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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Apr 26. 2021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읽고 쓰는 삶

느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오래도록 읽고 쓰고 싶습니다.

일요일 늦은 밤이나 월요일 이른 새벽, 지방으로 일하러 가는 남편은 양손 가득 옷가지와 반찬을 들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어정쩡하게 선 채로 저에게 물어요.


"요즘은 행복하나?"


제 대답은요.



저는 오랫동안 행복은 저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게 행복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행복하다는 사람들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행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던 때, 브런치에서는 당시 하던 일과 관련된 정보성 글만 골라 읽었어요. 에세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 세상과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서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거든요.


그런 글들을 읽으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고, 내 삶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어요. 사실 제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들이었기에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 거였죠. 제 삶이 답답함으로 차올랐다가 조금의 숨구멍이 생기자, 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궁금해지면서 장르 불문 글읽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느리지만 오래 하고 싶은 글 읽기


제 성격 탓도 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하면서 생긴 습관이 마주하는 글이나 말을 놓치지 않려고 하는 면이 있어요. 흘려들어도 상관없을 말 한마디도 주워 담아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성격과 습관 탓에 안 읽으면 안 읽는 거고 읽으면 정독을 해요. 브런치에는 읽고 싶은 글이 많지만,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면 지치고 또 그만둘까 봐 제가 읽을 수 있는 만큼, 느리지만 그만두지 않고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배움이 남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글 읽기


세상 어떤 것에서도 배움이 남지 않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글이든 읽고 나면 제 삶에 남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글을 읽더라도 글을 쓰신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를 읽고 싶었고, 스스로가 무엇을 느끼는지 느껴보려고 했요.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다'는 것이지, 내 삶이 잘못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겪은 제 내면의 아주 큰 변화예요.



Why Not?


'열린 사람으로 살아야지' 생각만 했지, 편견도 많고, 스스로에게 '그건 네가 할 수 없는 일이야. 네 삶과는 상관없는 거야.'라는 한계를 많이 뒀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발견하고, 'Why Not?' 하는 순간들이 생기고 있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여전히 제가 바라는 삶을 (먼저) 살고 계신 분들의 글을 읽을 때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고, 주눅이 들 때도 많아요. 하지만 그건 그 분들이 노력으로 이루신 것들이고, 고충도 있으실 테고, 글을 잘 쓰신 겁니다. 저 또한 제 삶을 잘 살고 글로 풀어내려 노력하다 보면, 저만의 즐거움도 늘어갈 것이라 생각해요.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쓰고 싶은 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메모 앱 속 노트 하나의 제목을 '나는 왜 글을 쓰는가'로 하고 생각날 때마다 그 공간을 찾아 떠듭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는, 혼자만 보는 글을 쓸 때에도 눈치를 보고, 어찌할 수 없이 안 좋은 마음이 흘러 넘칠 때만 글을 썼다면, 이제는 마음이 좋든 좋지 않든 글을 씁니다. 남에게 보이는 글은 아직 눈치를 많이 보지만, 계속 쓰다 보면 글을 대하는 마음도 변화하리라 믿어요.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만의 대답을 찾다 보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헛된 꿈을 꾸다 결국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개츠비이지만, 피츠제럴드는 글의 서두에서 그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를 일러두고 있지요. 아무리 암담한 시절이더라도, 삶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꿈꾸었다는 그 자체. 그 자체가 위대한 거 아니겠느냐고요.


   개츠비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고 자신이 그토록

   소망했던 꿈을 움켜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미 사라진 과거였다. (...)

   우리 모두가 그랬지만 이젠 상관없다.

   내일, 우린 더 빨리 달리 것이다. 팔을 더 멀리 뻗고...

   그러다보면 어느 찬란한 아침 우린

   세찬 물결이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나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페이지, F.스콧 피츠제럴드


책<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페이지가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영화<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쓰면서 내면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어요. '꼭 이루어져야 하는 희망, 꿈만을 꿀 필요는 없잖아? 이제라도 나를 아끼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지금을 살자.'


