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가 항상 두려웠다.
내 통장 속 잔고는 대체로 0에 수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인의 결혼식 소식에 축하하는 마음보다 축의금 걱정이 앞섰다. 나는 매년 2월마다 찾아오는 연말 정산 시즌을 고대했는데 유일하게 목돈을 만질 기회였기 때문이다. 내가 소득보다 많이 써서 받은 환급금이지만 매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음 소비를 시작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통장의 잔고가 없는 이유를 나의 적은 월급으로 돌리며 분노했다. 하지만 급여의 앞자리 숫자가 몇 번 바뀌는 동안 내 통장의 잔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연말정산 환급 또한 매번 받았다. 나의 소득이 늘어나서 바뀌는 건 내가 사용하는 제품의 브랜드와 경험이었다. 결국 언제나 소비가 문제였다.
나는 매번 소비를 두려워하면서 기어코 소비를 통해 내가 얻으려고 했던 경험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했다. 무엇이 나의 잔고를 0으로 만들었는지 그만큼 가치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소셜 미디어 올린 기억에 남는 특별한 소비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겨우 포스팅하는 내가 올린 소비의 흔적이라면 분명 어떤 의미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여행은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 해시태그: #여행
- 포스팅 일자: 2015년 5월 5일
- 소비금액: 92,600원 (왕복 교통비 27,600원, 식비 35,000원, 선물 30,000원)
2015년 5월 5일 아침 나는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에서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여행 잘 다녀오고 이번 기회에 잘 충전하고 와! 그리고 보너스 조금 입금했다! 여행 경비로 잘 쓰고! “
나는 이 문자를 받고 터미널에 있는 은행 ATM 기기에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놀랐다. 통장에는 여행 경비라고 하기에는 조금 많은 100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 생애 첫 보너스였다.
며칠 전에 나는 대표님과 퇴사 면담을 했다. 내가 다니는 스타트업의 급여는 너무 낮았다. 평일에는 야근과 주말에는 특근을 밥 먹듯이 했지만 포괄 임금 제도는 그런 나의 노동 가치를 희석해 버렸다. 이럴 바에는 내가 창업을 하는 게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사업 아이템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사업이 망하더라도 알바 몇 개 뛰면 지금 받는 연봉을 매울 수 있었다. 계산이 서자 나는 더 이상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연봉 인상 요청이 아니라 굳은 퇴사 결심을 말씀드렸다. 당시 대표님은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했고 나는 적지 않은 금액에 내심 흔들렸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생각해 보겠다며 결정을 미룬 상태였다.
갑자기 생긴 여행 경비를 바로 쓸 수는 없었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긴 나는 그날 네 끼의 식사와 다양한 주전부리를 즐기며 전주의 먹거리를 휩쓸었다. 전주 경기전 근처로 다양한 상인들의 좌판이 가득했고 거리는 여행객으로 붐볐다. 나는 인파에 휩쓸리며 여유롭게 여행을 즐겼다. 이번 전주 여행의 목적은 사실상 회사와 이별을 준비하는 퇴사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나의 결정은 달라졌다. 지친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희망적인 미래도 그려졌다. 단순히 그날 받은 보너스 때문은 아니었다.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껏 소비하는 낙원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주말이 지나고 나는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나는 2년을 그 회사에 더 다닌 후 평소에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했다.
-<원룸 생활자의 안식처>
- 해시태그: #카페
- 포스팅 일자: 2017년 11월 11일
- 소비금액: 매달 106,000원 (아메리카노 20잔 70,000원 / 시그니처 커피 8잔 36,000원)
내가 살던 신대방역 보라매공원 근처 6평 원룸에는 나만의 공간이 없었다. 그 공간에는 나의 육체를 감싸는 이불 한 채와 몇 권의 책 그리고 한쪽에 가득 쌓인 생수통이 전부였다. 세상은 평온하기 그지없지만 내 방은 마치 종말 이후 살아남은 생존자의 벙커 같았다. 그 벙커에서 희망을 꽃피우기에는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그래서 나는 쉬는 날이면 뻔질나게 동네 카페를 찾아다녔다. 동네 카페는 나에게 하나의 세계였다. 그 공간은 카페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꾸며졌지만, 모두가 한 가지 동일한 가치를 제공했다. 바로 손님의 안락함이다. 회전율과 수용 인원을 극대화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방문하면 쏟아져 나오는 아메리카노처럼 마음이 덩달아 빨라지는데 동네 카페의 분위기는 대체로 느슨했고 여유로웠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두세 시간을 머물렀다. 물론 책을 펴 놓고 어떤 상상을 하며 멍 때리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남은 시간은 생산성 있는 작업을 하며 만족감을 채울 수 있었다. 5평 원룸이 나의 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면 동네 카페는 나의 마음을 지키는 안식처였다.
