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긴 댓글과 긴 글에 대한 이야기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 길어진 댓글과 글
얼마 전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 대한 글을 쓴 게 있어요. 그 글에도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 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라는 부분을 인용했는데요, 제 댓글과 글이 긴 이유가 이 인용구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해요.
조선 성군으로 꼽는 왕 중 한 명인 정조와 가깝게 지낸 정약용은 정조 승하 후 유배를 가게 됩니다.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며 500여 권을 책을 썼어요. 그 이유가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그 기간 동안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죄인 정약용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기에 자신에 대한 기록은 스스로 했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기록을 남겨 훗날 평가받고자 했던 것이지요.
아버지(사마담/태사령_국립도서관장)의 직업을 물려받은 사마천은 한무제를 보필하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어요. 한나라를 위협하던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항복하게 된 이릉 장군에 대한 소신발언을 한 사마천은 한무제의 눈 밖에 났습니다.
이릉 장군과 관련한 어수선한 소문(흉노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는)이 나돌았고,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사마천에게도 사형을 내렸습니다.
당시 한나라 법에 따르면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50만전을 내거나, 궁형(내시가 되는 것)을 당하는 것이었어요. 사마천은 50만전이 없었고, 사형을 당하거나 내시가 되거나 중에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당시 49세였던 사마천은 궁형을 자처했습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했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요. 절친(임안)도 자결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했다고 해요.
노예나 비첩 같은 존재들도 오히려 자결할 줄 아는데 하물며 내가 어찌 그렇게 할 수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치욕을 참고 견디며 더러운 흙 속에 뒹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내 마음속의 소원을 다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비루하게 살다가 죽을 경우 나의 글이 후세에 남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네. 이제 내가 저술한 이 글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이전에 당했던 굴욕이 보상되리라고 믿네. 이제 더 참혹한 형벌을 당한다 할지라도 어찌 후회됨이 있겠는가?
사람의 죽음 가운데에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임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 긴 낮 긴 밤을 /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 글을 썼던 사람 / 육체를 거세당하고 / 인생을 거세당하고 /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 박경리 시 <사마천> 전문
(중략)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 간 자리에 /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 천 년 후의 여자 하나 /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문정희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부분
스스로를 기록하고 싶어 쓰는 글쓰기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영국 극작가로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조오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흔히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번역하는데 ‘우물쭈물하다’는 결단력이 없다는 뜻이므로 잘된 번역이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확한 번역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라고 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묘비명 읽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