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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r 20. 2020

일주일, 구직과 실직 사이

오스트리아 워킹홀리데이 #1

3월 1일, 여행자를 벗어나 비로소 오스트리아 워홀러(워킹홀리데이 + er)가 됐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나라로 워홀을 왔는데 아는 독일어라곤 "Guten Tag (안녕)" 뿐인. '워킹' '홀리데이'지만 나의 호기로운 계획은 적어도 2~3개월 정도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고, 후에 구직을 하자! 였다. 호기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3개월 공부한다고 일 할 만큼 독일어가 늘 거란 보장이 없거든요. 그런데 중고 장터나 한 번 볼까 하고 들어간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독일어를 못 해도 일 할 수 있는 한식당 주방보조를 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 나가지 않는 이상 6개월이고, 1년이고 나지 않는 자리. 나같이 언어가 안 되는 한인 워홀러, 유학생 등이 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리. 분명 3월에는 일 할 계획이 없었는데...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적혀있는 번호로 지원 문자를 보냈고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문자를 보낸 덕에 다음 날 바로 면접, 다음 주부터 출근이라는 초고속 채용 루트를 밟게 되었다.


생활비 세이브되지, 밥 없이 못 사는데 일하는 날은 적어도 든든히 한식 먹지, 일하는 알바생들과 여러 정보도 긴밀히 공유할 수 있으니 이건, 신이 내린 자리였다. 그렇게 취직의 기쁨에 취해 영광의 화상까지 얻어가며 열심히 일했다. 딱 일주일. 엄밀히 말하면 월요일, 화요일, 토요일 3일. 오스트리아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었던 탓이다. 유럽에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지난주 주말, 정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조치를 내렸다. 이를테면 외출 자제령이랄까. 재택근무가 어려워 출근을 해야 할 경우, 식료품이나 생필품 등을 사러 갈 경우,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할 경우. 이 세 가지 이유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자제하고 5인 이상 모이지 말며, 사람이 모이는 행사와 장소들은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곳 제외하고 모두 폐쇄조치를 내렸다. 이로써 내가 일하는 식당 또한 한동안 문을 닫게 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속 나는 실직자가 되었다.


일주일 간의 구직과 실직, 도드라지게 제목까지 달아놓았지만 사실 크게 개의치는 않다. 초고속 취직은 생각지 못한 선물 같은 일이었고, 실상 완전 실직이 아닌 임시 실직 상태라 상황이 안정되면 일할 곳은 보장되어 있으니까. 일주일 급여는 보너스 받은 셈 치기로 했다. 그저 별별 일 다 겪어보는구나 싶은데,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이 별별 일들을 반기는 편이다. 좋은 글감이 되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애초의 계획대로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강제적 외출 통제. 집순이가 못 되는 나에게 이 얼마나 공부하기 좋은 상황인가. 현재 기숙사에서 생활 중인데 이곳을 한동안 독일어 기숙학원으로 부르기로 했다. 완연한 봄이 밖으로 나오라고 호출해도 응답할 수 없는 독일어 기숙학원. 그래 좋긴 좋은데, 잠시나마 함께 일했던 알바생분들과 사장님, 기숙사 친구들,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너무 오래 머물러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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