이 안식처를 오랫동안 지키려면 나와 카페는 어딘가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암묵적인 매너를 지켜야 한다. 나의 매너는 첫 커피를 시키고 세 시간이 지나면 시그니처 커피를 추가 구매하는 것이고 카페의 매너는 나의 다음 음료 주문까지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매달 10만 원 정도 사용하는 커피값은 나의 세상을 6평 원룸 이상으로 확장하는 소중한 비용이었다.
<나를 위한 가장 완벽한 경험 위스키>
- 해시태그: #위스키
- 포스팅 일자: 2018년 1월 31일
- 소비금액: 싱글몰트 위스키 부쉬밀 10년 (86,000원)
나는 오롯이 혼자일 때 술을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을 즐겼다.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글을 읽으면 이성이나 논리는 잠시 접어 두고 무방비 상태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큼은 인문학이나 자기 계발서가 아닌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었다. 나는 이 취미를 한겨울, 눈이 오는, 고양이가 우는, 아득한 밤이라는 환경적 조건이 발현될 때 즐기기 시작했다. 술로 몸을 데우고 들뜬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고독한 밤의 외로움은 거뜬히 견뎌낼 수 있었다. 술을 마시며 독서하는 취미는 어른이 되어 혼자 즐길 수 있는 가장 멋진 경험이었다.
내가 독서하며 주로 즐기는 술은 위스키다. 처음에는 잭다니엘과 조니워커로 시작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위스키에 입문한 술은 생일 선물로 받은 아이리시 위스키 부쉬밀이었다. 선물 받은 부쉬밀 10년산은 싱글몰트 위스키로 오크통의 은은한 나무 향이 퍼지며 묵직한 목 넘김이 좋았다. 나는 선물 받은 부쉬밀의 첫 경험이 좋아 항상 구비하고 싶었지만 8만 원 정도 하는 위스키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위스키는 특별한 날이나 좋은 사람을 만날 때 챙기는 귀한 술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회식이나 모임이 줄었고 평소 모임에서 지출하던 술값을 아낄 수 있었다. 마침 나는 위스키를 조금씩 모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번 기회에 나는 내가 머물러 있는 집에 항상 좋아하는 위스키가 나를 반겨주기를 바랐다. 위스키 수집은 취미로 삼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 위스키는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마시다 남길 수 있는 술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맥주나 와인은 한 번 따면 빠른 시간에 마셔야만 한다. 공기와 닿으면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스키는 도수가 높아 조금씩 마시고 다시 보관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소장이 가능한 것은 위스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둘째 위스키에는 시간과 이야기가 녹아있다. 위스키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최소 5년부터 10년 20년 30년을 숙성한 술이다. 더군다나 이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소들은 100년에서 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마치 중세 가문처럼 자기들 고유의 문장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위스키를 모으는 것은 결국 어떤 오래된 역사를 수집하는 것과 같다.
