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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Aug 19. 2020

브런치에 쓰고 또 쓰며 새벽 다 가는 줄 모른다

저의 긴 댓글과 긴 글에 대한 이야기

오해 주의!

긴 글과 긴 댓글을 쓰시는 작가님, 독자님들 오해 마셔요.

저는 개인적으로 긴 글과 긴 댓글을 사랑합니다.

물론 짧은 글과 댓글 역시 사랑합니다.


이 소제목의 뜻은 할 말을 다 하고도 넘치게 쓴 저의 글과 댓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양질의 긴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담백하게 짧게 쓰는 것도 어렵네요. 깜냥이 안되어 길게 쓰인 글을 어쩌지 못해 그냥 둘 때가 많습니다.  3개월간 브런치에서 글을 붙들고 버틴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댓글 알바인 줄 알았어요, 댓글이 엄청 길어요.'

제가 단 댓글이 길어서 어떤 작가님께서 저에게 건네신 말씀이에요. 긴 댓글에 놀라기도 하셨는데, 기억에 남고 좋다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어요.


'다른 분 보기에도 길긴 길구나.'

스스로도 그리 여기던 중이었는데, 직접 피드백을 해주신 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댓글도 글도 적당량을 찾는 중이에요(이 말씀을 해주신 작가님께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번 드려요!).


'댓글과 글이 왜 길지?' (생각의 시간이 좀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해요.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 길어진 댓글과 글
얼마 전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 대한 글을 쓴 게 있어요. 그 글에도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 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라는 부분을 인용했는데요, 제 댓글과 글이 긴 이유가 이 인용구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늘로 브런치 활동 3개월째입니다. 현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떠드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살면서 말 못 하고 담아뒀던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3개월 간 쏟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쓰면서 제 마음 정리 효과는 분명 있지만 읽는 분에게는 시간낭비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에 힘들기도 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제 경험을 통해 위안을 받는 부분이 계신다면, 제 글이 무용하지는 않겠지 하며 꾸역꾸역 써보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저를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인정하게 된 부분지만, 여전히 못난 구석을 보며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해요. 그만 써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 던 중, 요며칠 브런치 글을 매개로 소통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님, 독자님들과의 댓글 수다가 유난히 위안이 많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한 독자님께서 메일로 제 글을 읽은 소감을 전해주셨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정말 감사했습니다. 단 한분에게라도 공감을 나누고 싶었는데 메일로 마음을 나누어 주셔서 기뻤어요. 그분께서 '상처라는 것이 약 한번 바르고 낫기도 하지만 아물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니까,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어제의 저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혹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쓰기가 지난 3개월의 기간보다 두렵고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브런치에서 글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가님, 독자님들과의 글, 댓글 소통은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커졌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글을 계속 써야 나도 떳떳하게 계속 어울릴 수 있겠지' 하며 다시 생각을 고쳐먹어보기도 했어요.


글쓰기를 더 경험하고 알아가다 보면 '자신을 위한 글'에서 '소통이 있는 글', '어떤 형태의 것이든 나눔(적어도 지식 나눔은 제 역량을 넘어섭니다;;)이 있는 글'도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댓글은, 처음에는 용기가 없어 달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이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달기 시작했어요. 제 글에 먼저 달아주신 댓글로 '글 쓰기로 느끼는 감정들'과 다른 결의 '공감'을 느꼈습니다. 댓글 공감의 재미에 빠져 댓글을 달다 보니 댓글이 길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런치에는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시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작가님들, 독자님들이 많이 계시단 것을 느꼈습니다.


떠들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제 글에 '그렇군요' 하고 이해의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댓글로 작가님만의 통찰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요. 제가 용기 내어 댓글을 달면 또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공간을 편히 여기게 되었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걸까요? 이 이야기를 위해 정약용, 사마천, 빈센트 반 고흐의 삶, 몇 장면만 빌릴게요.

(저는 역사문화예술 문외한입니다. 길게 가져오려 해도 아는 게 별로 없어서...정말 몇 장면만 빌려와 볼게요)


정약용(조선 후기의 학자 1762~1836)의 18년 동안 귀양살이와 500여 권의 책 집필

조선 성군으로 꼽는 왕 중 한 명인 정조와 가깝게 지낸 정약용은 정조 승하 후 유배를 가게 됩니다.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며 500여 권을 책을 썼어요. 그 이유가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그 기간 동안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죄인 정약용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기에 자신에 대한 기록은 스스로 했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기록을 남겨 훗날 평가받고자 했던 것이지요.

