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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Dec 13. 2024

시댁 식구들과 제주를 가다

가족 여행 다시는

한때 가족 여행이라고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가족 여행 다시는'이 자동완성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직 가족 여행이라 부를만한 본격적인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며칠씩 자고 오거나 당일치기는 있어도, 가족 모두와 함께 며칠씩 여행지를 간 적은 없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9년, 우리 부부는 양가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가족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중복적으로 가장 많이 들은 답안이 바로 저 말이었다.


"가족 여행 다시는..."


다들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의 피로감에 대해 토로했다.

부모님이나 시댁 어르신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과정은 힘들기 짝이 없었다고 했다.  

주변 반응으로 말미암아 가족 여행의 어려움을 짐작하고 계획을 짜던 때에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우리 부부는 슬슬 해외에 나가기 시작했고, 24년이 되어서는 다시 본격적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2019년 여행을 계획할 당시부터 여러 번 제주도를 언급하셨다.

가족 다 같이 제주도에 가면 좋겠다는 의미셨다.

가족에는 어머님과 아버님, 우리 부부, 그리고 아가씨 부부와 조카를 포함한 7명을 말씀하시는 거였다.


제주도라는 여행지 자체는 나도 당연히 찬성이었다.

다만, 시댁 어르신들은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으시다.

거기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가씨 부부의 경제적 사정은 언제나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님이 계속 제주도에 가자고 말씀을 꺼내실 때마다, 사실 나는 조금 불편했다.

(아마 남편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제주도에 가자는 어머님의 말씀이 가족 7명의 비용은 둘 다 돈을 벌고 아이도 없는 너희가 부담하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올해 양가 가족 여행을 계획하며 시댁에선 제주도 얘기가 다시 나왔고, 결국 우리는 제주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시댁 식구 7명의 항공권, 방 3 화장실 3의 리조트 숙박 비용, 렌터카 비용을 전부 우리 부부가 냈다.

거기에 당연히 여행지에서도 식사나 입장권등을 지불했다.

어머님 아버님은 마트에서 장 본 비용 10만 원을 내셨다.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 번 쓰신 금액이다.  

아가씨 내외는 식사나 기타 등등 금액을 본인들이 전부 내겠다며 열심히 카드를 내밀었지만, 당연히 전부 결제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아가씨 부부와 절반 정도 현지에서 사용한 비용을 나눠 냈다.


효도 여행이라 생각했으므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시니 돈을 안 쓰신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여러 번 갈 것도 아니니, 한 번 가는 것 충분히 부모님 여행 비용 모두를 낼 수 있다.

그럼에도 10만 원 쓰신 부모님이나, 몇십만 원 쓴 아가씨 내외나, 몇백만 원 쓴 우리 부부를 비교하면... 역시나 제주도 가족 여행 얘기를 계속 고집하신 어머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꼭 바다 건너 제주도가 아니라도 적당한 관광지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거기에 아버님은 음식에 관해 무던하시면서도 까다로우셨다.

괜찮은 음식점으로 모시고 가려고 하면.


"쓸데없이 비싸다."


해서 본인이 원하시는 메뉴를 선택해서 음식점에 가면, 다 드시고 난 후엔 결국 꼭 이 말씀을 붙이셨다.


"에이, 맛없다."


드시고 싶다고 직접 고르신 메뉴이고, 드실 때는 열심히 배부르게 드시고 나신 후에 마지막에 말씀하셨다.

음식점뿐만이 아니라 숙소에서 먹는 식사에서도 아버님은 식사를 다 마친 후엔 꼭 맛없다는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아버님은 가족 7명 중에 식사 속도가 제일 빠르시다.

가장 먼저 드시고 맛없다고 하시며 젓가락을 내려놓으시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입맛이 딱 떨어졌다.