셋째 위스키를 통해 나의 성장과 나의 취향을 탐색할 수 있다. 나의 소비 여력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위스키의 제품군이 많다. 시작은 다양한 보급형 위스키로 맛을 탐색한다. 쉐리 위스키, 피트 위스키, 버번위스키 등을 맛본 후 보통 자신의 선호하는 맛의 방향을 선택한다. 이후로 나의 소득 수준에 따라 조금씩 고급형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위스키는 숙성연도에 따라 비교적 그 계층이 명확한 편이다. 위스키는 5년 미만으로 숙성한 보급형, 10년 이상 숙성한 입문용, 20년을 넘게 숙성한 고급용으로 나뉜다. 우리는 본인의 성장을 스스로 소비하는 상품으로 가늠하는데 가격대별로 구분된 위스키의 명확한 접근성은 다양한 소비 계층의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
내가 취미로 위스키를 선택한 이유는 나를 위해 가장 완벽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위스키는 향의 밀도가 높아 잔을 들 때부터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기분 좋은 경험을 전달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집에 놀러 온 지인들에게 위스키를 웰컴 드링크로 대접한다. 나의 소중한 취향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친구의 선물로 시작된 나의 위스키 첫 경험은 지금도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위스키 취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내가 혼자였을 때 내게 가장 완벽한 경험을 제공한 취향의 씨앗을 선물한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가장 멋진 소비는 좋은 집을 경험하는 것>
- 해시태그: #전세
- 포스팅 일자: 2018년 7월 3일
- 소비 비용: 8,000만 원의 대출 700만 원의 이자 (2년 거주)
2018년 여름 나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소비를 결심했다. 바로 월세에서 전셋집으로 옮기는 것이다. 서울시 광진구 어느 오르막길 중턱에 있는 전세 1억짜리 투룸 주택은 내가 처음으로 주거의 만족감을 느낀 특별한 집이었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의 인생이 어떤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의 독립생활은 줄곧 6평짜리 풀옵션 원룸이었다. 나는 그 원룸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나마저도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14평 옵션이 없는 투룸으로 이사하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첫째, 나만의 멋진 서재가 탄생했다. 잠자는 공간 말고도 나만의 여유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이곳을 멋진 서재와 응접실로 꾸몄다. 더 이상 휴일에 카페를 전전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 머물 수 있었다.
둘째, 온전히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생활공간이 태어났다. 보통의 풀옵션 원룸이 제공하는 비용 효율적으로 억지로 짜 맞춘 가구와 가전에서 벗어나 나의 취향이 반영된 가구와 가전으로 꾸민 나만의 공간을 만난 것이다.
셋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침실이 아닌 응접실에서 내가 직접 고른 가구와 가전이 있는 공간은 드디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나는 이 집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불러 집들이를 다섯 번이나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전세를 살던 아차산의 동네는 시장도 있고 떡볶이 맛집도 있었다. 그리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웅성이는 사람들이 가득해 묘하게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1인가구가 모여 살아 평일이나 낮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원룸 밀집 지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사람의 흔적을 통해 정서를 느끼는 것도 중요한 환경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이 머무는 공간도 확장되었고 더불어 높아진 나의 자존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사 온 이곳이 나를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소중한 경험을 위해 소비한 돈은 가전과 가구를 사는 데 사용한 300만 원 그리고 약 2년간 700만 원의 전세 이자다.
어쩌면 앞으로 전세라는 시스템은 갭투자라는 오명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전세를 통해 집을 경험했지만 결국 그 전세를 이용한 갭투자 때문에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집에 살기를 바란다.
<코로나 시대 나를 돌보는 브랜드의 소비>
- 해시태그: #브랜드 #재즈시대
- 포스팅 일자: 2021년 7월 21일
- 소비 비용: 룰루레몬 운동복, 요가매트, 파타고니아 바람막이, 발뮤다 전기 포트, 더토스트
2020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공연, 스포츠, 해외여행 등 모든 외부 활동이 축소되었다. 우리가 알던 일상의 루틴은 깨졌고 재택근무, 화상 미팅 등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꿈틀거렸다. 온라인은 시끌벅적했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조금씩 침착하고 있었다.
