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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r 14. 2020

마음의 진입장벽 낮추기

망할 완벽주의를 깨기 위한 엉망진창 글쓰기 #1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을 다시 누르는 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첫 해외 장기 체류를 준비했고 20일 전 비엔나에 도착하고는 곧이어 일주일간 프라하, 부다페스트 여행을 다녀왔다. 다시 비엔나로 돌아와 거주지 등록, 은행 계좌 개설 등 필요한 행정 처리들을 하고 주변 마트들을 물색하며 또 십여 일이 지났다. 그래서 그간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다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시간은 두 손, 두 발 다 사용해 세기에도 부족하다. 사실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을 누를까 말까 족히 10번은 고민했다. 6일에 한 번씩은 한 셈. 누군가에게는 얼마 만에 글을 썼는지, 그게 뭐가 중요해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자주 나의 발목을 잡는 (또 또) '망할 완벽주의'를 의미하기 때문.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 그로 인한 부담으로 글 한 바닥, 한 줄조차 쓰기 어려워하고, 심지어 브런치를 클릭하지도 않는 이 상태! 이것을 어떻게든 결단 내지 않으면 난 영영 브런치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생각나는 대로 툭툭 잘도 쓰면서 왜 브런치에는 안 될까. 물론 공간의 성격, 용도, 사용자들 모두 다르지만 그런 것들은 뒤로하고, 마음의 진입장벽 탓이 가장 크다. 브런치에서 두고 있는 진입장벽보다 내 마음속 진입장벽이 100만 배쯤 높고 단단한 것 같았다. 망할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참으로 허상의 진입장벽. 어찌 해결할꼬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특별한 건 아니고 늘 해왔던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것인데 그 행위에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한 마디가 불현듯 떠올랐다.


"망할 완벽주의를 깨기 위한 엉망진창 글쓰기"


이름을 붙여주는 일. 사물이든, 행위든, 사람에게든 그것은 곧 의미를 부여함을 뜻하고 그 의미는 명명하는 자에게 새로이 '인식'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구절도 있지 않나. 아니, 저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니 브런치에서 세운만큼 정도는 진입장벽이 낮아진 기분이 든다. 갑자기 내 마음 가는 대로 막 써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진짜 말글을 쓰겠다는 건 아닙니다.) 감정 영역의 시스템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텍스트 한 줄에 이렇게 마음이 바뀌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한 스타일이라 항상 시작하면서도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스타일인데 이 짓거리의(!) 목표는 망할 완벽주의를 깨는 것에 있으므로 끝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쓰련다. 뭐든 쓰련다. 엉망진창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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