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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라이프클럽 Dec 04. 2023

1. 우리의 마을, 하동

<2022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오히려하동 사례 공유>

왜 어른들은 우리에게 기타를 쥐어주고,  
섬진강과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의 생각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게 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동, 우리의 마을공동체


 2004년, 환경과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을 포함한 동네 어른들이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하 섬지사)를 만들었다. 어른들은 귀농인, 토박이 구분 없이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섬진강과 지리산 그리고 하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저 부모님들의 술안주로 먹는 치킨에 관심이 있어 멋 모르고 따라왔던 아이들은 서로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2008년, 섬지사 회원들은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에서 문화를 자급자족하는 삶을 위해 ‘동네밴드’라는 악단을 결성하고 마을 축제를 열었다. 다음 해에는 어른들은 동네 아이들을 위한 기타 교실을 열었고, 마땅히 할 게 없었던 시골에 살던 아이들은 열심히 기타를 수련했고, 2009년에는 ‘구멍난양말’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2회 차 마을 축제에는 어른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구멍난양말’은 마을공동체가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어른들은 시골에서도 충분히 문화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또 재주가 있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악기, 작곡, 작사 등 자기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줬다. 덕분에 아이들은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서울살이


 마을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당연히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공식에 따라 채 20살이 되기 전 서울에 있는 한 게임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청소년 시기를 보내다 보니 스티브잡스 같은 혁신가들처럼 기술로 세상에 기여하며 돈도 벌고 싶었다. 당시에 나는 기술과 예술이 혼합된 게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 같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게임과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게임은 의미가 달랐다.


 게임 회사는 계속 성장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시간을 쏟아 붙고,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흥행 사업이라는 특성상 게임의 출시나 성과가 제품 그 자체보다는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러다 보니 게임보다는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 개발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울살이도 점점 지치고 있었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품고 있는 하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을 떠나 그나마 논과 밭을 볼 수 있는 경기도 곤지암까지 거주지를 옮겼고, 주말에는 강원도로 서핑을 하러 다녔다. 자연을 즐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중, ‘디지털노마드’라는 삶의 형태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성지라고 칭송하는 ‘치앙마이’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로 날아갔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치앙마이에 대한 첫인상은 ‘청년이 많은 하동’ 그 자체였다. 자연환경이 훌륭했고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지역 공동체’와 그들이 만드는 ‘지역 문화’가 있었다. 그러한 문화를 만드는 축이 2개 있었는데 ‘치앙마이 대학’으로 묶이는 지역 청년들의 공동체와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로 묶이는 다국적 청년들의 공동체였다.


지역 청년들이 만들고 활동하는 독특한 카페, 공방, 식당 그리고 라이브 클럽만 해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다. 그와 동시에 훌륭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프리랜서, 리모트 워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만나 창업한 다국적 스타트업 멤버까지 흥미로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자연을 즐기면서 일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은 나에게 앞으로 당분간은 치앙마이에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한 달 살기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치앙마이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니던 학교를 휴학을 하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짧게 다닐 수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가서 하고 싶은 일을 계획했고 준비는 완벽했다.

어림없지, 코로나19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완벽한 나의 계획과 달리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당연히 하늘 길도 막히게 되었다. 역병은 인구가 많은 서울부터 덮치기 시작했다. 내가 서울에서 누리던 많은 것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 계속 있을 바에야 차라리 자연이라도 좋은 하동으로 잠시 내려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시작이 될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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