유난히 고요했던 그해 연말 나는 당시 어떤 소설가와 인터뷰했는데 그가 내게 인상 깊은 말을 해주었다. “어두운 시절에는 끝이 있고 그 시기가 지나면 흥청망청 즐기는 재즈 시대가 왔습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끝나면 우리에게도 그런 재즈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 재즈 시대에 대한 그의 예견은 맞았다. 예측과 달랐던 것은 재즈 시대가 오는 시기였다. 코로나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빠르게 코로나에 적응해 버렸고 곧 우리는 소비가 폭발하는 재즈 시대를 맞이했다. 2021년 유례없는 코스피 상승, 집값 상승, 연봉 상승이 줄을 이었다. 대출 금리는 낮았고 자산 가치는 마치 한도가 없는 것처럼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런 현상들은 코로나로 주춤했던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겼다. 고가의 자동차와 명품은 물론이고 나의 안락함과 내가 머무는 공간을 꾸며주는 것들에 대한 소비도 크게 성장했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하는 식사, 집에서 하는 운동 등 나와 내 집을 더 진심으로 꾸며주고 싶었다. 대충 차린 식사와 운동복 대용의 늘어난 티셔츠 말고 나의 건강과 나의 행복한 순간을 위해 더 의미 있는 제품을 구매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발뮤다의 전기 포트와 토스터기, 파타고니아의 바람막이, 룰루레몬의 운동복을 구매했다. 이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이 브랜드의 창업자들이 쓴 책과 인터뷰에 나타난 기업의 메시지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의 경험을 깊고 전문적으로 쌓아 온 각 분야의 장인들이다. 그래서 제품들이 실용적이고 품질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브랜드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가 범접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구매자의 자본 계층 구분하는 장신구 역할로 전락했다면 이 브랜드들은 자신들이 부여한 의미를 함께 소비하도록 하여 구매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를 구분시킨다. 더군다나 이들의 메시지는 지금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이는 의미 소비를 하는 팬덤을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타고니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회복시키는 아웃도어“, 룰루레몬은 “꾸밈없이 땀 흘리는 나의 아름다운 모습“, 발뮤다 “바람 한 점, 빵 한 조각, 커피 한 모금의 순간마저 찬란하도록 “ 코로나 시기에 내가 이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메시지 때문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나를 돌보고 나를 가장 아껴줄 수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은 나에게 단순한 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더 좋은 의미를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브랜드를 소유하는데 한 가지 부담이 있다면 비교 제품군에 비해 가격이 제법 높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가 해당 카테고리의 제품을 구매할 때 더 저렴한 상품들을 금방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브랜드를 소비하기 위해 집에 있는 물건들을 중고로 더 많이 판매해야만 했다. 내가 소유하는 것들의 가짓수는 더 적어졌지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만족감은 컸다. 나는 이 브랜드의 제품을 하나하나 구매하여 사용할 때마다 그 경험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나에게는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야 할 정도로 버거운 소비였지만 나의 취향을 보여줄 소중한 소비였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구매한 제품들과 함께 좋은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나는 주로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다. 좋은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가 나의 소비를 더 가치 있고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나를 지켜준 소비에 대한 고민
2015년부터 지금까지 내게 기억에 남는 소비 항목을 5개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내가 이 소비를 기록한 것은 단순히 찬란했던 소비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기록한 소비들이 단 한 번도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들이 기록되었다. 위스키 한 병 덜 산다면 여행을 한 번 덜 간다면 돈이 조금은 덜 버거운 삶을 살 수 있지는 않을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이다. 이렇게 기록한 소비들은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를 지켜주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나는 소비의 두려움 때문에 10년 전 한 공연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음악 감독이자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한국 공연이다. 지금 그는 암 투병을 하고 있고 또 언제 한국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당시 나에게 그의 공연은 꼭 간직하고 싶은 경험이었지만 소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이 경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이 공연을 포기하고 어떤 더 가치 있는 소비를 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소비의 두려움은 단순히 소득을 높이는 것으로 치유할 수 없다. 소득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이고 늘어나는 소득만큼 소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소비에 움츠러든다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경험은 정작 포기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소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를 공허하게 하는 소비보다 나를 채우는 소비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소중한 과정을 나는 밟아가고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소비를 두려워하면서도 수많은 소비의 헛발질을 경험한다. 문득 눈에 띈 운동화를 직구로 샀는데 나와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고 신상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를 시켰는데 버섯 맛이 날 때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비의 헛발질은 반짝반짝 기억에 남는 소비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실패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쓸모가 있고 무엇이 쓸모없는 소비일까? 이 질문은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스스로 답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 극단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은 나의 존재가 멈추는 것을 뜻한다. 소비를 거부하고 자급자족을 선택한 <월든>의 소로우는 고즈넉하고 멋있지만, 현실의 소로우는 영화 <소공녀>에 나오는 미소의 삶처럼 아득하고 외롭다. 나는 앞으로도 숨 쉬듯 소비할 것이다. 나의 경험을 더해가는 소비를 하며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소비의 경험을 늘려가다 보면 또 다른 반짝이는 기억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