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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May 12. 2020

물건들의 생

웹진 취향껏 2호 <수집> 개인원고

할아버지는 개인 창고가 있다. 빌라 뒤뜰, 작은 텃밭 옆에 자리하고 있는 2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가 할아버지의 창고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켜켜이 쌓여있는 물건들의 위치들은 할아버지만 기억하기에 내가 들어가 봤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할머니에게는 집이 곧 창고다.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를 물건들이 온 집안을 둘러싸고 있다. 포장 박스와 물건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사과박스 안에 사과는 없고 엉뚱하게 반찬통만 가득하거나, 책장에 책은 없고 자질구레한 박스들이 제 몸을 이리저리 구겨 넣고 있다.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조부모님 댁에 얹혀 살 때가 있었다. 매일 저녁 할머니를 도와 밥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바지런하게 놓고 한참을 기다리다보면 내 시선은 집안을 가득 채운 상자들에 닿았다.  





ㅡ할머니 저 박스 안엔 뭐가 들어있어요?

ㅡ나중에 다 쓸 것들 들어있는 거지. 뭐.

ㅡ할머니 집에는 왜 저렇게 짐이 많은 거예요?

ㅡ밥 먹어라.



밥 먹으라는 말 앞에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라는 말이 묵음처리된 것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어렸고 물음표는 멈추질 않았다. 내 질문이 쓸 데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왜?`라는 수없는 질문에 할머니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설명해 줬어도 난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말수가 없으신 게 그저 할머니 성격이셨을지, 아니면 어차피 말해봤자 입만 아플 거란 걸 이미 깨달은 연륜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 할머니를 닮아 무뚝뚝해진 나는 두 분에게 대화보다는 잔소리 비슷한 걸 했다. 가끔 들렀던 할머니댁과 창고는 달라진 것 하나 없이 가득 차있었다. 얼핏 보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한국은 미니멀리즘의 돌풍으로 단순함과 간결함의 주가 되는 인테리어들이 뜨기 시작했고 나는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할머니댁은 그저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들의 향연일 뿐이었다.



내가 몰라도 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물건들, 또는 나중에 쓸 것들. 나는 그것을 내 멋대로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명명했다.



ㅡ할머니, 이제 슬슬 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요?

ㅡ버릴 게 뭐가 있다고 버려, 다 쓸 것들이구만.

ㅡ아니, 저기서 쓸 게 뭐가 있대요? 저 밥통도 예전에 쓰던 거구만!



대화의 흐름은 대부분 이러했다. 저건 버려도 되는 거라며 내가 우기면 할머니는 안 된다고 나의 잔소리 섞인 권유를 차단했다. 어떻게든 정리해보려 했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뭐 어쩌겠나, 내 눈에만 버려도 되는 것들로 보이는 것을.



그러다, 그렇게 살다 할아버지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들러 진료를 보시고, 할머니께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계실 때 문득 모아뒀던 물건들의 생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제 역할 한 번 못한 물건들은 훗날 어디로 가는 걸까. 물건의 생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과 연결되어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울적해지고 말았다.



두 분 모두 물건들이 닳을 때까지 오래오래 그 자리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런 마음은 내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사랑이나 정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무섭다. 내가 어느 정도로 잠겨있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조절이 불가능하다. 내가 더 아쉬운 마음이 들 때 즈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느닷없이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창고를 뒤적이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찜통이라며 고구마와 함께 손에 쥐어주며 집 가서 삶아 먹으라고 하시던지, 할머니는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 중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챙겨주셨다. 정리를 선택한 두 분을 바라보며 `나 그런 거 정말 필요 없어. 그런 거 없어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다 써, 닳을 때까지 쓰게 오래 오래 살아.` 같은 말을 내뱉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무뚝뚝하게 태어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것 조차 어려워하는지. 두 손에 물건들을 한 아름 들고 집에 와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내뱉으리라.



내 멋대로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명명했던 그들의 수집이, 그렇게나 없애고 싶던 물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삶의 이유가 되기를 이토록 바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물건들의 생이, 그들의 마침표가 꽤 먼 훗날에 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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