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nina Mar 13. 2021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자잘한 순간

새벽 3시, 영화 "쉘 위 댄스"를 보다가

아이를 재우고, 잘까 말까 하다 노래를 들었습니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겨울에서 풀려나는 봄 날씨처럼 마음을 살짝 붕뜨게 하더군요. 잠이 달아났어요. 이래서 자기 전에 휴대폰을 멀리 하라나 봐요.


문득 영화 <Shall We Dance>가 생각났어요. 18전쯤 봤었죠. TV를 켜고 혼자 극장 온 것 같다며 자세를 잡고 앉는데 웬걸, 렉 걸린 듯 끊기는 거예요. 3분 동안 화면의 두둠칫. 그냥 잘까 말까. 멀끔한 주인공 스기야마 씨가 전철 문에 기대 졸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장면에서 그냥 기분 좋게 리모컨을 내려뒀습니다.


영화 <쉘 위 댄스 Sall We Dance?>, 1996 / 스기야마 씨가 누구인지는... 아시겠지요? ^^ 


스기야마 씨는 중년의 가장이에요. 아내와 불화도 없고, 아이가 말썽을 부리지도 않는데 마음이 헛헛해졌어요. 퇴근길 전철 안에서 밖을 바라보다 댄스 교습소 창문 너머로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망설이다 그저 그녀와 춤 한번 춰보고 싶어 교습소에 가게 되었고, 춤을 추다 보니 정말 춤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땀범벅이 되도록 춤을 추며 오랜만에 '매일매일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무대에서도 당당하게, 멋지게,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슬로 슬로 퀵퀵' 스텝을 밟는 등장인물들은 온몸으로 말하더군요.


'나 살아있는 기분이에요.'


난 언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지?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기분을 더 많이 느낄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am 3:00

세상 어둡고 고요한 시간. 땀에 절은 스기야마 씨의 미소가 배 아프도록 부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기 전, 몸과 마음을 들뜨게 했던 노래를 다시 플레이했습니다.


매트 위에 서서 기분 좋게 귀를 간지럽히는 노래에 몸을 맡겨 봤어요.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캄캄해서 나조차 내가 잘 보이지 않아 민망할 것도 없었죠. 몸치지만, 영화 속 스기야마 씨의 미소를 떠올리며 두둠칫.

춤이 좋아서, 춤을 추고 싶어서, 달밤에 공터에서 혼자 춤 연습을 하고 있는 스기야마 씨.

어깨도 살짝살짝, 팔도 머리 위로 살랑살랑.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는 데만 집중해봤어요.


어둠이 커다란 무대처럼 느껴지자 밤하늘을 나는 새라도 된 기분이었요. 내려앉은 어둠이 넓은 우주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난 우주의 먼지일 뿐인데, 뭐 그리 심각할 때가 많을까. 하ㅡ' 


얼마 전까지의 am 3:00

울기 좋은 시간이었어요. 좀 더 이른 시간에는 잠들지 않은 남편이 거실에 있을 수 있고, 좀 더 늦은 시간에 울면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부어 하루를 망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새벽 3시. 훌쩍이는 소리를 누가 들을 새라, 어둠 속에서도 티 나지 않는 작고 작은 점이 되고 싶었어요.


어쩌다 두둠칫 am 3:00

여전히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었지만 춤을 추자 밤은 무한히 넓은 무대가 되어, 나의 몸짓에 집중해주고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기분'은 어쩐지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애를 써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에서만 느끼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지금 저의 생애주기에는 육아와 가사가 큰 부분에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커리어를 이어가는 일이라기 보다 현실적인 나의 상황에 맞는 소일거리를 찾아가며 해야한다는 사실에, '살아 있는 기분을 어느 틈에서 느껴야 하는거지?'라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을 스스로에게 보낸 요즘입니다.  




작년 이맘때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작년에는 조금 더 많은 조건을 따졌어요.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과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 중에서 갈팡질팡하며 마음 정리가 잘 되지 않았거든요. 


