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Feb 23.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단주의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문화이다.


대한민국 사화에서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사람들의 민족성일까. 여하튼 우리 사회는 그렇다.


좋든 싫든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는 집단 내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가려는 욕구를 강화시켰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부정부패 등의 강박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과 간 보기가 만연했다. 내가 이러한 문화를 온몸으로 겪어본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의 부모 세대가 살아온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집단주의 문화와 그로 인한 폐해를 알 수 있었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를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 든다. 가진 것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집단주의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트렌드코리아 2019

이러한 변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8년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에는 

[워라밸, 나만의 케렌시아,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가,


2019년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에는

[세포 마켓, 감정대리인 내마음을 부탁해,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가 선정되었다.


모두 개인주의를 반영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에 발맞춰 개인주의자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히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하게 된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저성장시대에 들어감과 동시에 성인이 된 현재의 이십대를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대학 인권 수업시간에 있던 일이다. 선생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 이슈를 제기하자 3분의 2 이상의 학생은 이렇게 반응한다.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은 전혀 벌개의 것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남들 몇 년씩 어렵게 준비해서 토익 900점 넘기고 어렵게 공사 들어가는데 (...) 정직원을 보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볼 수 있죠. 정직원 되고 싶으시면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 낫다고 구분 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십대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본인들의 삶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을 존중해야 할까?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양보해야 할까?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켜주기 위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렇게 해야 할까?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현존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타자의 고통에 가장 예민한 이들, 가장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의 외침을 유심히 들어주고 이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고, 잘못된 생각들과 싸우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다.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책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 문제'를 얘기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며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존중받지 못하니까 존중하지 않겠다.'라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 너도 행복할 수 없어'와 같은 너 죽고 나 죽자하는 심정이 아니라


나의 문제에 분노하는 것만큼 타인의 문제에도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핑계를 대며 타인의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호들갑스럽게' 그들의 문제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약한만큼 타인도 약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유시민 작가님의 생각

우리는 결국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해야 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 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참고서적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트렌드코리아 2019>, 김난도, 미래의 창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의 의미와 범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