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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Jun 18. 2024

할머니 - Saudades da minha avó

긴 여정을 떠난 Vovo (할머니) 를 기리며.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할머니를 떠나 보냈다. 내가 내 파트너를 처음 만났던 때부터 파트너의 할머니는 할머니였다. 거동이 불편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98세 노인. 집에서 24시간 할머니를 돌보는 파트너의 아버지와 고모를 도와, 내 파트너는 매주 토요일마다 간병을 도왔다. 지난 3월 캐나다에 오게 되면서, 약 3개월 간 할머니를 보러 가는 파트너와 함께 할머니를 방문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할머니를 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지난 월요일,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금요일에 퇴원을 예정하고 있던 지라 할머니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수요일 저녁,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 할머니의 컨디션이 나빠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몇 마디 말씀도 하시고 우리의 손도 잡아주셨기에 할머니가 무사히 퇴원하실 걸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다시 병원에 방문했지만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이미 긴 여정을 떠난 이후였다. 할머니를 몇 번 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할머니의 소식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거동이 불편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막 99세 생일을 지난 노인 - 내가 아는 할머니의 전부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할머니의 사진을 수집하면서 할머니의 지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희망찬 눈빛의 소녀, 누군가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딸. 남편과의 데이트를 즐기는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내. 금쪽 같은 두 자식들의 어머니.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다정한 할머니 - 아픈 할머니만 봐온 나로써는 상상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지난 날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내 용돈을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욕심에 덜컥 아르바이트를 구해 버린 내 이기심에 놓쳐버린, 할머니를 몇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내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어린 나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두 잃은 나에게는, '할머니'라는 존재의 지난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언제나 '할머니'였던 내 파트너의 할머니,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분의 인생을 사진으로 보게 되면서, '할머니'에게도 잘 나가던 한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더 뼈저리게 다가왔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순간에 행복을 누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할머니를 보내드릴 준비를 하면서 정장을 구매했다. 당분간은 정장을 입을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할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길에 후회 없이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오늘도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의 시간은 흐른다. 가족에게는 비할 데 없겠지만, 할머니가 그립고, 공허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한 달 전, 할머니가 "손주의 여자친구 Zoe"라고 하며 미소를 지으셨던 그 날을 기억한다. 할머니를 방문했던 마지막 날, 내 손을 꽉 잡아주셨던 할머니를 잊지 못할 거다. Adeus, av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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