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 시가 되어도 어둡지 않다면 곧 봄이 온다는 알림이다. 이 시기 낮의 가운데 시각 남쪽에 떠 있는 해는 이마 위를 넘어 솟고 등 뒤의 그림자는 주인의 키와 비슷해진다. 자연은 여름의 정점을 향해 가야 할 출발선 위에 서 있다. 자연의 주술이 땅을 깨워 흙을 느슨하게 만들고 아직은 거친 초봄의 볕이 흙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폭신하게 부풀리면 때마침 내린 비는 서투른 볕의 흙미장을 매끄럽게 마무리한다. 햇볕과 비의 하모니가 끝날 때쯤 지난 일 년간 대지와 하늘이 노심초사 맺은 결실인 온갖 식물의 씨앗은 흙이 부풀며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하늘을 향해 싹을 틔우고 엄동의 계절을 이겨낸 다해살이 들풀의 뿌리는 가벼워진 흙을 아래로 위로 움켜쥐고 소생한다. 들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올해도 한치의 어김이 없이 봄이 오고있음을.
쑥 새순은 봄을 알린다. 겨울이 지나면 땅은 드문드문 초록이다가 곧 푸르게 물든다. 작년에 고구마를 키웠던 시골 밭둑에도 회사 앞 청계천 계단 돌 틈 사이에도 겨우내 살아남은 뿌리가 며칠 새 성글어진 흙을 누비며 새순을 땅 위로 올려놓는다. 빼꼼하게 얼굴을 내민 쑥 새순 몇 개는 일주일이면 주변 땅을 야물 지게 점령한다. '쑥밭'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괜스레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실로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이 쑥만의 능력인가. 쑥을 재촉해 땅 위로 밀어낸 것은 땅에 깃든 봄의 힘찬 기운인 것을.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잿더미로 만든 자리에도, 비무장지대에서 멈춘 달리고 싶은 철마 아래 철로에도, 사대강 삽질로 쌓아 올린 아름다웠던 여주 남한강 모래톱 무덤 위에도, 봄이오면 모두를 제치고 가장 먼저 돋아나는 것은 쑥이었다. 봄기운을 받은 쑥은 척박한 환경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쑥쑥' 자라난다.
어려웠던 시절 이른 봄은 궁핍했다. 지난가을 들에서 얻은 양식은 초봄이되기도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전쟁을 피해 고향으로부터 이천리 남쪽으로 내려와 낯선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내 조부모는 비쩍 마른 어린 남매에게 줄 양식을 찾아 갓 얼음이 가셔 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들을 얼어 터진 손으로 들추어가며 먹을 것을 구했다. 초록빛이 돌거나 전분이 묻어 나와 먹을 수 있는 초목들은 남김없이 한데 섞여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거친 초근피죽을 열 살도 안된 아이가 잘 소화시킬 리 만무했다. 지식마저 궁핍해서 죽에 독초라도 섞여 있었던 날엔 살고자 먹었은 양식은 독이 되어 아이의 여린 위장에 탈을 내었다. 설사와 구토로 며칠 밤낮을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던 어린 자식에게 어머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천에 돋아난 개똥쑥을 뜯어 만든 맑은 죽을 숟가락으로 입에 떠 넣어주고 아랫목에 뉘어 배를 쓰다듬어주는 것뿐이었다. 전란을 이겨낸 어머니와 겨울을 이겨낸 개똥쑥은 강하다.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과 봄기운이 가득 든 쑥을 먹고 궁핍이 만들어낼 수도 있었던 비극을 이겨냈다.