이런 희망을 갖더라도 저는 현실 속 땅 위에 발 붙이고 산다는 것은 분명하죠. 할 수 없어 보이는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겁니다. 다만 조금의 변화를 해보겠다는 건데요, 결국 끝은 어떨지 모르는 일이더라도 원하는 일이 있다면 희망하 것조차 관두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희망하는 나만의 무엇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 시 '분갈이',  전영관


올해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저의 결혼 10년 차입니다. 남편도 저처럼 느릴 때가 많은 사람인데요, 그동안 서로 알아가기 위한 마음은 느긋하지가 못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화분에 살기로 했지만 각자에게 맞는 온도나 습도 모두 달랐고, 한쪽만 썩어도 우리가 썩는 것이란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죠. 싹은 커녕 뿌리도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하기도 했지만, 그때라도 분갈이를 했다고 생각해요. 썩은 뿌리나 시든 잎은 잘라내고 새로운 흙도 섞어가면서요.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은 전.혀. 바라지 않아요. 다만, 분명 어려운 인연이고 약속에 다시 약속을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느리지만, 썩지 않고 건강하게 앞으로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을 희망해 봅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느티나무, 수령 약 1300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 저는 그렇게 오래는 살 수도 없지만,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뿌리내리며 살고 싶어요. ©부산시


글쓰기도 안 하면서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글을 쓰며, 왜 쓰는가를 생각하다 보니, 책 출간보다는 쓰고 싶은 글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화해하지 못한 어떤 시간에 대해서요. '과거'는 분명 어찌할 수 없이 다 지나간 시간임을 알지만, 아직 다 풀지 못하고 들고 있는 몇 개의 시험문제 같은 것. '그런 일이 있었지'하며 심플하게 내 마음속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오길 바라는 일들. 오래 걸리더라도, 그만두지만 말고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담백하고도 덤덤한 제 마음을 글로 만나게 되면 좋겠습니다.


현실에서 저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제가 이 곳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없습니다. 제 글은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딘가 메인에 오르는 일도 없지만, 오른다 해도 저를 아는 이가 읽게 될까 봐 밤잠을 못 잘 거예요. 언젠간, 이 세상 누가 읽더라도 밤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으면 해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 아무에게도 오해받지 않는 글은 존재하지 않겠죠. 그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제 마음이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린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지만, 나의 시간이 많아질 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부터 해야할 일을 찾아보고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계속 느끼는 것,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인지 하지 못했던 마음의 굳은살 같은 것이 브런치에 발을 담그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글 읽고 쓰기 전까지는 '지금, 여기, 행복'이나 '희망, 사랑'과 같은 표현은 입에 올리는 것도 간지러운 것 같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궁금합니다.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요.


이제라도, '행복, 사랑, 기쁨, 희망, 용기, 가벼움, 재미'와 친해져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글,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행복에 관한 인상적인 책은 <행복의 기원>입니다. 2014년 1쇄가 발행되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20년 11월에 발행된 34쇄 예요. 34쇄가 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인데, 저는 얼마 전에 겨우 궁금해졌네요. 이제라도 궁금한 것이 다행이죠.


스스로 느리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여기면서도 조급증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씩 읽고 쓰면서, 조금은 더 즐기면서, 이 곳에 머무르면 좋겠습니다.


이 글로, 

글 서두의 남편의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짐작하실 수 있겠죠?



매번 오랜만에 글을 올리다 보니,

발행할 때 괜히 민망하네요.

조회 수 하나하나, 라이킷 하나하나, 댓글 하나하나,

구독자 한분 한분. 모두 감사합니다.

댓글 안 남기셔도 그저 감사합니다.

부담 없이 읽어주시는 자체로 감사합니다.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고,

사랑도 많이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https://youtu.be/MoDxbcV6Ifc

Jason Mraz의 노래  'Have It All'.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더 행복하기를, 정말 그런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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