보통은 돈을 많이 쓰면 어쨌든 돈 쓰는 맛이 있어서 기분이 좋은 법인데, 돈을 계속 쓰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내가 심성이 못된 며느리라 나만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남편에게 대놓고 묻진 않았지만, 남편은 나처럼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르신들은 아침잠이 없으신 편이고 일찍 일어나시는 반면, 오전에 느긋하게 움직이는 우리 부부나 아가씨 내외와는 생활 패턴이 다른 편이었다.

당연히 새벽같이 일어나신 어른들은 10시 체크아웃도 이미 일어나신 지 오래되신 것일 테다.


"한나절 다 가버렸네."


체크아웃을 앞두고 하루가 다 가버렸다고 하시면, 아침부터 기운이 쭉 빠졌다.

물론 자녀들과 더 많은 일정을 하고 싶어서 그러신 것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어머님은 관광 일정에 굉장히 협조적이셨으나, 아버님은 가족 전체와 움직이는 일정에 계속 다른 의견을 내시는 것도 힘들었다.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중에 본인의 관심을 끄는 무언가, 가령 항구나 특이한 나무 등이 나타나면 꼭 확인을 해야 아버님 직성이 풀리셨다.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엉뚱하지만 고집 있으신 개별 행동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힘들게 했다.


하아...


내가 미숙하고 싹싹한 며느리가 아니라서 이렇게 안 좋게만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마음공부 좀 하자. 제발. 


거기에 오랜만에 만난 여섯 살짜리 조카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행 기간 내내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보다도 외숙모와 외삼촌을 찾았다.

우리 부부는 여행 기간 내내 어르신들의 기분과 놀아달라는 아이의 재촉 사이에서 정말 진이 빠졌다.


결국 여행 마지막날 저녁 침대에 누워 남편이 먼저 한마디를 꺼냈다.


"앞으로 가족 여행은 하지 말자."


나는 거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고 답했다.


여행 마지막날 밤에 아버님은


"그래도 너희 덕분에 이렇게 오니 좋다."


라고 한마디 하셨다.


어머님은 여행 중이나 여행 끝나고 다 돌아오고 나서도 이렇게 다녀오니 고맙다거나 좋다는 말씀은 없으셨다.

물론 그런 마음이 없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신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오고 기분이 그랬다.

제주도라는 기분 좋은 섬이 환기해 준 아름다움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모호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꼭 돈 때문은 아니다. 물론 예상보다 많은 돈을 쓴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


올해 초에 친정부모님과 동생, 우리 부부가 갔던 가족 여행이 생각났다.

전주로 갔던 일정이었다.

일정 시작에 앞서 만나자마자 5만 원짜리 10장이 든 흰 봉투를 내밀었던 엄마가 떠올랐다.

물론 친정 부모님은 어느 정도 노후 준비가 되어 있고, 재정적 여유도 있으니 양가의 상황은 다를 것이다.

친정 여행이라고 쉬웠던 것은 아니다.

양가 모두 어른들 비위를 맞추기란 거의 어린아이들 생떼 쓰는 것을 맞춰드리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잘 다녀와 좋았고 고맙다고 말 한마디를 하고 안 하는 것은 크게 느껴졌다.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조차 술에 취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었다.

어머님을 제외하곤 말이다.


아무튼 어느 쪽 여행이 더 쉽고 안 쉽고를 떠나 우리는 이번에 가족 여행에 조금은 학을 떼고 말았다.


당분간은 가족 여행 다시는... 일 것 같다.


그럼에도 어른들을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 몇 장을 남기고, 함께 며칠의 시간을 보낸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지금 당장은 조금 질렸지만, 나중에 또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을 떠날 것 같다.

아직 그래도 어른들이 여행을 다니실 수 있을 때,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하니 말이다.


다만 당일치기나 1박 정도면 충분히 여기저기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 여행... 은 아니고, 가족 나들이 정도로.


어른들이 애쓰시는 만큼 자식들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배려하고 인정해 준다면, 여행이든 작은 모임이든 가족 간의 행사가 훨씬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자식도 나이 드신 부모님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맞춰드리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가족인 만큼 더 기본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전적으로 미숙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서로 간의 거리와 매너를 신경 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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