몇 해 전 봄 나는 벗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빨간색 광역버스를 기다렸다. 사당에서 집에 가는 막차는 새벽 1시까지. 취중에서도 경제적 귀가를 위해 택시 대신 선택한 고난의 경로였다. 겨울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봄바람은 차가웠지만 다행히도 그 덕에 만취한 정신이 육체를 완전히 떠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30여분을 제자리 뛰기를 하다 떨다 정시보다 늦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히터의 더운 바람에 얼었던 몸은 봄볕의 노지처럼 녹았다. 내리기 쉽도록 자리 잡은 곳은 버스 중간 출입문 앞. 하지만 유부남의 귀소본능은 만취 중 수면욕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 버스가 시의 경계를 여러 번 통과하는 동안 나는 잠이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은 눈 앞으로 낯선 기운이 아른거렸다. 불길했지만 실제로 불길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출입문으로 던지며 왜쳤다. "아여씨~ 내리어여~" 주취자의 급격한 소란은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새벽 두 시 허허벌판 가로등도 없는 이름 모를 사거리에 버스는 한 주취자를 토하듯 버리고 검은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황량한 벌판 위에서 몸은 의지대로 가눠지지 않았고 취기가 가시지 않은 머리는 현재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안경과 휴대폰도 어디서부턴가 주인 곁을 떠나고 없었다. 비틀거리며 걷는 발밑에는 알 수 없는 쓰레기들만 채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거리 한쪽의 논밭과 건너편의 아파트 공사현장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버려진 곳은 화성시 어느 택지개발지구였다. 집에서 최소한 직선거리로 5km 이상은 떨어져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이 곳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야 한다. 뒷 주머니를 더듬으니 지갑이 식별됐다. 집은 갈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게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마음을 놓고 방심하는 순간부터 위기는 시작된다. 그날도 그랬다. 안경과 휴대폰을 잃었지만 지갑을 발견하면서 얻었던 마음의 안정은 뱃속의 동요에 의해 쉽게 무너졌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부터 차가워 불안했던 아랫배가 드디어 폭발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한시가 급했다. 이것을 처리하지 못하면 택시도 탈 수 없었다. 취기와 어둠에 더해 시력까지 잃은 탓에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는 상황적 판단을 내렸다. 앞뒤를 젤 여유가 없었다. 폭발까지 예상시간은 2분 남짓으로 추정. 급히 뱃속의 반란을 처리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벌판에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대안으로 사거리 한 귀퉁이 벌판에 차들이 세워져 있는 임시 주차장으로 서둘러 달렸다. 나이트클럽 홍보판을 짐칸에 매단 라보 트럭과 어느 가족의 자가용에 매달려 여행지 스위트홈으로 쓰일 카라반 사이 공간이 적당해 보였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나를 내려준 빨간색 광역버스 이후로 길에는 차도 다니지 않았다. 나이트클럽 홍보판에는 '화성시 남양 최고로 물 좋은 곳'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그곳에 근심을 내려놓았다.
한바탕 소동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뒤처리 문제가 남아있었다. 생각은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앞선 계획은 뒤처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문제가 있을 때 멀리 내다보지 못한 내 실수였다. 찬 바람이 차와 차 사이를 들고나갈 때 나는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려야 했다. 하지만 생각해 낸 경우의 수는 모두 비참하게 끝났다. 봄의 새벽 만취자는 나이트클럽 홍보차와 카라반 사이에서 근심했다.
얼마간 결심의 시간 후 나는 차악의 경우의 수를 실행하기 위해 몸을 세웠다. 한 손은 바지를 한 손은 굳어져 펴지지 않는 무릎을 손으로 짚어 몸을 일으키며 떨군 고개를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근심에 가려있던풍경이 열려있었다. 어둠에 적응한 홍채가 열린 것이다. 주변은 노란 개나리 밭이고 시야에 들어온 바닥은 초록초록했다. 내가 쭈그려 앉아 근심을 던곳은 갓 돋아난 쑥이 천지였다. 천재일우였다. 그대로 다시 앉아 손끝으로 쑥을 훑어보았다. 이른 새벽 공기의 촉촉함과 새순의 보드라움이 얕은 줄기와 작은 잎에 묻어있었다. 나는 손에 닿는 거리의 쑥을 모두 뜯어 한 손에 적당한 크기로 모았다. 손에 담긴 쑥의 향기는 내 근심을 남김없이 담아 새벽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