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터미널에 도착하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장항 행 버스를 탄 건 그곳이 그의 고향이었기 때문인데 고향이래야 이제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서랍 속 묵은 졸업 앨범 같은 곳이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화려해진 거리들을 피해 해안선 끝 쪽에 다다랐을 때 태화 횟집의 간판이 보였다. 그곳은 칠 년 전 그가 고향을 떠날 때와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매번 고향에 갈 때마다 지독하게 변하지 않던 엄마 모습처럼. 자라난 나뭇가지가 간판을 가려도 잘라낼 줄도 모르고, 색이 날아가도 다시 칠할 줄 모르고, 그 자리가 아니면 뿌리 뽑혀 살 수 없다는 듯 고집을 부리던. 예전 모습 그대로야.
문을 열자 생을 갓 마감한 비릿한 바다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산과 산 사이 골짜기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자라온 탓에 바다 냄새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온 듯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의 눈이 먼 곳을 볼 때마다 나는 그가 바다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하고 신비로운 바다. 우리에겐 함께 머물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침대가 있는 방에 가는 건 싫었다. 침대에 앉아서는 이야기를 오래 할 수 없잖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벽과 바닥이었다. 나란히 기대앉을 수 있는.
“202호가 비었어. 삼만 원이야.”
주인아주머니는 반찬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뭉근한 흰 살 생선이 들어간 국과 무친 미역 꼬투리, 톳이 들어간 콩나물무침, 잔멸치 볶음과 계란 프라이, 김이 차려졌다. 바닷가 식당에 딸린 민박집의 처지가 안 봐도 훤해서 그는 궁색함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씻는 곳도 제대로 없고 화장실도 밖에 있는데 괜찮겠어?”
나는 이곳이 좋았다. 깨끗한 곳만 딛고 다니는 여행객이 아니라 그의 고향 바다를 나눠 가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슈퍼에서 칫솔을 고를 때는 집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사람이 드문 이곳에서 횟집과 202호, 바다만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횟집 바로 옆에 파란 대문의 작은 민박집이 있었다. 세 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각각 101호, 202호, 303호였다. 벽에 몸을 대면 옆방 사람과 나란히 누워있을 것 같은 꼴의 그 방들에게 각각의 층을 주고 싶었을까. 문손잡이 위에 검은색 매직으로 쓴 번호의 차례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계획 없이 온 터라 짐이랄 것도 없는 내 작은 가방과 그가 늘 메고 다니던 백팩을 202호에 벗어두고 우리는 어두워지는 모래밭에 앉아 오랫동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붉어지던 하늘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사력을 다해 붉어지는 순간까지 조급한 마음 없이 꼼짝 않고 앉아서, 멀리 사라지는 것들은 어째서 다 아름다운 지만을 생각했다. 세상이 모두 202호의 벽과 바닥이 되어 어디든 나란히 기대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