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한 Mar 28. 2023

#0 시작과 끝

이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이 났다

불안함이 끝없이 몰아치는 밤

아침에 눈 뜬 내가 얼마나 힘들지

막연한 기우가 더욱 짙어졌다


빛나는 나의 모습이 좋았다던 네가

빛나는 모습이 불안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뒤돌아선 날

나의 빛은 더욱 세차게 흔들렸다


영화 같던 우리의 시간이 예고편처럼

잘려나가 부분의 기억으로 존재하고

찬란한 하이라이트만 남아서

끝을 더 아리게 할 뿐이었다


시작이 있었고 그래서 끝을 마주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끝은 아니었다

둘이 한 방향으로 서야 시작되는 관계

한 사람만 돌아서면 끝이란 것을

우직한 나는 모르고 있었다


불안과 외로움은

슬픔을 먹고 더 크게 자라났다

아픔과 자존감마저 먹이 삼아

끝없이 자라서는

마침내 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시간은 약이 아니라 벌이었다

아픔이 옅어지는 것은 회복이 아니라

만성의 질병으로 자라난 것이다

마음이 컸던 만큼 빈자리도 커졌고

주었던 마음을 다시 나에게 되찾아오는 일은

마주한 적 없는 고통을 끌어안는 일이었다


누구나처럼 시작했고

누구나처럼 끝이 났다


스치는 바람에 베이고

떨어지는 꽃잎에 밟히고

내리쬐는 햇빛에 쏘이고

흐르는 물에 찢기는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