1년이 흐른 지금, 조금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남편은 지방 근무 중이니, 미취학 아이 케어는 제가 신경써야 해요. 집근처 일터. 제가 바라는 조건은 그 하나가 되었어요. 아이도 저를 덜 기다리고, 저도 많은 시간을 들이며 무리하지 않는 생활이 가능한 일이요.


아이는 100일이 되려면 한달 넘게 남았을 때부터 4년간, 하루 14시간을 저와 떨어져 있었어요. 기다리다 지쳐 제가 퇴근을 해도, 저를 쳐다도 보지 않게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니었어도 될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기며 '조금만 더'라는 늪에 빠진 듯 무리를 했어요.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일할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래야 저도 아이도 같이 기분 좋게 눈 맞추고 손잡고 춤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날이 많겠죠.




마음에 닿는 음악을 듣고 리듬에 몸을 맡겨 보는, 전혀 거창하지 않은 자잘한 몸짓 하나 만으로도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살랑거려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기분이에요. 


지금 집중해서 글을 쓰고, 이번에는 발행하리라 하며 손에 땀을 쥐는 마음도 '살아 있는 기분'일텐데, '읽는 사람에게 시간낭비 아닐까? 그럼 시간낭비가 아닌 글을 쓰면 되잖아. 하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되지않아.'하는 마음과 싸우느라 자주 잊기도 해요.


살아가는 일에 대해 너무 지레 걱정하고, 거창하게 생각하느라 진이 빠지곤 하나봅니다그냥 가 할 수 있는 만 하나씩 해보고, 아주 작은 도전과 성취에도 스스로 격려해주고, 그런 순간순간을 쌓는 것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걸텐데요. 


스코틀랜드 정치 경제학자며 철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무용과 음악은 인간이 발명한 최초이자 가장 기초적인 쾌락이다'



At My Worst


어느 새벽.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하더니, 결국 춤추게 한 노래.

Pink Sweat$ 의 <At My Worst> 

Pink Sweat$ <At My Worst>


Ay My Worst.


있는 그대로 지금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Worst라고 할만한 지표가 많아요. 저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부채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Best라 할 만한 지표도 있겠더라고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이전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더 편안해지는 기분이에요. 몇 안 되는 지인들과도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고자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요. 작년 이맘때에는 큰 산 처럼 여겨져 도전해 볼 생각도 안했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제 역량만큼 글도 쓰고 있어요.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난 내가 최악일 때도 날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해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건 알아,

   그래도 내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

   ...

   Oh, oh, oh, don't you worry


  나의 바닥을 알지만,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 있고,

  나의 부족함을 알지만, 내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고,

  나 역시 그에게 그럴 것이고.

  앞으로도 서로의 Worst를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Worth를 알아줄 사이가 있다는 것.


곱씹게 되는 노랫말과 리듬을 타다보니 나태주 시인의 시 <행복>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도 떠오르고, 이제는 울려고 새벽에 일어나고 싶진 않아졌어요.

 

마음에 닿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듯. 당장 내가 느낄 수 있는 자잘한 기쁨을 찾고 쌓아가다 보면 땀에 절은 스기야마 씨의 미소 못지 않은 저만의 '매일매일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습니다. 


좋은 건 같이 하면 더 좋겠죠.

다가오는 계절엔 따뜻해진 날씨 핑계도 대면서

좀 쑥스럽지만, 

제가 먼저 청해볼까 해요. 

Shall we dance?


리듬은 움직임과 동기를 연결해주는 메커니즘이다. 리듬은 (중략) 생존을 위해 필요한 움직임을 동기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드럼도 좋고, 베이스 기타도 좋다. 랩도 좋고, 댄스도 좋다.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들기며 노래해도 좋다. 지금 당장 생활 속에서 리듬을 찾아보라.

- <변화하는 뇌 -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한소원 지음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생긴 한 시간의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