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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소영 Dec 05. 2018

블록체인 씨티

개인주권의 회복과 공동체 만들기

소위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로봇들만 일하고 있는 공장들, AI로 무장한 인지혁명, 데이터 혁명,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서버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소위 스마트 시티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SF 영화에서 보듯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빅브라더가 지켜보며 이탈의 조짐이 있는 사람들을 미리 색출하여 특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삶은 어떠한 가? 전 세계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기술 엘리트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4차 산업혁명은 불투명과 불만, 그리고 불안의 시대에 다름 아니다. 날로 확대 일로에 있는 기술의 불투명성과 양극화가 가져오는 불만과 함께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관한 불안은, 절대 빈곤의 현격한 감소와 같은 긍정적인 경제 지표와 무관하게, 전 인류를 집단 무력감과 분노에 노출시키고 있다. 

 돌이키면 디지털 혁명이 시작된 1990년대 이후 인류는 지속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개인의 주권을 효율성과 맞바꾸어 왔다. 웹 혁명 초기 개인의 권한 확장에 관한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 시절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웹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점유되고 말았다. 개개인은 ‘편의성’을 볼모로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의 성 안에 갇혀 자신의 소중한 개인 데이터를 제공하며 열심히 성주들에 봉사하는 농노(사용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치 메이트릭스 영화의 한 장면같이, 시스템 전체를 돌리는 에너지 원이지만 우리는 벌거벗은 채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각자의 버블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화는 항상 시스템 자체의 내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2008년 금융위기를 목도한 일단의 천재 엔지니어(들)이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9장짜리 논문으로 전혀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제안했다. 정부의 독점 조폐권을 무력화하고 은행 등의 중간 거래상들의 존재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이 새로운 알고리즘에 금융자본주의의 변방에 있던 젊은 기술 엘리트들이 열광했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다양한 알트코인들이 속속 등장하며 새로운 가치 창출과 새로운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어 내는 모순은 쌓여만 간다. 수천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커들에 의해 유출되는 것은 이제 빈번한 일상사가 되었다. 우리가 스스로 데이터 주권을 이양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의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더구나 데이터 마이닝 회사였던 캐임브리지 아날리티카의 스캔들에서 보듯이 개인 데이터가 AI기술과 결합되면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이 드러났다.(마크 져커버그를 미 의회 청문회로 불러 낸 사건이다.)

 窮卽通이라고 했던가? 모순이 극에 달하면 변화가 생기고 변하면 통한다고 했다. 극도로 중앙화된 컴퓨팅 시스템과 데이터 윤리적 모순은 새로운 인터넷의 등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 새로운 인터넷-블록체인-의 덕목으로 분권화, 데이터 주권, 투명성, 그리고 불변성 등을 꼽고 있다. 바로 현 인터넷의 문제들로부터 시작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떤 세상을 지향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개인의 선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분산.분권화 된 세상이다. 국가 권력이나 법, 또는 기존의 경제질서에 의해 예속되거나 구애 받지 않으려 하는 사이버펑크적 성향이 짙다. 개인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거래의 기반으로 삼는 18세기 자유주의적 전통을 이어 받았으나, 이들은 인센티브를 사회 제반 관계의 영역으로 밀고 나간다. 게임의 룰을 수호하는 것(‘신뢰’)은 공권력 대신 기술이 담보한다. 한마디로, “코드가 법이다.” 

 아직 진화하고 있는 기술이라 블록체인이 만들어 가고 있는 도시(사회)를 가늠하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기술과 커뮤니티의 특성을 살피면 몇 가지 방향성을 추측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의 재등극이다. 데이터 주권과 인센티브에 기반한 이 새로운 인터넷에서는 빅데이터 체계에서 파편화되어 소비되는 나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적으로 조작 불가능한 데이터로 이루어 지는 블록체인은, 설령 네트웍 효율성을 희생할 지 언정, 가짜나 거짓을 추방한다. 요컨대 중간상이 필요 없는 P-to-P 네트웍은 분산된 파레토 효율을 추구한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블록체인으로는 신원증명 및 자산등록 시스템을 비롯해서 금융거래를 효율화 한 핀테크 계열, 분산에너지 시스템인 마이크로그리드, 분권화된 미디어 및 콘텐츠 시스템, 그리고 교육 관련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제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통한 새로운 거래들과 그에 따른 커뮤니티가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개개인은, 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자신에게 최적의 커뮤니티를 선택해서 사회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블록체인은 자유주의자 개인에게 굿 뉴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블록체인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는 어느 정치철학자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소위 ‘나’가 ‘우리’가 되는 문제이다. 스마트 컨트렉트가 인간 사이의 복잡다단한 이슈들과 애매모호한 감정들을 쉽게 코드화 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거래처리속도와 같은 기술적 이슈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이슈로 떠 오르는 것도 거버넌스 문제이다. 즉 어떻게 합의에 이르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생생한 실험이기도 하다.

 버블 속에서 잠자고 있던 ‘나’를 일깨워 주권을 되찾아 준 블록체인이지만,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서 ‘우리’를 재발명하기엔 갈 길이 멀다. 공동체 안에서의 ‘신뢰’는 단순히 분산원장을 만드는 것 이상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는 때도 있고(국방),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를 해야 하며(사회간접자본),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협동(교통/주거)해야 할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 극대화만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십상이다.

 결론적으로 블록체인 시티에는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엮어주는 코드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온체인이건 오프체인이건 ‘우리’라는 의식을 심어 주는 그 무엇, 민족과 국가, 계층이나 계급을 넘어 남녀노소(혹은 중간성)가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 포용적이고 관용적이지만 보편타당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블록체인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기 하나의 실마리를 소개한다… 좀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BC 5세기,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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