 비율이 있다. 바로 4:1이다. 부정적인 면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 <예민함 내려놓기>, 오카다 다카시, 2018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다른 누구도 아닌 ''를 우선순위에 두고 지금의 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너 요즘은 어떠니? 괜찮니?'라고 안부를 묻는 거지요. 오래도록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는 항상 '글쎄'하며 미적지근한 답을 찾습니다.


우리는 매일 부부, 부모, 형제, 직장동료, 친구, 지인 등 온갖 관계 속에서 n개의 역할을 하며 각양각색의 일과 감정을 나누고 살아갑니다. 그런 과정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모르고 속기도 하고 알면서 속아주기도 하고요. 배려를 하기도 하고 '그래 봤자 나한테 남는 것도 없을 텐데' 하며 말기도 합니다.


내리다 말다 하는 비처럼 이 생각 저 생각 '아무 생각 대잔치'를 벌이며 이 노래 저 노래를 듣던 중 어제는 Skylar Grey가 부른 Love The Way  You Lie 꽂혔습니다. 원곡은 Eminem과 Rihanna가 불렀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 Skylar Grey의 목소리로 들었습니다.


엄청난 반어법으로 '너의 거짓말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노래예요.

On the first page of our story 우리 이야기의 첫 장에서는
The future seemed so bright 미래가 아주 밝아 보였어
Then this thing turned out so evil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사악한 것이었어
I dont know why im still surprised 내가 왜 아직도 놀라 있는지 모르겠어
Even angels have their wicked schemes 심지어 천사들도 못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도
And you take that to new extremes 그리고 넌 새로운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But youll always be my hero 그래도 여전히 넌 나의 영웅이야
Even though youve lost your mind 네가 미쳤다고 해도
Just gonna stand there and watch me burn 그저 거기에 서서 내가 불타는 걸 지켜보겠지
Well thats alright because I like the way it hurts 글쎄, 그래도 괜찮아 왜냐면 난 이 고통이 좋거든
Just gonna stand there and hear me cry 그저 거기에 서서 내가 우는 소리를 듣기만 하겠지
Well thats alright because I love the way you lie 글쎄, 그래도 괜찮아 왜냐면 난 네가 거짓말하는 방식이 좋거든 
I love the way you lie 네가 거짓말하는 방식이 좋아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쇠고랑 차지 않을 만큼의 거짓말도 하면서 속고 속이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어떨 땐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살기 팍팍한 세상살이 자체가 거짓말이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하고요.


저를 둘러싼 관계나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나 배려 없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갈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날은 이런 노래라도 들어야 덜 불행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덜 억울한 거 같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저는 지난주에 계약직이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남편은 8월에 기대하고 있던 일 스케줄이 몇 달 연기되었어요. 제법 괜찮게 살아내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자꾸 괜찮지 않다고 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요.


이럴 때 전 무작정 괜찮다 괜찮다가 위로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또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그 최악이 내일 아침에 오더라도 괜찮은지 저에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어제는 이 노래를 따라 중얼거려봤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요.

Well thats alright because I like the way it hurts
글쎄, 그래도 괜찮아 왜냐면 난 이 고통을 느끼는 방식이 좋거든

어제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때 떠오른 드라마 한 장면이 있습니다. 2002년 여름 MBC에서 방영한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인데요. 당시 고3이었던 저는 본방사수를 위해 학원 다녀오는 길 걸음을 서둘러 집에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경(이나영) 정말 그렇게 완전히 믿어요?

미래(공효진) 믿는다는 게 뭔 줄 아니? 그 사람이 날 속여도 끝까지 속아 넘어가면서도 믿어버리는 거. 그게 믿음이다.


마음의 비설거지를 하며 감사도 하고 걱정도 하고 희망도 떠올려 보다가 절망하지 말자 다짐도 하며 아무 생각 대잔치를 했어요. 제 삶은 제가 생각하기 나름이고, 제가 선택하고 제가 책임지기 나름이라는 정말 평범하고도 늘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했고요.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이면 좋겠지만, 당장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더라도 먹고사는 일은 멈출 수 없는 거니까요. 무슨 생각이든 결론을 내고 무슨 일이든 할 밖에요.


그리고 평소 저대로 '믿겠다고 생각하고 믿자(모든 관계는 아닌, 밀도 있는 관계인 경우), 그래야 제가 상처도 덜 받고,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더라도 살아갈 힘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번 더 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믿고, 저와 관계한 소중한 사람들을 믿고. 내리는 비를 많이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해 봅니다. 이번 장마에도 개운한(?) 마음의 비설거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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