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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Jan 28. 2024

인생의 변화를 맞이하는 자세

캐나다 로스쿨 도전기

나는 인생을 살며 몇 번의 전환점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우리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거치며 비로소 '나'로 거듭난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에게 두 번의 큰 전환점이 있었다. 그리고 서른 두 살의 나는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책을 좋아하는 수줍은 소녀였다. 학교 등하교 길에도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를 아주 못했지만 책임감이 강해 스스로 용돈을 벌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미친듯이 했었다는 걸 제외하면.. (우리 집은 잘 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이 내 용돈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지도 않았다.) 나는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도 그런 나를 존중해주셨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나는 닭갈비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에 유난히도 별난 손님들을 많이 마주하게 되면서, 난생 처음으로 대학교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엇을 배우는지보다도 무시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왕 가는 거라면 목표는 높이 잡고 싶었다. 그래서 내 눈에 가장 어려워보이는 법대 입학을 목표로 삼았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넘어가던 그 해 겨울부터 딱 1년을 미친듯이 공부했고, 하늘이 내 뜻을 알아줬는지 수능에서는 그동안 쳐온 모의고사에서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진짜 법대에 입학했다. 그게 내 인생에서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숙명여대 법학과 - 내 학교는 지식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려줬다. 부족한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법, 자신감이라는 것, 그리고 노력하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200명 정원의 우리 과에서 나는 내가 꼴찌에 가깝게 입학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쓸데 없는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고 출신부터 유학파, 그리고 지방에서 전교 1, 2등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나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웠다. 그러고 나니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쉬워졌고,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수 많은 밤샘공부 끝에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고, 조기졸업을 할 수 있었다.


졸업 직후 유통의 꽃이라 불리는 MD로 마음 편한 몇 년을 살았었다. 그러던 중 홍콩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롱디를 하고 있던 남자친구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취업했던 홍콩에서의 내 첫 직장은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보다 더 낮은 급여를 줬었다. 아시아에서 2위로 물가가 비싼 홍콩에서 살기 턱없이 부족한 월급을 받았기에 하우스쉐어는 물론, 사이드 허슬(side hustle - 본업 외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필수였다. 그야말로 내일의 밥값을 걱정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홍콩에서의 첫 1년 동안은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한국에 단 한 번도 올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생활이 나아졌고, 하우스쉐어에서 센트럴 30층에 나만의 아파트에서 살기까지 딱 5년이 걸렸다. 홍콩은 세상 물정 모르고 여리던 내게 악착스러운 생활력과 강인한 마음, 그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수 많은 기회를 줬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후회 없는 5년이었다.


2022년 중순, 싱가폴계 회사에 일하며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 홍콩에서의 삶을 접을 마음으로 여행을 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아시아에서부터 유럽까지 몇 개월 간의 방랑자 생활을 하니 몸과 마음이 지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홍콩으로 갈 마음으로 돌아온 한국이었지만 다시 와보니 역시 집이 좋았다. 일도 편했고, 친구들도 생겼고,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좋았다. 다신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 생활이 너무 너무 편해지던 지금이 변화의 순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 삶에 안주하는 이 시점이, 다시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라 믿는다. 


변화는 언제나 어렵다. 여러 번 도전을 해보고, 나이가 들며 경험이 쌓이면 이 또한 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생길수록 변화가 더 어려워짐을 느낀다. 집에서 누워서 일할 수 있고, 1년의 1/3은 여행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면서도 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 직장을 그만 두는 일, 연필을 놓은지 거의 10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일. 철 없고 돈 없던 25살의 내가 홍콩에 갔던 것보다 훨씬 어렵게만 느껴진다. 


변화에는 위험부담도 따른다. 1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하며 사치 부리지 않고 모아둔 돈을 모두 투자해 학교를 가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또한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비록 실패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올지라도,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을. 두 번의 인생의 전환점에서처럼, 눈물 흘리는 날들의 연속일지라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변화는 두렵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설레이게도 느껴진다. 이 설레이는 여정의 시작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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