사마천(중국 전한의 역사가 B.C.145?~B.C.86?)의 구우일모九牛一毛(사형이냐 궁형이냐)

아버지(사마담/태사령_국립도서관장)의 직업을 물려받은 사마천은 한무제를 보필하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어요. 한나라를 위협하던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항복하게 된 이릉 장군에 대한 소신발언을 한 사마천은 한무제의 눈 밖에 났습니다.
이릉 장군과 관련한 어수선한 소문(흉노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는)이 나돌았고,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사마천에게도 사형을 내렸습니다.
당시 한나라 법에 따르면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50만전을 내거나, 궁형(내시가 되는 것)을 당하는 것이었어요. 사마천은 50만전이 없었고, 사형을 당하거나 내시가 되거나 중에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당시 49세였던 사마천은 궁형을 자처했습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했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요. 절친(임안)도 자결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했다고 해요.

사마천은 <보임안서(친구 임안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치욕을 견디며 궁형을 택한 자신의 심정을 남겼습니다.

노예나 비첩 같은 존재들도 오히려 자결할 줄 아는데 하물며 내가 어찌 그렇게 할 수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치욕을 참고 견디며 더러운 흙 속에 뒹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내 마음속의 소원을 다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비루하게 살다가 죽을 경우 나의 글이 후세에 남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네. 이제 내가 저술한 이 글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이전에 당했던 굴욕이 보상되리라고 믿네. 이제 더 참혹한 형벌을 당한다 할지라도 어찌 후회됨이 있겠는가?

사람의 죽음 가운데에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임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사마천에게 부치는 박경리 시인, 문정희 시인의 시도 있답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 긴 낮 긴 밤을 /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 글을 썼던 사람 / 육체를 거세당하고 / 인생을 거세당하고 /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 박경리 시 <사마천> 전문
(중략)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 간 자리에 /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 천 년 후의 여자 하나 /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문정희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부분

스스로를 기록하고 싶어 쓰는 글쓰기


저는 학자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도 없기에 왕을 보필하다가 그의 눈밖에 날 일도 없습니다. 정약용처럼 18년간 유배를 가거나 사마천처럼 궁형을 당할 일도 없습니다. 그들 만큼 절박하게 '역사에 남을 내 이야기는 내가 기록하겠다, 역사에 기록될 진실을 내가 쓰고야 말 것이다'하는 사명감도 없습니다.


다만 정약용도 한 명의 사람이었고, 사마천도 한 명의 인간이었습니다. 남의 기록이 아닌,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글로 스스로를 남기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한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인 거고요.


저도 저 스스로를 제가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 정약용이나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중 한 명인 사마천도 평생을 바쳐 썼는데, 저는 그 발끝도 못 따라가는 지식으로, 먹고살기만 해도 사실 버겁고, 글을 주업으로 할 일도 없고, 역사에 무언가를 남기겠다 하는 포부도 없는 지라, 저라도 저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이름 석자를 남기고자 하는  더더욱 아니에요. 저에 대한 기록이 출생신고 같은 공문서 외에 없어서 어떤 이야기로 저를 설명할 길이 없다면 그런 게 슬플 것 같아요.


저에 대해서는 저 말고는,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알 수가 없어요.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요. 저를 이해하며, 가족 그리고 남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쓴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주 조금만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사는 동안 이렇게 저에 대한 글쓰기를 연습처럼 계속 쓰고,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와 같은 재치 있는 묘비명 한 줄이라도 제 인생의 문장으로 남기게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해봅니다(이런 것이야 말로 너무 큰 바람인가 싶긴 합니다만^^;).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영국 극작가로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조오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흔히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번역하는데 ‘우물쭈물하다’는 결단력이 없다는 뜻이므로 잘된 번역이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확한 번역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라고 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묘비명 읽는 재미



얼마 전, 제가 썼던 글과 관련하여 한 작가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보게 된 영화 <러빙빈센트>의 엔딩 장면입니다.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I want them to say :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저도 여기저기 끄적인 제 이야기를 읽게 되는 누군가가 이렇게 느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이해와 공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구나.


긴 댓글과 긴 글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길고 길었습니다. 적당량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항상 따뜻한 공감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겐 지금 글을 읽어주시는 한분 한분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저도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께 아주 작은 위안이 되면 더없이 기쁘겠어요. 사실 제 글에 그런 힘은 없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편안한 밤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저와 글로 놀아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노래 한 곡으로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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