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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Jun 09. 2022

거절하고 싶은 팬의 뜨거운 사랑

Michael Jackson 'Billie Jean'

연예인, 운동선수 등 유명 인사들은 팬 덕분에 먹고 산다. 팬들의 지지와 응원이 인기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재가 등장하는 세계에서 팬들의 환호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자신의 능력이 여전히 좋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퇴물 소리를 듣게 된다. 스타에게 팬들의 성원은 은혜로운 선물이다.


애석하게도 모든 팬이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담스럽게 행동하는 팬도 존재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머리카락을 뽑아 가는 팬도 있다. 짜증은 나겠지만 이 정도면 약과다. 스타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이들도 있다. 일정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어갔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집에 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과도하게 집착하는 팬들은 온몸으로 사절하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도 팬들 때문에 넌더리가 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유년 시절 자신의 형들과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로 활동할 때 광적으로 자신들을 따라다니던 팬들을 생각하며 'Billie Jean'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창작에 힌트를 준 셈이니 노래를 제작하면서 잠깐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에는 '빌리 진'이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자기가 예전에 노래의 화자와 잠자리를 가졌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무대 중앙에서 춤을 췄다'(we danced on the floor in the round)는 가사가 여러 번 나온다. 이는 성적인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빌리 진은 화자의 현재 연인에게 아이 사진을 보여 주기까지 한다. 아이의 눈이 화자와 닮았음을 인지한 애인은 눈물을 터뜨린다. 노래의 화자는 계속해서 빌리 진은 내 연인이 아니라고, 그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라고 호소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무척 난처할 듯하다. 마이클 잭슨과 함께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어떤 여성이 자기가 낳은 쌍둥이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마이클 잭슨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며 마이클 잭슨 본인의 얘기라고 밝힌 바 있다. 쌍둥이 중 한 명의 아버지라니, 너무 터무니없어서 혼란스럽다. 어쨌든 마이클 잭슨은 유년 시절 형들이 자기가 당신의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여성 팬들한테 시달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Billie Jean'을 썼다고 했다.

제작 당시 퀸시 존스는 노래 제목을 후렴 가사로 나오는 'Not My Lover'로 짓길 바랐다. 미국 유명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과 헷갈릴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양보하지 않아서 결국 'Billie Jean'이 됐다.


마이클 잭슨은 'Billie Jean'을 만들 때 또 다른 부분에서 퀸시 존스와 마찰을 겪었다. 완성된 곡을 들으니 본인이 처음에 퀸시 존스에게 건넸던 데모 버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퀸시 존스에게 곡의 크레디트에 자신을 공동 프로듀서로 올릴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퀸시 존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둘은 고성이 오가는 다툼을 벌였다. 결국 작업은 며칠 동안 중단됐다.


또한 퀸시 존스는 데모를 접했을 때 29초에 달하는 긴 전주와 그 파트의 베이스라인을 싫어해서 도입부를 잘라 내고자 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그 부분이 자신을 춤추고 싶게 만든다면서 본인의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의 단호함에 퀸시 존스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과정은 다소 매끄럽지 못했지만 'Billie Jean'은 큰 인기를 얻으며 가뿐하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R&B 노래'와 '최우수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를 수상하는 등 평단까지 사로잡았다. 묵직하면서도 시원하게 울리는 드럼, 은은하지만 금방 각인되는 신시사이저 루프, 마이클 잭슨 특유의 딸꾹질 보컬과 가성, 현악기 연주 등이 끈끈하게, 근사하게 하모니를 이룬 덕이다. 대중과 연예 매체의 호기심을 자극할 가사도 'Billie Jean'의 히트에 한몫했다.


노래는 대중음악계에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남겼다. 마이클 잭슨은 1983년 3월 전설적인 흑인음악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의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모타운 25: 예스터데이, 투데이, 포에버>에 출연해 'Billie Jean'을 불렀다. 이때 그의 전매특허 춤인 '문워크'(moonwalk)를 최초로 선보였다. 이 공연이 5월 미국 전역에 방송된 뒤 문워크 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음악 매체들이 '역대 최고의 노래' 리스트를 발표할 때면 'Billie Jean'은 어김없이 상위권을 꿰찬다. 1982년에 발표한 6집 [Thriller]는 두 번째 싱글 'Billie Jean'의 성공에 힘입어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달성했다. 팬들의 그릇된 애정이 아이러니하게도 명곡의 산파가 됐다.


<법무사지> 2022년 5월호 '세대유전 2080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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